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작품은 ‘예쁜 쓰레기’?
졸업작품은 ‘예쁜 쓰레기’?
  • 김연수 (ide04060@naver.com)
  • 승인 2016.11.0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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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대학생활의 마지막 과제이자 상징이 ‘제작비 부담’으로…일부선 ‘대행 꼼수’ 성행

대학 졸업은 20대의 첫 끝맺음이다. 험난한 사회로 나아가기에 앞서 마지막 관문이 기다리고 있다. 그간 보고 배운 것들을 평가받는 졸업 작품이 그것이다. 인문계는 논문이나 시험을 통해, 예체능·이공계 전공자들은 작품을 통해 배움을 최종 점검한다.

11월은 대학교 시험기간도 아니고 각 기업의 공채도 얼추 마무리되는 시기다. 하지만 캠퍼스 한편은 여전히 마지막 과제인 졸업 작품 만들기로 분주하다.

대학생들은 미술, 의상 디자인, 컴퓨터 공학 등 전공에 따라 새로운 앱을 개발하거나 3D 프로그램을 설계한다. 4년간의 노력을 쏟아내 세상에 없던 역작을 탄생시키거나 단 하나뿐인 특별한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전공에 따라 공개발표회를 통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는 경우도 있다.

▲ 상명대학교 사진영상미디어학과 김경희 학생의 졸업작품 '편견과 괴리'. (자료사진으로 기사내용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뉴시스

예술, 산업, 영상, 디자인 등 예체능·이공계 관련 학과에서는 졸업 작품을 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답이 없고 창의력과 독창성을 요구하는 학과 특성상 학생 고유의 개성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졸업 작품은 강의실에서 머리를 붙들고 들었던 수업 내용들을 총망라한 결과물로서 의미가 크다. 대학 생활의 마지막 과제이자 기회라는 상징성도 있다.

그러나 졸업 작품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종종 벌어지고 있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졸업 작품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졸업 작품 대행’이 버젓이 성행하는 것이다. 정당한 방법이 아닌 것은 물론 대학생으로선 부담스러운 거액의 비용이 드는데도 ‘대행’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는 졸업 작품을 구상하고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다, 졸업 작품 제출시기가 10월~11월 기업 하반기 공채 시즌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작품 대행료가 부담스럽긴 하지만 시간을 아껴 취업하는 게 더 낫다는 생각에 일종의 투자로 생각하고 남의 손을 빌리는 것으로 보인다.

작품 대행을 맡기지 않는 대부분 학생들은 스스로 실력을 담금질하며 마지막 열정을 불사른다. 그러나 졸업 작품 준비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우선 비용 문제가 학생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졸업 작품에 드는 비용은 학과나 작품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30만~500만원이 필요하다. 학교에서 졸업작품비 일부를 지원하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 지난 5월 건국대 서울캠퍼스에서 열린 의상디자인학과 졸업작품 패션쇼. (자료사진으로 기사내용과 무관함을 밝힙니다) 뉴시스

이 때문에 다수의 학생들은 사비를 털어서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형편이다. 많은 학생들이 부모님의 지원을 받거나, 졸업작품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

실기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는 학과들은 졸업 작품 발표회를 따로 여는 경우도 많다. 미술학과, 디자인학과, 의상학과, 무용학과, 연극영화학과, 공학계열 학과 등이 대표적이다.

대학생들에게 졸업 작품 만들기는 중요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상징적인 행사이고, 또 한편으론 졸업 작품이 취업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업을 위한 졸업전시회가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단순한 발표회로만 그치는 일이 많아 실제로 예비 졸업생들에게 큰 부담만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졸업 작품은 대학 생활의 꽃이고 젊은이들의 잔치라고 불린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만 고군분투할 뿐이다.

일부 학생들은 공들여 만든 졸업 작품을 ‘예쁜 쓰레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졸업 작품 전시회에서만 반짝 선보이고 실생활에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좋지만 넒은 공간만 차지하다 결국 창고로 밀려나고, 행방이 묘연해지는 일이 빈번하다.

반면 유럽의 예술 대학에서는 학생들의 졸업 작품 제작비를 거의 100% 지원해준다고 한다. 그러므로 학생들이 개인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또한 국내에서는 대부분 시내 갤러리나 영화관에서 졸업전시회를 열지만 유럽에서는 대체로 학교 안에서 전시회를 열어 대관료 부담도 없다. 졸업작품비 마련을 위해 따로 시간을 떼어내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우리의 현실과는 사뭇 대비된다.

일부 대학들은 지역 내 학교들과 연계해 취업 박람회처럼 졸업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졸업전시회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학생들을 도와 실제로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또한 주위의 시선을 끌기 위해 이색적인 장소에서 발표회를 열기도 한다.

실제로 서울의 한 대학은 미술학과 학생들의 졸업 작품 전시회를 시내버스에서 열었다. 승객들은 버스를 타고 내리며 자연스럽게 작품을 감상했고, 학생들은 뿌듯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학교의 작은 배려가 더해진다면 졸업 작품이 더 이상 일회용으로 버려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학교 측은 졸업 작품 전시회가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졸업 작품은 20대의 첫 완성작이자 사회로 나가기 전 마지막 발자취이다. 사람들이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완성도 높은 훌륭한 작품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들 역시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실한 모습이 담긴 작품들을 마련해 졸업 작품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지 않길 기대한다.




김연수

제 그림자의 키가 작았던 날들을 기억하려 글을 씁니다.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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