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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던 시사코미디, ‘최순실’ 계기로 부활?각종 예능서 ‘최순실 패러디’ 봇물…“대중문화계 분노 정치적 표현으로 나타나”

[더피알=문용필 기자] 갑자기 찾아와 매몰차게 전세금 인상을 통보하는 집주인 아줌마.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차림새다. 머리 위로 올려 쓴 선글라스와 하얀 블라우스, 도도한 표정 등이 최근까지 독일에 계셨다던 ‘그분’과 흡사하다. 세입자와의 실랑이 도중 자신의 ‘프라도’ 신발이 벗겨졌지만 ‘곰탕’을 대접하겠다는 말에 금세 반색한다. 

   
▲ 지난 5일 방송된 tvN 'SNL 코리아'에 등장한 최순실 씨 패러디. 방송화면 캡처

지난 5일 방송된 tvN ‘SNL코리아 시즌 8’의 한 장면이다. 누가 봐도 최순실 씨를 패러디한 배우 김민교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최 씨의 딸 정유라 씨도 풍자의 칼날을 빗겨가지 못했다. 짙은 화장을 한 채 승마복을 차려입고 말과 한 몸이 된 개그맨 유세윤은 “엄마 신발 한짝 찾으러왔다”며 ‘프라다’를 목청껏 외치고 “엄마 빽도 능력인 걸 모르냐”고 맞섰다.

SNL코리아 뿐만이 아니다. 최근 들어 ‘최순실 게이트’를 우회적으로 풍자, 조롱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동안 주춤했던 시사풍자 코미디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지난 6일 방송된 ‘개그콘서트-세젤예’에서는 최 씨 관련 키워드가 담긴 대사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최 씨와 흡사한 복장을 한 이수지가 등장하자 유민상은 “그분이 아니냐”고 했고 이수지는 “그 사람 아니다”며 자신이 든 가방이 태블릿PC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쉴 새 없이’라는 표현에 “실세라니”라고 민감하게 반응하는가하면 “이대로 드리면 되느냐”는 말에는 “왜 내 앞에서 이대 얘기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이 출연진들의 분장과 액션으로 ‘촌철살인’의 패러디를 선보인다면,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은 자막을 무기로 풍자에 나서고 있다. 대표주자는 MBC ‘무한도전’이다.

지난 5일 방송된 무한도전에서는 ‘내가 이러려고 지구에 왔나’라는 자막이 등장했다. 전날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고 말한 것을 패러디 한 것.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 방송분에서는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라는 자막이 전파를 탔다. ‘오방색’은 지난 2013년 박 대통령 취임식 당시 등장한 ‘오방낭’을 풍자한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을 패러디한 자막이 등장한 MBC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

다음날 방송된 SBS ‘런닝맨’에서도 최순실 게이트를 겨냥한 자막들이 쏟아졌다. ‘오해금지’라는 전제를 깔기는 했지만 ‘실제론 참 순하고 실한데’라는 자막이 등장했고, 출연진이 짜장면을 먹는 장면에서는 ‘간절히 먹으면 온 우주가 도와 그릇을 비워줄거야,,,!’라는 멘트가 붙었다. ‘비만실세’ ‘무정부 상태’ 같은 표현도 방송됐다.

이와 관련,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더피알>과의 통화에서 “무한도전은 가끔 시사풍자를 했지만 평소 그렇지 않던 프로그램까지 대거 동참한 것은 그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크다는 뜻”이라며 “특히 문화융성 정책에도 (최 씨가) 손을 뻗쳤다는 의혹이 나오면서 대중문화계의 분노와 배신감이 정치적인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또한 “말로는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시사풍자에 대한) 사실상의 억압이 계속됐고 (방송사들도) 권력의 눈치를 보는 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시사풍자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는데 워낙 국민적 공분이 크다보니 억눌려있던 것이 다소 살아나고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국내 시사풍자 코미디는 198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활성화됐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을 코미디 대상으로 삼아도 좋다고 말했고 김영삼 대통령 집권기에도 ‘YS는 못말려’ 등 대통령을 풍자한 유머들이 쏟아졌다. 이같은 현상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시사풍자 코미디는 방송가에서 점점 위축되기 시작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대선주자들을 텔레토비에 비유한 SNL코리아의 ‘여의도 텔레토비’는 어느 샌가 자취를 감췄다. 대선 정국에서 각 당의 유력 주자들을 거침없이 희화화한 미국 SNL과는 사뭇 대비되는 장면이다.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도 외압 의혹에 휩싸인 바 있다.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해 6월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꼬집은 이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해당 방송분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방심위는 “낙타고기나 생 낙타유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유재석의 메르스 관련 멘트를 문제삼아 무한도전에 대한 제재를 의결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최근의 ‘최순실 패러디’를 국민적 공분이 반영된 하나의 현상일뿐 시사풍자 코미디의 본격적인 부활로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아울러 최 씨나 박 대통령의 언행을 단순 패러디하는 것은 시사풍자의 본질에 미치지 못한다는 시각도 나타난다.

하재근 평론가는 “(우리나라의 정치 패러디는)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까지 약한 수준”이라며 “이 정도 수위의 사회적 관심사조차 나타내지 못한다면 표현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문용필 기자  eugene97@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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