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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사라지는 시대, 글로 소통하는 이유디지털 물결 거스르는 글쓰기의 힘

[더피알=박형재 기자] 글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 니콜라 멘델손 페이스북 부사장은 6월 런던 컨퍼런스에서 “향후 5년 내에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글자가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의 일일 동영상 조회수가 2015년 10억 뷰에서 올해 80억 뷰로 8배나 증가해 앞으로 모든 글이 동영상으로 대체될 것”이란 관측이다.

그의 말처럼 디지털의 영향력은 급격히 빠르게 확산됐다. 스마트폰으로 손 안의 세상이 열린 이후 페이스북은 물론 인스타그램, MCN 등 새로운 사진, 영상 플랫폼이 속속 등장했다. 글이 사라진 자리엔 움짤, 웹툰, 카드뉴스 등 시각적 콘텐츠가 채워졌다. 이름난 문예지가 경영난에 폐간을 선언하고 신문의 종말을 예언하는 분석도 잇따른다.

   
▲ 디지털 영향력이 급속히 증가하면서 글이 사라진 자리에 움짤, 웹툰, 카드뉴스 등 시각적 콘텐츠가 채워지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론 좋은 글에 대한 열망이 엿보인다. 쓰레기 같은 정보, 선정적인 자극 속에서 양질의 글을 찾는 흐름이다. 또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누구나 글을 쓰고 공유하는 시대가 되면서 글쓰기 실력을 키우려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을 부른 SNS가 오히려 아날로그 글쓰기를 재촉하는 SNS의 역설이다.

글쓰기 밀어낸 SNS의 역설

최근 글쓰기에 관심이 커지는 이유는 ‘소통’ 욕구 때문이다. 요즘은 누구나 인터넷 블로그나 SNS에 글을 올린다.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다. 일반인들도 잘 쓴 글은 큰 화제를 모은다. 그러다보니 2030세대들도 자신만의 표현, 더 많은 사유를 담은 깊이 있는 글쓰기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스마트폰 글쓰기앱 ‘씀’이다. 씀은 ‘세상에 멋진 생각들은 많고, 우리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는 모토로 만들어졌다. 매일 오전과 오후 7시 글쓰기 주제를 던져주고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기록하도록 돕는다. 주제는 내일, 출발점, 지나가다 등등 다양하다. 예컨대 ‘권력’이라면 “누가 나의 마음을 뒤흔드는가, 치킨이 바로 권력!”이라고 쓸 수 있고 진지하게 장문의 소설을 작성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과 글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도 씀의 매력. 작성한 글은 공개와 비공개를 결정할 수 있으며, 공개글의 경우 서로 읽어보고 평가할 수 있다. 두근거리는 감동글도, 슬픈글도, 웃기는 글도 있다. 글쓰기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매력 없는 앱이지만, 뭔가 끄적이고 싶은데 어렵다 하는 사람에겐 좋은 연습장 역할을 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키득대거나 아이디어를 얻다 보면 어느새 기분전환이 된다.

글쓰기는 인스턴트 글, 스낵컬처에 지친 사람들의 힐링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아날로그 글씨쓰기 책과 필사책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 요즘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스마트폰 글쓰기앱 ‘씀’.

인터파크도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필사 관련 도서 판매는 전년대비 4.1배나 증가했다. 서점가에는 명시와 명문장을 모은 ‘마음필사’, 행복과 긍정 메시지를 담은 필사책 ‘오늘, 행복을 쓰다’ 등이 출간돼있다. 손글씨책들은 예쁜 글씨 공부를 위한 게 아니라 위로와 격려가 되는 문장을 따라 쓰면서 힐링하는 데 목적이 있다.

디지털 시대에 글쓰기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찬호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는 “디지털은 인간의 두뇌 용량이나 처리속도에 맞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스마트폰 속 다양한 콘텐츠는 나를 외롭지 않게 해주고 일시적인 기쁨을 주지만, 진정한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좋은 글은 사유의 밀도가 있고, 정성이 들어간 콘텐츠라서 마음을 움직이는 데 효과적”이라며 “디지털 피로감에 따른 반대급부로 아날로그 글쓰기를 찾는 것은 균형을 맞춰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래학자 존 네이스비트가 말한 ‘하이테크-하이터치’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우리의 삶에 더 많은 하이테크(첨단기술)를 도입할수록 우리는 더 많은 하이터치(높은 감성)를 갈망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작문실력=미래연봉?

디지털 피로도에 대한 반감이 정서적 글쓰기의 원동력이라면, 한편에선 연봉을 높이기 위해 실무적 글쓰기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취업과 승진에서 글쓰기 능력이 필수인 만큼 관련 책을 읽거나 문화센터, 사설학원에 다니며 논리적 사고와 문장력을 키우는 것이다.

실상 우리는 늘 무언가 쓰고 있다. 회사에 가면 업무보고부터 기획안, 제안서까지 모두 글로 시작해서 글로 끝난다. 공무원, 교육자, 사업가 등 대부분 직업에서 글쓰는 일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글은 기록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표현하지 못하면 능력 없는 사람이 된다. 글쓰기가 곧 능력인 셈이다.

마크로밀엠브레인이 지난해 직장인 57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보고서와 문서작성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직장인의 비율은 무려 88.4%에 달했다. ‘글쓰기 능력이 성공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비율도 77.7%로 나타났다.

글쓰기 능력은 세계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버드대학교는 체계적인 글쓰기와 이를 바탕으로 한 토론 수업으로 유명하다. ‘논증적 글쓰기 강좌(Expos)’라 불리는 글쓰기 프로그램은 전문가 1:1 첨삭 수업, 읽고 토론하고 고쳐쓰기 등으로 구성됐다.

학생들은 글쓰기 수업을 최소 한 학기 이상 수강해야 졸업할 수 있다. MIT대학은 매년 200만 달러의 예산을 들여 글쓰기 프로그램인 ‘의사소통 집중교육’을 운영한다. 공학자에게도 문장력과 사고력 향상을 위한 교육은 중요하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직장인은 최하위 직급에서 한 단계 오른 후부터 말과 글을 통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능력에 따라 평가된다”며 글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계속>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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