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라는_가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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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충렬 (maynineday@naver.com)
  • 승인 2016.12.09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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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텔링1+1] 판타지에 기꺼이 지갑을 연다

브랜드텔링 1+1이란..?
같거나 다르거나, 깊거나 넓거나, 혹은 가볍거나 무겁거나. 하나의 브랜딩 화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과 해석.

[더피알=원충렬] “포장은 중요하다. 때로, 들어있는 물건보다 더 중요하다.” 대학생 때 패키지 디자인 강의에서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 물건 자체의 가치는 대체로 한정되지만, 포장은 그 가치를 열 배 이상으로 높일 수도 있고 반대로 십 분의 일로 낮출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맞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불편함도 있었다.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다.

▲ 브랜드도 가면을 쓴다.

“화장은 매너다.”

오해 마시라. 내가 한 얘기가 아니다. 사회 초년생 때 직장에서 우연히 들은 말이다. 여자동료들끼리 나눈, 사회생활 중 대면상황에서 화장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옆에서 처음 들었을 때, 그러한 생각 자체가 생소해서 놀랐다.

사실 화장과 포장은 다른 것이지만 보이는 것을 다듬어서 그 안의 대상을 더 가치 있게 하려는 행위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왜 그때 나는 화장과 포장의 발언에 대해 (그 시절 유행하던) ‘정치적 올바름’에 찔려 하면서도 내심 납득할 수밖에 없었을까? 실제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일까?

판타지를 현실로

결국 시간의 문제다. 다들 도무지 시간이 부족하다. 사람도 물건도 오랜 시간 깊게 볼 시간이 없으니, 그 안의 가치를 내밀하게 느끼고 판단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한눈에 읽히는 정체성, 인상에 가까운 정보가 점점 중요해진다. 보이는 외양으로 상대를 판단하게 되고, 그 안의 내용물을 경험해보기 전에 겉모습으로 품질을 판단하게 된다. 껍데기가 알맹이만큼 중요한 가치라는 건 더 이상 터부도 아닐 뿐더러 누구나 가면을 쓰는 것에도 익숙해졌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배우들이 쓰는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라고 불렀다. ‘외적 인격’, 즉 눈에 보이는 고유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페르소나의 순기능이 있다.

연극에서 맡은 역할을 관객들에게 쉽게 이해시킨다는 점이다. 또렷하게 파악되는 페르소나의 성격이나 특징이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알아서 전달되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할 수 있게 된다.

같은 이유로 브랜드도 가면을 쓴다. 브랜드에 인간적인 특성이나 개성을 입힌 것을 브랜드 페르소나(Brand Persona)라고 한다.

▲ 디즈니랜드는 '매직'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출처: 도쿄디즈니리조트 홈페이지

(나쁜 의미가 아니라) 가장 가면을 잘 쓰고 있는 브랜드라면 디즈니를 꼽을 수 있겠다. 디즈니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매직(Magic)이다. 모든 콘텐츠와 상품, 공간의 경험에서 마법이라는 가면을 벗지 않는다. SNS에서 파도 파도 미담만 나온다는 디즈니랜드 직원들의 에피소드를 보자.

예전에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어머니의 유품인 반지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신고는 했지만 물속에 빠뜨린 것이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바로 며칠 뒤 찾았다는 전화를 받는다. 도대체 어떻게 찾았는지를 물었을 때 들려온 대답은 이렇다.

“이 곳은 마법의 나라입니다.”

실제로는 그 반지를 찾기 위해 30명의 다이버가 동원됐다고 한다. 이들의 노력 덕분에 마법이라는 디즈니의 브랜드 스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확산됐다.

비슷한 사례가 많다. 올해에도 미국의 뉴스 미디어인 허핑턴포스트에는 디즈니랜드 퍼레이드가 펼쳐질 길 위로 한 다운증후군 소녀가 갑자기 누워버린 일화가 소개됐다. 당시 사람들은 직원이 곧바로 그 소녀를 길 바깥으로 옮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달려간 현장 관계자들은 예상과 달리 아이의 옆에 차례로 나란히 누웠다. 그리고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소녀에게 ‘하늘에 뭐가 보이니?’라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SNS를 통해 수만명을 감동시킨 이 사연의 주인공인 디즈니랜드 직원들을 캐스트(Cast)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캐스트는 영화나 연극의 배우를 의미한다. 이들은 디즈니라는 브랜드의 무대에서 열연하는 페르소나인 셈이다.

복면보단 연기훈련

우리는 그것이 가짜인 연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드라마를 보며 몰입하고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이미 리얼이 아닌 판타지에 기꺼이 돈을 내고 감상하고 소유한다. 연기라는 것 자체가 어느새 진짜가 되었고, 마침내 가면이라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까다로운 안목도 갖추게 됐다.

가면과 아주 잘 어울리는 스포츠가 있다. 바로 각본 ‘있는’ 드라마인 프로레슬링이다. 프로레슬링에는 마스크와 같은 복장이나 특유의 제스처 같은 레슬러 개개인의 고유한 특징을 의미하는 기믹(Gimmick)이라는 것이 있는데, 승패가 정해 있는 뻔함을 극복하고 엔터테인먼트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활용된다.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기믹은 단지 눈속임만은 아니다. 프로레슬러 각자는 그 가면에 어울리는 완벽한 퍼포먼스를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 훈련을 한다. 이 땀이 바로 진정성이고, 그것이 있기에 관객들은 환호한다. 이렇듯 가면은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연기를 요구한다.

▲ 영화 나쵸리브레 포스터.

어쩌면 브랜드라는 존재는 태생부터 가장 적절한 가면을 골라 쓰고 세상에 등장해야 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이 복잡한 세상에 이해하기 난해한 캐릭터는 도통 살아남기 어렵다.

게다가 브랜딩이라는 활동이 삶의 경험 전반으로 확산되는 작금에는 내부에서도 알기 쉬운 가면이 필요하다. 그래야 브랜드와 관여된 모든 사람들이 고객에게 일관된 연기톤을 유지할 수 있다. 심지어 브랜드에게 가면을 벗으라는 것은 고객의 판타지를 빼앗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진짜 고민해야 할 것은 차라리 브랜드의 혹독한 연기 훈련이겠다. 고객과 만나는 그 모든 순간에 자신의 배역에 맞는 훌륭한 연기자가 되어야 한다.

훌륭한 배우가 그러하듯 그것이 연기라는 것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완숙함과 자연스러움이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각고의 노력과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게다가 러닝타임은 120분이 아니다. 고객의 삶이라는 무대 위에 올랐을 때는 단 한 순간도 그 연기를 멈추지 말고, 마침내 그 연기 자체가 변하지 않는 자기 정체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브랜드의 진정성에 대해 너무 깊은 고민을 하기에 앞서, 일단 이해하기 좋고 매력적인 가면을 쓰고 그에 맞는 롤플레이어가 되어 보자. 그것만으로도 기만은 없다.

오히려 가면을 함부로 벗지 않겠다는 각오를 권한다. 더불어 가면 대신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려는) 복면을 쓰는 것도 금하길 바란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알던 것도 실제와 다른 경험에 대한민국은 지쳤다. 단지 보는 것만 믿어도 충분한 쇼(Show), 그러한 쇼만이 계속되기를 바란다.

원충렬

브랜드메이저, 네이버, 스톤브랜드커뮤니케이션즈 등의 회사를 거치며 10년 넘게 브랜드에 대한 고민만 계속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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