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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말하기’, 그 불편함의 이유[20's 스토리] 논객닷컴 청년칼럼 공모전 장려상
승인 2016.09.16  12:09:31
이광호  | dumber421@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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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를 사귄다고 하면 꼭 묻는 질문이 있다. ‘했냐?’는 거다. 이건 상당히 고상한 편이고 대부분은 훨씬 저속한 말을 한다. 대답할 가치조차 못 느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다. 최소한의 예의마저 지켜지지 않는 질문은 불쾌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는 없다. 정색하면 ‘씹선비’라는 조롱을 피할 수 없으니 애써 다른 이야기를 한다.

   
▲ 영화 '소셜포비아'의 한 장면. 글의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내가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면 큰 오해다. 불쾌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려고,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재밌는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최소한 내가 이야기하는 동안은 이상한 질문에 대답할 걱정은 안 해도 되니까.

그 친구들이 특별히 나쁜 아이들은 아닐 거다. 그런 표현이 일상적 언어가 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게 면죄부가 되진 못한다. 나 또한 비슷한 불쾌감을 주었던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점점 동창들과의 자리를 피하게 된다. 그런 질문에 정색하면 꼰대가 되거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니깐 말이다. 그곳에선 언제 피해자가 될지, 가해자가 될지 모른다. 차라리 혼자가 편하다.

동의하지 않으면 ‘씹선비’


얼마 전 고려대 카톡방 언어 성폭행 사건이 있었다. 비슷한 사건이 서울대에서도 일어났다. 서울대라고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그들 또한 카톡방에서 여성들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성적 대상화했다. ‘남자끼리니깐’ 괜찮다고 생각했다.

고려대 카톡방 사건처럼 이번 사건에서도 ‘남자 말하기’(남자니깐 너도 동의하지?라는 생각을 전제에 깔고 하는 대화)가 계속됐다. 서울대학교 학생 소수자 인권위원회에서 공개한 대화 내용의 일부를 조금만 보자. (굳이 보고 싶지는 않지만)

   
▲ 출처=서울대학교 학생·소수자인권위원회 페이스북

누군가 야한 사진을 올렸다. C가 ‘야한 사진 올리지 말고 과제나 하자’고 하니 E와 B는 바로 비웃는다. ‘남자인데 왜 동의하지 않냐’는 거다. B는 더 나아가 ‘심기 불편한가봐’라고 말하고, D는 ‘C가 안동선비급’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야한 사진을 올리고 즐기는 문화에 동의하지 않는 C를 남자들의 대화에서 배제시키려는 거다. 이게 ‘남자 말하기’다. 남자끼리의 문화를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동의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문화를 강요하는 것 말이다.

물론 다른 대화 내용을 보면 C도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던 사람들도 이런 문화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다 보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거다.

하지만 이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C가 친구들을 내치고 카톡방을 나가지 못 한 게 잘못이라고 하기에 C의 부담은 너무 크다. 

냉정하게 말해서 동의하면 성폭력 가해자가 되는 거고 동의하지 못 하면 친구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지는 거다. 머리로는 잘못이라는 걸 알아도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또 다른 카톡방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공범의식, 동질감 덕분이다.

숨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 병장’이라는 슬픈 말이 있다. 군대의 부조리를 참으면 구타의 피해자가 되고, 못 참으면 살인자가 된다는 거다.

개인이 구조를 바꿀 수 없으니 그 감정이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자신의 주변 사람을 파괴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거다. 개인에게는 잘못이 없다, 개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처벌만으로는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민중은 개, 돼지’라고 말했다. 이건 그가 가졌던 평소의 가치관이 표현된 거다.

기자들 앞에서 표현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민중을 개, 돼지로 생각하는 그의 생각은 그대로였을 거다. 우리가 진짜 바꿔야 하는 건 그런 생각들이다. 민중을 개, 돼지로 보거나,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모두 말이다.

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말을 못 하게 하는 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당장은 해결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언젠가는 더 큰 문제가 벌어질 게 분명하다. 침대 아래 숨겨놓은 물건들처럼 말이다.

당장은 깨끗해 보이겠지만 언젠가는 가득 차서 침대 밖으로 튀어나오고 만다. 그때 치우려면 더 힘들다. 숨기는 건 전략이 될 순 있지만 해결책이 되진 못한다. 숨기는 걸로 만족하지 말자. 깨끗한 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자. 그나마 이런 사건들이 공론화되기 시작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변화가 시작되는 조짐이니까.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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