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위기는 왜 관리가 힘들까?
VIP 위기는 왜 관리가 힘들까?
  • 정용민 (ymchung@strategysalad.com)
  • 승인 2016.08.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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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민의 Crisis Talk] 부정확한 사실관계…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더피알=정용민] 한국 기업 및 조직의 위기 중 고질적이며 가장 위해성이 큰 유형이 바로 ‘VIP 관련 위기’다. 작게는 VIP의 사회 일탈적 행동으로 인한 해프닝부터 사법기관의 조사까지 연결되는 중대 사안까지 그 종류 또한 다양하다. 한번 발생하면 사회적 반향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모든 국민들이 기억하는 부정적 상처로 기업이나 조직에게 오래 남게 된다.

확인되지 않는 사실관계

기업 및 조직 내부 위기관리팀에서도 가장 핸들링 하기 힘든 위기 유형으로 ‘VIP 관련’을 꼽는다. 첫 번째 이유는 해당 위기 유형들이 일반적으로 ‘사실관계 확인이 어렵다’는 특성 때문이다.

대부분 VIP 개인과 관련된 사안이기 때문에 비서실이나 홍보실 차원에서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쉽지 않다. 자연히 외부 언론을 대응하는 홍보실에서는 메시지가 제한된다. 전략적 침묵처럼 보이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아는 것이 없어서 기자의 질문에 답을 못하는 경우들이 꽤 된다.

일부 핵심 고위 임원들도 대부분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추정하거나, 부분적으로만 상황을 이해하고 있는 경우들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정확하게 사실을 알고 있는 고위임원이라도 그 팩트를 사내 대응 그룹에게 그대로 옮기는 것을 불경스럽다 생각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응 그룹에게는 정해진 간단한 메시지만 전달하라 지시하는 선에서 초기 대응이 이뤄진다. VIP 관련 이슈는 비교적 내부 감지가 되는 위기들 중 하나인데, 대응 방식이 제한적인 걸 보면 미리 알아도 별반 수가 없는 위기관리 특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더뎌지는 의사결정

두 번째 VIP 위기관리가 힘든 이유는 관련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 핵심 주체가 VIP 자신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외부에서는 왜 신속하게 전략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들을 가지는데, 사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아무런 의사결정이 내려지지 않아 그런 경우들이 많다.

▲ 민감한 시기에 누가 나서서 "회장께서 직접 나가서 사과하시라"는 직언을 할 수 있을까.

VIP가 왜 의사결정에 주저하고 힘들어 할까를 생각해 보면 이해는 간다. 사업적 위기에 대한 결단이라면 상대적으로 단순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개입된 이슈인지라 어렵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내부적으로 임원들이 모여서 VIP에게 의사결정을 내려달라 압박하기도 힘들다. VIP의 의중을 일단 살피는 활동이 진행될 뿐이다. 민감한 시기에 누가 나서서 “회장께서 직접 나가서 사과하시고 회장 직책에서 물러나시는 것이 전략적인 대응으로 보입니다”는 조언을 할 수 있을까?

VIP가 스스로 “내가 어떻게 의사결정해야 하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세요”라고 하더라도 어려운 것이 해당 위기의 특성이다. 이런 경우 외부 자문그룹을 활용하는 기업들도 있다. 내부적으로 VIP께 하기 힘든 말을 외부의 입을 빌려한다는 의미다.

법무-홍보 정보공유 불협

해당 위기유형이 관리되기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법무라인의 정보 독점’ 때문이다. 일단 사법기관의 조사와 연결되는 경우 대부분 가용 정보와 법적 대응 전략들이 법무라인에만 집중된다. 로펌의 경우도 VIP와 면대면으로 진행하거나, 법무팀을 거쳐 일하는 형식으로 위기대응 업무를 하기 때문에 실제 외부 이해관계자와 맞닥뜨리는 그룹에게는 별반 유의미한 정보가 공유되지 않는다.

중장기적으로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VIP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정보들이 충분히 커뮤니케이션 대응 그룹에게 공유돼야 한다. 그래야 해당 그룹에서는 전략적 메시징이 가능하고, 타이밍 설정을 비롯한 입장 정리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 대응 그룹에게는 아주 제한된 정보만 뒤늦게 공유된다. 자칫 법무라인과 커뮤니케이션 라인이 엇박자라도 나게 되면 그 여파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되니 문제다.

가용예산의 한계

네 번째로 VIP 위기관리가 어려운 이유는 ‘상당 수준의 관리 예산이 필요하다’는 특성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VIP와 관련된 위기는 사회적 주목도가 폭발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언론들이 이에 편승해 지속적으로 기사화 한다. 온라인에서도 그 전파 범위와 속도는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진다.

이에 대응하면서 추가 여론화를 방지해야 하는 커뮤니케이션 그룹에게는 예산이 필요하다. 대형 그룹사처럼 여유가 있는 기업들이면 모르겠는데, 중견이나 중소기업 수준에서는 가용 예산이 매우 한정적이라 힘들어진다.

부정적 사내 분위기에서 충분한 예산 배정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 탓도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인력들의 밤낮 없는 헌신으로 일선관리가 시도되는데 그 성공률은 상대적으로 극히 저조하다.

▲ vip와 관련된 위기는 사회적 주목도가 폭발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중앙지방검창철 입구. 뉴시스

어려움 가중시키는 VIP 주변 훈수

다섯 번째 어려운 이유는 ‘VIP와 그 주변인들의 단편적 개입’ 때문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조언자들이 VIP 주변에 포진한다. 전직 관료나 기관장, 전직 국회의원에서 전직 언론인들까지 다양한 지인들이 각자 훈수를 둔다.

VIP는 개인적으로 이들의 조언들을 듣게 되는데 그것이 일관되지 않아 문제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들이 전체적 조망을 통해 중장기적인 위기관리 로드맵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조언 내용이 매우 단편적이라는 점이다. 감정적인 분도 있고, 개인 시각에 따라 자의적 해석이나 대응안을 조언하기도 한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노련한 VIP께서 잘 추려 판단하겠지만, 자신과 관련된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의식의 제한이 수반되는 터라 추림이 힘들어진다. 여기 저기 취합한 조언들을 내부 실행 그룹에게 하달하면 그때부터는 기존 대응 전략이나 방식들에 문제가 생긴다.

그나마 제한된 정보들로 기본 대응 방안을 마련해 놓았는데, 사공이 많아지다 보니 배가 산으로 가게 되는 꼴이다. 실행 그룹들이 지시사항에 대해 ‘왜 실행이 불가능한가’ ‘왜 그런 실행이 위험한가’하는 내부 보고 논리를 만들고 있으니 실제 실행이 잘 될 턱이 없다.

이상과 같은 이유들을 쭉 놓고 보면 VIP 관련 위기관리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인다. 제대로 관리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케이스들이 극히 제한되는 이유다.

그나마 최근 일부 대기업들의 VIP 관련 위기관리 체계 트렌드를 보면 약간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주목되는 변화가 VIP 개인과 조직을 분리하려는 시도다. VIP 관련 위기발생 시 VIP가 개인적으로 외부 위기관리 회사나 PR회사를 고용해 활용하는 사례들이 보인다. 물론 해당 기업의 지휘와 조정을 거치지만 외부적으로 창구를 조직과 분리하는 시도를 한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내부 사실관계 확인의 효율화를 위해 통합 대응 그룹을 만들어 로펌과 커뮤니케이션 그룹이 함께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과거 두 그룹 간 일사불란한 협업이 어려워 실패한 케이스들이 많아 그에 대한 반면교사와 개선이 있었던 것 같다.

일부 기업에서는 VIP 관련 위기발생 시 내부 대응 그룹이 외부 위기관리펌과 손잡는다. VIP 관련 위기에 있어서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시각을 가능한 내부에 투영하는 역할을 주문한다. 내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향후 상황 전개 즉, 블라인드 스팟(blind spot)을 찾아 달라는 얘기도 한다.

이미 국내 대형 그룹사들은 한두 번 이상씩 VIP와 관련된 초대형 위기들을 경험했다. 당연히 그들 내부에는 경험 있는 인력들이 포진해 있고, 대응 체계 또한 상당 수준에 이르러 있다. 경쟁력 있는 위기관리 자산과 예산도 뒷받침된다.

문제는 중견과 중소기업들이다. 최근 VIP 위기의 상당 부분을 중견과 중소기업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부적으로 VIP 관련 대형 위기관리 경험이나 역량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내부 커뮤니케이션 및 위기관리 체계도 대기업의 십수년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위기관리 제한점들을 가능한 미리 인지하고 그 제한과 제약을 넘어서기 위한 사전 준비와 투자가 필요한 대상들이다. 미리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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