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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그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독특한 컨셉·취향 저격·경험 제공으로 승부수

그 많던 책방이 사라진 시대, 독특한 콘셉트와 경험으로 승부를 보는 동네서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독서인구 감소와 인터넷 판매처와의 승산 없는 경쟁은 20년 새 70% 이상의 서점이 감소했다는 암울한 통계치를 전해오지만, 이들 작은 책방은 장르서적, 소규모 독립출판물, 지역민과의 커뮤니티 등을 앞세워 저마다의 생존기를 써나가고 있다.

   

[더피알=안선혜 기자] 지난 8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는 장서 6000~7000권 규모의 ‘최인아책방’이 들어섰다.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등의 카피로 이름을 알린 제일기획 출신 광고인 최인아씨가 정치헌 디트라이브 대표와 함께 낸 서점이다.

방송인 노홍철 씨도 최근 해방촌 낡은 주택을 개조해 ‘철든책방’을 탄생시켰다. 김제동·손미나 씨 등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책과 노 씨가 평소 관심을 갖던 독립출판물, 인기 세계문학전집 등을 들여놓았다.

또한 인디 가수 요조, 시인 유희경 등도 개성 있는 책방 주인장이다. 독립출판물이나 시집으로 해당 공간을 채워가고 있다.

유명인들만이 특색 있는 서점 창업 대열에 들어선 건 아니다. 최근에는 음악서적이나 여행서적, 추리 소설 등 특화된 장르만을 다루는 책방이 속속 생겨나는가하면, 퇴근길 책 한 권에 술 한 잔을 기울일 수 있는 서점이나 숙박을 겸하는 곳이 등장하는 등 규모는 크지 않아도 각기 개성을 살린 서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독서 인구가 줄어들고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인쇄매체가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이들 독립서점들의 등장은 시류를 거스르는 시도로 보인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의 지역서점은 1994년 5683개에서 2003년 2224개, 2011년 1752개, 2015년 1559개로 급감했다. 20년 새 70%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대형 서점조차 운영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독특한 콘셉트를 입은 작은 서점들이 생겨나는 건 사람들이 ‘모든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아닌 ‘내 취향에 맞는 책들이 들어선 공간’을 선호하면서다.

대형서점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독립출판물을 찾기도 하고, 독서모임이나 강연 등을 통해 문화공동체를 이루는 욕구를 충족시키기도 한다. 기업형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주인장의 개취(개인 취향)는 공통분모를 가진 손님을 이끄는 좋은 촉매제다.

신혼부부가 주선하는 책과의 소개팅

순천역 맞은 편 역전시장 초입에 위치한 ‘책방심다’도 작지만 주인장의 취향을 듬뿍 담은 공간이다. 사진을 전공한 부부가 구입하거나 선물 받은 사진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독립출판물과 사진, 그림, 여행, 문학과 관련된 일반 도서들이 골고루 배치돼 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책방심다에서 진행된 드로잉 원데이 클래스, 블라이든 데이트 도서, 책방심다 내부.

이제 결혼한 지 갓 1년을 넘긴 신혼부부가 여행을 다니며 모았던 각국의 특별한 그림책과 팝업북들도 감상할 수 있다.

이 서점에는 책 표지를 보지 않고 구입하는 ‘Blind Date with a Book(책과의 소개팅)’ 코너가 마련돼 있다. 대중적 주목을 받지는 못했으나 부부가 엄선한 좋은 책들을 정성스레 포장하고 책을 대표하는 태그(정보를 설명할 키워드)를 붙여 놓는 식이다. 일종의 주인장 추천 리스트인 셈이다.

오로지 포장지 위에 붙어있는 몇 개의 단어만으로 선택해야 하지만, 럭키박스와 같이 무엇이 나올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진다.

지역민과의 교류를 위한 활동도 진행 중이다. 수제맥주 만들기, 감성수채화 그리기, 포토샵 강좌 등의 원데이클래스를 비롯해 음악이 있는 북토크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책속의 지식과 사람의 지혜가 만나고 교류하는 장소를 희망한다”는 게 이곳 주인장의 설명이다.

지난 5월에는 서점 손님들과 지인들을 통해 헌책을 기부 받아 ‘책꾸러미, 책꾸러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기부 받은 책을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으로 새 책을 구매해 섬마을 학교에 기증했다. 그밖에도 지역민들의 독서모임을 위해 서점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하며 소규모 독서모임도 갖고 있다.

60년 장수 서점의 색깔 있는 변신

강원도 속초에는 3대가 60년째 운영하고 있는 곳도 있다. 김일수 대표와 아들 영건씨가 운영 중인 ‘동아서점’이다. 한때 폐업까지 고민한 적도 있지만, 영건 씨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속초로 내려와 이곳 팀장으로 십분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1월 리뉴얼을 거치면서 동아서점은 429㎡(약 130평) 규모로 확장하고 매장 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했다. 창가 바(bar)를 비롯해 중앙 테이블과 소파, 곳곳에 배치된 나무의자를 합하면 50여명 가량을 수용할 수 있다.

   
▲ (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70년대 동아서점 전경. 현재 동아서점 외관, 유시민 초청 ‘동네 서점 흥해라!’ 행사 현장, 동아서점 자체 판매량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손수 쓴 베스트셀러 목록.

김 팀장이 서점을 맡으면서 독립출판물을 소량씩 비치해 매장 별도 코너에 두고 판매하기도 하고, 전체 책 배열에 있어서도 간간히 재미있는 시도를 한다. 가령 <사랑은 왜 아픈가>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그렇다면 정상입니다>처럼 제목을 이어 읽을 수 있는 것들끼리 배열하는 것이다. 장르도 다르고 별 상관은 없는 책이지만,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또 표지색이 어울리는 것들끼리 배열하는 등 디자인이 강조된 진열을 하기도 한다. 그밖에도 ‘자연으로부터 배우는 삶’ ‘사랑’ ‘일자리’ 등 유사한 주제의 책들을 묶어 전시하기도 하고, 다양한 관점을 비교해볼 수 있는 책들끼리 진열을 시도한다.

매달 발표하는 자체 베스트셀러 목록도 정감 간다. 전지에 손글씨로 써내려간 이 리스트는 매달 서점 페이스북에도 공개되는데, 페친(페이스북 친구)들은 이것만 따로 모아도 근사한 책이 될 거라며 관심을 표한다.

동아서점 역시 지역 주민들과의 교류를 위한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독서 모임을 지원하고 저자를 초청해 독자와 만남을 갖는 등 책을 매개로 한 커뮤니티 공간으로 자리하는 모습이다. 지난 8월 16일에는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표현의 기술> 저자 유시민씨를 초청해 ‘동네 서점 흥해라!’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인기 저자의 방문은 지역 서점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타이밍에 맞춰 소소한 이벤트를 진행하는 센스도 발휘한다. 지난 7월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켓몬고(GO)를 실행할 수 있는 곳으로 속초가 이름을 알렸을 당시 서점에서 포켓몬을 잡아 인증 사진을 직원에게 보여주면 전 도서를 10% 할인해주는 행사를 진행했다.

책 만드는 헌책방, 정기구독자 모집 중

동네 책방들은 직접 책을 출간하는 데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경남 진주시에 자리한 헌책 전문 서점인 ‘소소책방’은 지역 작가들과 손잡고 책을 출간했다.

현직 교사인 박성진 시인과 펴낸 시집 <숨>을 비롯해 부산 지역 작가와 함께 한 그림일기 <환자의 나날> 등이다. 소소책방 운영기를 기록한 <소소책방 책방일지>도 있다. 정기구독자를 모집해 1년에 4권의 책을 보내는 프로젝트를 진행, 이들 세 권의 책을 포함해 올 연말 한 권의 책을 더 출판하면 네 권을 채우게 된다.

   
▲ 소소책방 내부 전경과 소소책방에서 출간한 <환자의 나날>.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 씨는 “책방잡지를 꾸준히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벌써 내년엔 작고 가벼우면서 저렴한 책과 잡지를 내겠다는 다짐을 페이스북에 내비치기도 했다.

소소책방은 밝을 소(昭) 자를 사용해 ‘사리를 밝히는 책방’이란 뜻으로, 소소란 말이 부르기도 쉽고 여러 가지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어 선택했다. 운영 3년째다.

이곳도 매달 7~8회 정도 독서·글쓰기 모임 등을 가지면서 지역민과 교류한다. 책방을 열고 꾸준히 진행해왔던 ‘손바닥 소설 쓰기 모임’은 가장 반응이 좋은 모임 중 하나다. 소수지만 참여율은 높다. 영화 관련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인 ‘인디씨네 옆 책꽂이’나 지역 음악 모임과 손잡고 작은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페이스북에는 기자 출신 주인장의 글솜씨가 묻어나는 장문의 서평을 남기고는 한다.

소소책방 외에도 독립출판물 제작을 겸하는 곳은 많다. 순천 책방심다를 비롯해 광주 파종, 서울 혜화동 데이지북 등은 출판과 서점 운영을 동시에 하고 있다.

관객 12명과 함께한 상영회…‘괜찮아 시작이야’

어느 가게든 마찬가지겠지만 동네 서점 역시 작명 센스가 중요하다. 경기도 가평 설악면에 들어선 동네 책방 ‘북유럽(Book You Love)’은 이제 오픈 6개월 남짓의 파릇한 서점이지만, 일찌감치 여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책방 주인장이 최근 여행 에세이를 내면서 인터뷰한 덕분에 알려진 면도 있지만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북유럽은 북(Book)과 유러브(You Love) 사이에 관계대명사 ‘댓(that)’이 생략된 것으로 ‘당신이 사랑하는 책’이란 의미다. 책방 유리창에는 ‘雪岳(설악)에서는 書樂(서락)을…’이란 문구가 있는데, 서락은 책방 간판이 될 뻔 했던 후보군 중 하나다. 설악에서 책을 즐긴다는 의미의 언어유희다.

이곳에는 시, 소설, 인문학 서적을 비롯해 주인 부부의 딸이 좋아하는 추리·판타지 소설을 중심으로 책 700~800여권이 들어서 있다. 총 400여권으로 시작했는데 올해 안으로 1000권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프리랜서 사사(社史) 작가이기도 한 주인 김영우 씨는 딸아이를 위해 청소년 인문학 잡지를 만들 계획도 갖고 있다. 2~3년 안에 이를 해낼 생각이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이 책방은 잠재 고객들과의 보다 긴밀한 소통을 위해 최근 네이버 밴드도 시작했다. 주 타깃인 30~40대가 많이 사용하는 모바일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주 5일 동안 하루 한 권씩 책을 추천하고, 한 달에 한두 번 가량 이벤트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최낙타를 초청해 북유럽에서 연 미니 콘서트, 북유럽 안내 깃발, 서점 내부, 손수 제작한 영화 <우리들>상영회 포스터.

첫 서점 운영이다 보니 좌충우돌 몸소 부딪히며 익혀나가는 일도 많다. 얼마 전에는 200~300권 가량의 책을 반품하기도 했고, 야심을 갖고 준비한 영화 상영회에 주인 가족 포함 12명만이 조촐히 모여 감상하기도 했다.

<우리들>이란 영화를 직접 배급사에 기획안까지 보내 30% 가량 할인된 가격에 받아오기까지 했지만 다소 씁쓸했던 성적이었다. 포스터를 제작하고 페이스북에도 올렸건만, 왜 알리지 않았냐며 나중에 관심을 보인 이들도 많았다는 전언.

운영 3년차에 접어든 소소책방 조경국 씨도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묻는 질문에 “전부 어렵다. 가늘고 길게 버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는 듯하다”며 앓는 소리를 했다. 독특한 콘셉트와 다양한 문화 활동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는 있지만 빈약한 독서 인구와 그마저도 인터넷서점으로 몰리는 수요는 이들 동네 책방이 헤쳐 나가야 할 현실이다.

동아서점 김영건 팀장은 자신의 책방을 소개하면서 “일본에서는 60년이면 오래된 서점 축에 오르지도 못한다”며 민망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점의 생존 기반이 취약한 국내의 현실을 반증하는 사례다.

여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개성으로 무장한 동네 서점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독립출판서점 짐프리에 따르면 올해 2월 기준 서울 지역 독립서점은 48개, 그 외 지역은 23개가 존재한다.

퍼니플랜은 전국 70여개 국내 서점 정보를 공유하는 ‘동네서점 지도’를 만들었다. 책과 술을 함께 즐기는 심야서점부터 여행, 고양이, 그리고 시니어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단행본과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곳, 해외잡지 및 디자인서적만을 취급하는 곳 등 다양한 독립서점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다.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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