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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을 설명할 수 있는가[20's 스토리] 재밌고 유익한 대화 방법에 관해

작년이었다. 영화 ‘인턴’을 보고 난 뒤의 일이었다. 아빠의 생일이었고, 그 다음날이 학과에서 주최하는 3박 4일의 학술 답사였으니 10월 4일일 것이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레스토랑으로 들어간 우리는 가족 세트메뉴를 시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살 스테이크와 같이 필라프가 나와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가족 식사였기에 대화 주제는 모두 공통의 관심사 위주로 돌아갔다. 몇 개의 화두 끝에 영화 인턴 이야기가 나왔다.

인턴은 경험 많은 70세 인턴이 열정 넘치는 30세 CEO를 만나 겪는 회사 생활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를 본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내가 이야기를 공유하자 가만히 듣던 누나는 “그래서 그 영화 볼만해?”라고 물어봤다. 재밌는 것은 세 명의 영화평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 경험 많은 70세 인턴과 열정 넘치는 30세 CEO의 모습을 담은 영화 '인턴'의 한 장면.

아빠는 영화에서 젊은 CEO가 쌓은 경력과 인턴이 가진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 직업군도, 스타일도, 연령도 아주 크게 차이가 났기 때문에 둘을 비교하기에 좋은 설명이었을지 모른다. 앤 해서웨이가 얼마 만에 사업규모를 키웠으며 나중에 어떤 회사에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강조했다.

그 사이에 엄마가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그때 인턴이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 하면서 CEO와 인턴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했다. 영화 속 젊은 경영자는 쌓여있는 업무와 지저분해지는 사무실 때문에 피곤해 하고 짜증이 났으며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 혼란스러워했다. 인턴은 그럴 때마다 그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절한 조언을 했다. 어머니는 부동산 공인중개사였고, 평소에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많은 인상을 받은 듯했다.

나는 누나에게 전반적인 영화 구조가 어떻게 구성됐는지를 설명했다. 여러가지 사건에 CEO가 ‘멘붕’을 터트릴 때마다 인턴이 넌지시,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개입하는 과정이 영화 전반적인 부분에 분포되어 있었고 여러 모로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누나는 영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세 명이 말하는 내용은 완전히 분리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인물 설정’을, 엄마는 ‘대사’를, 나는 ‘영화 구조’를 설명했으니 따로 노는 꼴이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한 영화를 가지고 저마다 완전히 다르게 말하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빠는 각기 다른 설명을 해도 누나가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님 하나는 코끼리 코에 대해 말하고, 하나는 다리에 대해 말하고, 하나는 몸통에 대해서 말하니 모두를 조합하면 하나의 모양이 나오겠지.”

일견 맞는 말 같았지만 누나의 혼란은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백문이 불여일견 아니에요?”라고 물었다. 결국 보는 사람이 결정해야 하는 일 아닐까.

누나는 결국 마지막에 “아니 그래서, 그 영화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거냐고”라고 재차 물었고 엄마와 아빠, 나는 이구동성으로 볼만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냥 그렇게 얘기해주면 되잖아?”

애초에 우리는 상대방의 질문을 너무 난해하게 해석해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재미있냐, 없냐’를 물었으면 ‘있다, 없다’로 대답하면 되는 일을 영화에 대해 늘어놨으니까.

위의 영화를 다시 말한다고 해보자. “주연 둘이 가지고 있는 신분적, 경력적인 측면에서의 갭이 크고 인턴이 꺼내는 대사들이 인상 깊은 게 많지. 젊은 여주인공의 스트레스를 예리하게 파악하고 부드럽게 감싸 안는 인턴의 행동들이 영화 전반부에 고루 포진되어있어서 좋았고 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었어”라는 설명과 “완전 재밌어. 미쳤나봐! 꼭 봐라~ 또 보고싶다. 진짜”라는 감상평. 어느 쪽이 더 흥미로운 대답인가.

우리는 모두 저마다 보고 싶은 데를 보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다른 곳에서도 적용된다. 상대방은 인상 깊은 것을 말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인물 설정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으며, 영화의 구조에 대해서 물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주 단순한 질문을 하는데 너무 어려운 확대해석을 하는 이 상황은 꽤나 자주, 눈에 띄게 일어난다.

   
▲ 우리는 모두 저마다 보고 싶은 데를 보고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다. 소통의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무슨 영화를 좋아해?” “인물들의 외적 갈등이 영상미와 함께 드러나는 영화를 좋아해.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나 아포칼립스 같은 설정들이 들어가는 것도 좋아하고.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얘기니까 그려내는 이미지 자체가 흥미로워. 너는?” “서부 애들이 총쏴대고 다 죽고 미친 액션 펼치는 거.”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지(知)와 무지(無知)의 차이에 대해서 당신은 설명할 수 있는가. 흔히 SNS상에서 쓰이는 용어들 중 ‘설명충’이라는 단어가 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전문적인, 혹은 분석적인 태도로 관찰하여 남에게 납득시키려고 헛수고하는 사람들. 그래서 되레 재미없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어린아이들이라면 모를까 현학적 태도는 자기만족이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자기가 ‘설명충’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면,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의 매력을 모른다고 비판하지 말자. 잘못은 자기 스스로에게 있다.

상대방과 같이 재밌고 유익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법은 한 가지다. 그 사람이 무엇을 물어보는가. 혹은 대화를 꺼내는 목적이 무엇인가. 재미를 위한 것인가, 정말로 납득을 위한 설명을 위한 것인가, 충고를 바라는 것인가. 의도를 알지 못하는 이상 우리의 대답은 언제나 엇나간다. 그렇다면 아무리 알아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지(知)가 무지(無知)와 별반 다를 게 없어지는 것이니, ‘알고서 말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 테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신명관  silbse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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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충#세대 간 소통#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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