한 의학전문 작가의 죽음이 의미하는바
한 의학전문 작가의 죽음이 의미하는바
  • 김동석 (dskim@enzaim.co.kr)
  • 승인 2016.08.0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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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커뮤니케이션닥터] 의료기술 불신·맹신 동시 경계해야

[더피알=김동석] 최근 한 의학전문 작가의 죽음이 의료계와 언론계에 큰 화제가 됐다.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등의 저서를 출간하며 현대 의학 무용론을 주장했던 작가가 당뇨와 폐결핵으로 55세 젊은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지막까지 현대 의학을 거부하고 자연 치료법을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도 없다"는 말처럼 모든 효과적인 제품에는 부작용이 존재할 수 있다.

한 때 건강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까지 이름을 올렸던 그의 저서들은 사실 국내 의료계에서는 골칫거리였다. 선정적이고 비과학적인 내용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슈를 제기하자니 책만 더 유명하게 만들 수 있고, 그냥 모른 척하자니 국민의 건강에 미치는 나쁜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손을 씻어라” “운동을 해라” “양치질을 해라” 등 귀찮은 ‘건강한 잔소리’보다는 “치료 받지 않고도 암을 극복할 수 있다”는 류의 말이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매혹적이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듯이 ‘달콤한 말’은 대부분 건강에 해롭다.

최근 특정 음식이나 농산물이 마치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미디어에 소개되곤 한다. 연예인이나 전문가들의 추천까지 더해지면 금방 해당 제품이 동이 나고 만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어떤 전문가도 얼마만큼을 먹어야 해당 식품과 음식이 항암효과를 보는지, 혹은 장수를 보장하는 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는 점이다.

식품으로 그 정도의 효과를 보려면 수십 년 복용을 해야 하거나, 한꺼번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을 먹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식약동원(食藥同原), 즉 음식과 약은 근원이 같다. 내가 먹는 음식은 곧 내 몸의 건강과 직결된다. 하지만 이는 평소 생활 속에서 좋은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의미지, 미디어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특정 식품을 몇 번 먹었다고 효과를 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건강 망치는 달콤한 말

일부 부모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예방접종 무용론 역시 마찬가지다. 그 근거 중 하나는 홍역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소문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이런 주장의 단초는 영국의 한 의사의 엉터리 논문 때문이었고, 해당 의사는 면허 박탈까지 당한 상태임에도 루머는 끝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안전하다는 뻔한 말보다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소재기에 통할 수 있었다. 한 명의 의사가 생산해 낸 잘못된 정보와 이를 추종하는 일부 집단의 확대재생산의 결과는 결국 미국에서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창궐하는 일까지 벌어지게 하고 있다.

예방접종이 불필요하다면 왜 수많은 국가와 공익단체들이 아프리카의 영유아 사망률을 줄이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예방접종 사업을 벌이고 있는지만 생각해 봐도 쉽게 알 수 있음에도 자극적인 의학정보의 생명력은 질기기만 하다.

이런 달콤한, 그러나 건강에는 유해한 건강정보가 넘쳐나고 또 쉽게 믿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설적이게도 의료를 포함한 ‘과학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과학과 불확실성이라는 말은 서로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의료라는 과학은 불확실성을 수반한다. 이것이 현대 의학 거부론자들에게 빈틈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1953년 독일에서 임신부의 입덧방지제로 개발된 ‘탈리도마이드’는 당시 동물 실험 결과 부작용이 없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판단,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50여개국에 팔려 나갔다. 하지만 1956년에 이 약을 복용한 임신부가 기형아를 출생한 후 독일에서만 5000명이 장애를 안고 태어났고, 전세계적으로 1만2000여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나는 비극을 겪게 된다. 의료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 밖에도 십수 년 동안 안전한 약으로 판매되던 식욕억제제(비만약)가 심혈관계 질환자가 복용할시 뇌졸중과 심근경색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하루아침에 판매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위장관 질환을 줄이는 관절염 치료제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약 역시 심장발작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로 출시 수년 후에 판매 중지된 경우도 있다. 지금은 안전성이 검증된 대중적인 수술이 된 라식 역시 처음 소개되고 수년 동안 과연 안전하고 장기적으로 효과적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어왔다.

부작용이든 효과든 있는 그대로

그렇다면 도대체 헬스커뮤니케이터는 어떤 기준으로 건강 정보를 얘기해야 할 것인가? 모든 의약품과 수술법을 잠재적 위험요소로 보고 멀리 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하기에는 해당 제품과 기술이 가져다 줄 건강 혜택이 너무 크다. 현재 상황에서 파악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에 기댈 수밖에 없고 이를 믿고 받아 들여야 한다.

다만 여기에는 항상 전제가 따른다. “부작용이 없는 약은 효과도 없다”는 말처럼 모든 효과적인 제품에는 부작용이 존재할 수 있다. 무작정 효과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부작용의 가능성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다.

과학에도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료기술 역시 언제든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안전성만을 무작정 강조하게 될 경우,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부작용만으로도 해당 의료기술이 선사할 모든 혜택과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게 될 수 있다. 대중은 약속된 완벽함을 기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피할 것은 피하고(감추고), 알릴 것은 알린다”는 PR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리는 저속한 자기규정은 더 이상 맞는 말이 아니다. 사회구성원, 조직구성원들의 의식이 높아지고 사회관계망 서비스로 인해 시시콜콜한 이야기조차 숨길 수 없는 세상이 왔다. 부작용이든 효과이든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보여주는 솔직함이 필요하다.

서두에 언급한 한 의학전문 작가의 죽음을 계기로 역으로 과학에 대한 지나친 찬양의 목소리가 높다. 대중을 현혹하는 달콤한 말 못지않게 과학적인 것은 모든 것이 안전하다는 커뮤니케이션 역시 위험할 수 있는 사실을 명심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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