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장갑’에 반기를 들다
‘벙어리장갑’에 반기를 들다
  •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 승인 2016.12.05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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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사용된 차별의 말…인식 전환·실질적 변화에 뜻모아

[더피알=조성미 기자] 아침·저녁으로 기온이 영하를 기록하는 요즘, 자연스레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내복, 털모자, 목도리, 벙어리장갑 등등… 어? 근데 왜 ‘벙어리’장갑이라고 부르는 거지?

벙어리는 ‘청각 기관이나 발음 기관에 탈이 있어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사전 풀이에도 적혀있듯 장애인에 대한 비하가 담겨 있는 표현이기에 청각·언어 장애인으로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엔젤스헤이븐의 '손모아장갑' 캠페인에 참여한 노스페이스의 포스터.

그에 반해 낮춤표현인 ‘벙어리’가 들어 있는 단어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요 속에 등장하는 벙어리저금통이나 글벙어리(글을 읽고 이해할 줄은 알지만 잘 쓰지는 못하는 사람), 벙어리뻐꾸기 등 ‘벙어리’와 결합한 합성어들이 국어사전에 다수 등재돼 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이는 벙어리장갑은 왜 이렇게 불리게 됐을까? 벙어리장갑을 지칭하는 영단어 ‘mitten’도 말 못하는 장애인을 의미하는 ‘mute’라는 표현과 별 상관없고, 불어단어 ‘moufle-muet’ 역시 큰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만 이러한 형태로 자리 잡은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국립국어원 측 역시 벙어리장갑이 언제부터 어떤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안된다고 전했다. 

다만, 사회복지법인 엔젤스헤이븐 측은 몇 가지 추론 가운데 ‘언어장애자는 성대와 혀가 붙어있다’고 믿은 옛날 사람들이 네 개의 손가락이 붙어있는 형태의 장갑을 보고 벙어리장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원이 어떻든 결국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담겨있는 표현인 셈. 이에 자칫 장애인을 소외시킬 수 있는 ‘일상의 표현’을 바꿔 이들에 대한 인식을 개선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선 엔젤스헤이븐은 3년 전 벙어리장갑을 대신할 새로운 이름을 공모하고 시민 투표, 농아인협회와의 논의를 거쳐 ‘손모아장갑’이라 명명하고 이를 알리기 위한 캠페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관련기사: ‘말’이 인식을, 세상을 바꾼다

엔젤스헤이븐은 인종차별을 담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살색’ 크레파스가 ‘살구색’으로 바뀐 것처럼, 언젠가는 손모아장갑이 벙어리장갑이라는 단어를 대체하고 국어사전에 등재될 수 있도록 활동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 엄지에 컬러로 포인트를 준 설리번의 '엄지장갑' 샘플.이

같은 문제를 지적한 이들은 또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벙어리장갑을 ‘엄지장갑’으로 바꾸자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소셜벤처 ‘설리번’이다.

경희대 언론정보학 전공 학생들이 모인 이 단체는 이들은 엄지처럼 홀로 소외돼 왔던 청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한다며 ‘엄지장갑 프로젝트’를 전개하고 있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이끌어 낸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공감과 응원을 보내고 있다. 손모아장갑 캠페인에는 노스페이스 등 기업과 단체의 동참이 잇따랐고, 엄지장갑 프로젝트의 경우 300만원 모금을 목표로 11월 30일 시작한 스토리펀딩이 하루만에 400% 이상의 후원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진행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차별의 말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장애인들이 비하되거나 상처 받는 언어를 바꾸고 더 나아가 말로 세상을 바꾸는 작은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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