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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 그리고 스물[20's 스토리] 성인의 눈으로 바라본 일상

열아홉의 동의어는 ‘고3’이다. 아침 7시 수업부터 밤 11시에 끝나는 야간자율학습까지. 나에게는 지켜야 할 책상과 의자 한 쌍이 있었고, 감옥보다 작은 그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책상 한구석에 붙어있는 시간표에 맞춰 흘러가는 밋밋하고도 똑같은 일상.

성인이라는 단어를 동경했다. 성인. 자라서 어른이 된 사람. 뜻이 정확하게 와 닿지는 않았지만 열아홉의 나에게 그 의미도 어감도 완벽해 보였다. 마치 ‘미성숙’이라는 것과 멀고 대비되는, 완연(完然)한 의미로 들렸다.

   
▲ 2017학년도 논술고사 응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렇게 나는 열아홉의 겨울을 지나 스무 살의 봄을 맞았다. 그러나 나의 성인은 완연하지도, 완벽하지도 않았다. 거울 앞에는 여전히 화장기 없이 작은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내가 하는 생각들도 유치하고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성인이 되고도 변한 것 하나 없는 내가 두려웠다. 어쩌면 나는 어릴 적 보던 만화영화 주인공이 요술봉을 흔들며 변신하듯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스무 살의 변신을 꿈꿨나보다.

이제 성인이라는 이름표도 달았는데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다. 열아홉 과거의 나와 구분 지을만한 무언가를 꾸역꾸역 찾아냈다. 내 용돈정도는 스스로 벌기로 했다. 부모님께 손 벌리기 죄송해서 시작한 것도 있었다. 동기야 어쨌든 그렇게 나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대학가 앞 편의점의 주말은 쓸쓸하다. 매장에 흘러나오는 음악 볼륨까지 줄여놓으면 정말이지 고요하다. 이따금 웅-웅 소리 내는 기계만이 이 공간의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린다. 창밖으로 버스와 승용차가 쉼 없이 지나다닌다. 마치 유리창을 경계로 각각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 정적. 그 사이에 내가 오롯이 있음을 느낀다. 때때로 고립감 따위의 공포감이 여유 속에 흘러 들어오고는 한다. 다들 열심히 달리고 있는데 왜 나만 멈춰있는 거야. 왜 그대로인 거야. 나는 두려움에 매장 문을 연다. 열어둔 문 사이로 바깥의 공기가 흘러 들어오고 차들이 내는 소음이 흘러 들어온다. 넌 멈춰 있는 게 아니야. 작게나마 움직이고 있잖아.

딸랑. 아줌마, 매일 같은 과자만 먹으면 안 질려요? 아저씨, 담배 하루에 두 갑씩 피면 안 좋아요 좀 줄여요. 할아버지한테는 이 소주 한 병이 삶의 낙일지도 몰라요. 언니, 매일 라면만 먹으면 몸 상해요. 건네지 못할 많은 말들을 ‘어서 오세요.’ 무심한 한 마디에 담는다.

   
▲ 편의점 유리창을 경계로 각각 다른 세계가 존재하는 듯하다. 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한 장면.

비슷한 시간에 찾아오는 비슷한 사람들. 하루는 흐르지만 일 년은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의미일까. 그들은 제 물건을 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나는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잊어버린다. 그들이 다시 이 공간을 찾아온다면 나는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또 잊어버리겠지.

문득 모든 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놀랄 때가 있다. 나도 의식하지 못한 사이, 어느덧 스무 살 가을이 왔다. 아니, 이제 가을도 지나가고 있다. 나 잘 하고 있느냐고 물어도 대답은 없다. 그냥 이렇게 하루하루의 일상을 지나다보면 겨울이 오고, 결국엔 봄이 올 것이다. 스물 한 살의 봄.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야자가 끝나고 터벅터벅 발을 끌며 늦은 밤공기에 추워하는 내가 있다. 도망치고 싶던 그 시간들이 종종 생각나는 건 왜일까. 누군가 나에게 기대하던 스무 살을 보내고 있냐고 물으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다. 변신은 없다. 약간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이렇게 흐르다 보면 나의 시간은 사라지겠지. 그 끝자락에서 나의 성인은 완연해질 수 있을까. 돈을 건네받으며 스치는 손끝과 손끝 사이로 우리는 통하고 있을까.

   

 

송채연

대한민국 218만 대학생 중 한 명.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 될래요.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송채연  scykymj@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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