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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인혁당 그리고 세월호
위안부, 인혁당 그리고 세월호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6.08.19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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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 제작 김서경·김운성 작가,‘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AEV’ 전시 열어

“이 할머니는 강서구에 사셨어요. 작품에서는 꽃을 안고 웃고 계시지만 실제로는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했죠. 마음을 열지 않으셨는데 강서구청 공무원들이 매일 찾아가다시피 해서 어렵게 당신의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리고 평생 모은 지원금을 모아 장학금을 기부하고 하늘나라로 가셨죠.”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의 이야기

[더피알=이윤주 기자]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작가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편린들을 끄집어 내는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 인사동 아티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전쟁 없는 세상을 위한 Art's Eye View’가 그것. ▷관련기사: 소녀, 침묵으로 새 소통문화 열다

이 곳에는 현재진행형인 과거사 문제, 그리고 전쟁의 참혹한 잔재들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3개층에 걸쳐 전시돼 있다. 

사람의 형상을 본뜬 작품들이 벽면을 따라 빙 둘러져있는 공간에 들어서니 입을 꾹 다문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띈다. 지난 1991년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조각상이다.

주먹을 불끈 쥔 할머니는 포승줄로 두 손이 묶여있는 청년을 바라본다. 이른바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처형당한 희생자다. 청년의 시선 역시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세월호 희생자 아이들이다.

▲ (왼쪽부터) 김학순 위안부 할머니, 인민혁명당 희생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본뜬 작품. 이윤주 기자

“이들의 눈동자는 마치 살아있는 듯 합니다. 작품 간의 간격은 지난 세월의 시간을 뜻하는데요. 시간이 흘러도 자신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서로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죠.” 전시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나온 역사의 피해자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희생된 아들을 안고 있는 엄마, 일제 치하 광산에 징용돼 목숨을 잃은 광부 등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연꽃 위에서 아기를 안은 엄마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 ‘베트남 피에타’는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 가해자였다는 역사적 진실을 꼬집는다. ‘아가야 아가야, 너는 기억하거라. 한국군들이 우리들을 쏴 죽여 폭탄 구덩이에 시체가 가득하구나. 아가야, 아가야, 너는 커서도 꼭 이 말을 기억하거라.’ 한쪽 벽면에 적혀있는 베트남 자장가 후렴구가 아프게 다가온다.

계단을 내려오면 포탄과 탄피를 소재로 만든 작품을 만나게 된다. 경기도 화성시 매향리에서 온 포탄들이다.

매향리는 한국전쟁 이후 54년간 미군 포사격장으로 사용됐다. 주민들은 1년에 250일, 하루 평균 13시간 이상 굉음과 위험 속에서 고통을 겪었다. 경제적 피해와 인명사고도 고스란히 그들의 몫이었다.

이와 관련, 오명진 아트앤아트코어 기획자는 “매향리 마을 한 켠에는 아직도 포탄이 쌓여있다. 녹슨 포탄은 가치가 없어 그 자체로 애물이다. 그것에 주목했다”며 “한국은 종전상태가 아닌 정전 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시계방향 순)매향리에서 가져온 포탄으로 악어, 나무, 거미를 형상화한 작품. 이윤주 기자

포탄과 탄피를 소재로 썼지만 전쟁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한국전쟁이 남긴 ‘죽음’의 상흔 대신 악어와 거미, 새, 나무, 연인 등 ‘생명’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의 상징물이 아닌 포탄 자체 형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담겨 있다.

전시장 곳곳에 배치된 식물들이 녹슨 포탄의 잔재와 어우러져 있는 모습도 이채롭다. 오 기획자는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며 “생각을 반전시키면 세상이 변하듯 잔재들도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시는 이달 3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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