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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속 각자도생, 그래서 어쩌라고[20's 스토리] 논객닷컴 청년칼럼공모전 장려상

요즘 청년들이 고생이 많다. 정작 그들은 가만있는데 끊임없이 여기저기서 바쁘게 호출해대니 말이다. 전직 대통령 한 분은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며 좋은 일자리가 널렸는데 편한 일자리만 찾는다는듯 나무랐고, 현직 대통령은 한때 청년들을 기회(?)의 땅 중동에 보내려 하셨다.

저명한 교수이자 자기계발서로 유명한 한 분은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지금의 고통을 즐기라고 말하며, 또 다른 유명 여행작가이자 국제 구호단체 활동가는 꿈이 7급 공무원이라는 청년에 꿀밤을 때리며 좀 더 원대한 꿈을 가지라고 말한다. 장학재단의 이사장이라는 분은 앞으로 성적 장학금을 줄이고 학자금 대출을 늘릴 것이라면서 빚이 있어야 파이팅이 생긴다고 했다.

▲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뉴시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과 언론 등은 청년들의 선택이 마치 지금 사회의 모든 문제점을 싹 고쳐댈 것인양 호들갑을 떤다. 그런데 정작 청년층 투표율이 낮으면 그 유명한 ‘20대 개새끼론’을 운운하며 그들이 투표를 안 해서 사회가 이 모양이 됐다고, 투표하지 않는 청년들은 사회에 불만을 토로할 자격이 없다고 몰아세운다.

이러한 사회 각계각층의 청년들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도 아이러니하게 요즘 대부분의 청년들은 이 사회에 불만도 만족도 없다. 그런 데 쏟아 부을 시간이나 관심, 애정이 없다. 이 사회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나 하나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지독한 개인주의자, 이기주의자라서 그런 것일까?

많은 청년들이 오늘도 각종 공무원 시험과 공기업 입사를 위해 학원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공공 봉사 정신이 투철해서 그 시험들이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안정적인 직장과 충분한 여가시간, 그리고 연금이 보장된 평안한 노후생활을 꿈꿀 뿐이다.

어떤 이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것이 청춘인데 그런 안정된 삶을 바라는 것 자체가 올바른 청춘의 모습은 아니라고 말한다. 올바른 청춘이란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옛날에나 통했던 이야기다.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소위 금수저가 아닌 한 지금 세계는 이미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위험을 많이 무릅써야만 겨우 생존하는 세상이 됐다.

80~90년대만 해도 서울에서 웬만한 4년제 대학을 나오면 (특히 남자들의 경우) 토익 점수나 각종 자격증 없이도 평생 고용이 보장된 대기업에 척척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때는 오히려 공무원이 인기가 없었다. 취업이 그리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그 시대의 학생들은 마음 놓고 학생운동에 전념하며 사회의 변혁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1년에 1000만원 넘게 드는 등록금을 4년간 학교에 바치는 것도 모자라 영어학원, 자격증학원, 각종 고시학원 등에 돈을 써야 한다. 해외 어학연수와 봉사활동 등 소위 스펙을 갖추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정규직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계약직, 비정규직 자리도 쉽지 않다. 요즘 스펙 타파를 위해 직무능력을 보고 신입사원을 뽑는다지만 그런 직무능력은 또 어디서 배워야 하는 것인가?

▲ 요즘 청년들은 미래는커녕 지금 당장의 삶도 위태롭게 느낀다.

미래는 불안하고, 아니 미래는커녕 지금 당장의 삶도 위태로운데 청년들에게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많이 미안한 일이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헬조선’일 뿐이다. 여기가 지옥이면 북한 같은 곳은 무엇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답은 간단하다. 북한은 여기보다 더한 지옥일 뿐이다. 여기보다 더한 지옥이 있다는 것이 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과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이 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 직원들이 특정 후보 비방 댓글을 달고, 청와대가 보수단체에게 특정 집회를 요구한 것이 알려져도 세상은 달라지는 게 없다. 어차피 세상은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고 우리는 그저 내 생활만 건사하며 살면 된다는 마음이 팽배해 있다.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세상을 신경 쓰나?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확실히 자력구제,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지금의 청년들에게 이 사회란 단지 태어나 살고 있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여건만 된다면 언제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날 것이다. 다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3포 세대를 넘어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지금 모든 걸 다 포기하고 그냥 하루하루 생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누가 되든 거기서 거기이며 그것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지구 한쪽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데 반대편에선 식량이 남아돌아 멀쩡한 곡물을 폐기처분한다. 그 곡물을 필요한 곳에 보내면 되지 않느냐는 순진한(?) 질문에 그것은 경제가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과잉생산으로 가격이 떨어져 손해를 입는 것보다 차라리 버리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누구는 흥청망청 써도 남을 만큼 지나치게 많은 돈을 벌고 누군가는 생활은커녕 생존하기도 힘들다. 심지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정규직,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2배 이상 급여가 차이난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이 안정적인 공무원을 꿈꾸고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애쓰지만, 설령 정규직이 되도 안정적으로 일할 시간은 길지 않다. 당장 40대만 넘으면 구조조정, 명예퇴직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남는 길은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 정규직이 되는 것보단 정규직 비정규직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것, 결국은 모두가 정규직이 되는 사회이다.

그럼 대체 어쩌란 말인가? 결국 답은 연대밖에 없다. 개인의 힘은 약하지만 모두가 어깨 걸고 한 목소리를 낼 때 그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힘을 모으면 최근 이화여대 사태처럼 상업화로 치닫는 대학의 거친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비록 일부 국·공립대의 사례이긴 하지만 반값 등록금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도 있다.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긴 하지만 청년 수당 제도도 생겨났다. 선진국의 12배법처럼 최저임금과 최고임금 사이의 격차를 30배로 한정하자는 법안도 준비 중이다. 견고한 남성중심 사회도 용기 있는 여성들의 연대로 조금씩 균열되고 있다. 이처럼 세상은 조금씩 달라지는 중이다. 이것은 모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냄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의 불평등한 현실이 개선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당장 경쟁에서 이겨 앞서 나가더라도 결국은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소위 금수저라고 생각된다면 세상이 어찌 되든 지금 자신이 사는 대로 평생 누리고 살면 된다. 하지만 이 땅을 떠나지 않고, 혹은 못하고 계속 살아야 된다면 현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불평등을 바꾸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김동진  hasom7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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