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빅해킹, 사회 속으로 인셉션
시빅해킹, 사회 속으로 인셉션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6.12.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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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활용한 집단지성…코딩으로 해결하는 공공문제

[더피알=안선혜 기자] 광장에 수백만의 촛불이 켜지기 전 디지털 공간에서도 풍자와 해학, 협업을 통한 시민 참여가 꽃피우고 있었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시민이 직접 사회·도시 문제를 해결하는 ‘시빅해킹(Civic hacking)’으로 집단지성이 가동되고 있다.

지난 7일 열린 국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특위 청문회, 내내 “최순실 이름도 모른다”고 진술하던 김기춘 전 실장의 입에서 “이제 보니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는 자백을 이끌어낸 건 온라인 커뮤니티의 끈질긴 추적 덕이었다.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회원들은 이날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후보 검증 청문회 영상을 찾아내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제보했다.

이 영상에는 당시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최태민과 최순실에 대한 의혹을 추궁하는 모습을 김 전 실장이 현장에서 지켜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12시간 동안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 전 실장이 일부 사실을 시인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결정적 한방은 일명 주갤러로 불리는 네티즌들의 힘이었다. 이들은 주식 빼고 다 잘한다는 우스갯소리를 듣지만 그만큼 뛰어난 정보 수집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 디지털 공간에서도 풍자와 해학, 협업을 통한 시민 참여가 꽃피우고 있었다.

사회 여러 현안에 대해 관심을 갖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사회 참여에 나서는 움직임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대기 오염, 소음, 에너지 소비, 교통 변화, 탄소 배출량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 환경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 보여주는 ‘소란지도’.

이 지도를 만든 건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빅해커(Civic hacker) ‘코드포인천’이다. 다양한 종류의 IoT(사물인터넷) 환경 센서, 정부의 공공 데이터 등을 활용해 만든 지도로, 송도에 한정된 서비스이긴 하지만, 오픈 소스로 선보여 다른 곳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활용이 가능하다.

‘공공, 시민’이란 뜻의 ‘시빅’과 ‘정보를 빠르게 취득해 창의적으로 해결한다’는 의미의 ‘해킹’이 결합한 단어인 ‘시빅해킹(Civic hacking)’은 디지털 시대 새로운 시민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공공문제 해결에 공동체 구성원인 시민이 주도적으로 나서 개선하는 움직임이라 볼 수 있다.

이들의 해결 도구는 정보기술(IT)이다. 이 활동에 참여하는 시빅해커들은 시민들의 네트워크 형성을 돕거나, 정부에 정보 공개를 요청해 제공받은 데이터로 시민사회가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코딩으로 구현한다.

그렇다고 이 모임이 개발자만으로 구성되는 건 아니다. 디자이너를 비롯해 지역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멤버가 돼서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기획자가 될 수 있다.

코드포인천의 경우 소란지도 외에도 공용화장실 위치를 알려주는 ‘화장실을 찾아줘’ 어플리케이션이나 도시 정전 상황 시 개개인의 심리적·물리적 고립을 막기 위해 서로의 위치를 알려줄 수 있는 ‘프로젝트 SYL(Share your Light)’을 개발하기도 했다.

사실 ‘코드포(Code for)지역명’의 조합은 해외에서부터 시작된 움직임이다. 오라일리미디어에서 근무하던 제니퍼 팔카가 지난 2009년 9월 ‘코드포아메리카’를 조직하면서 비롯됐다.

이 단체는 지방정부에 개발자를 파견해 1년 동안 펠로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시민참여로 정부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 시빅해킹 단체가 됐다.

지난 2011년 10월 말 미 동부 지역을 덮친 기습 폭설 때 이 단체가 내놓은 ‘소화전 입양하기(Adopt a Hydrant)’ 서비스는 유명 사례가 됐다. 보스턴 지역 주민들이 지도에서 소화전 위치를 확인하고 집 앞 소화전을 직접 관리하도록 한 프로젝트다.

▲ ‘소화전 입양하기(adopt a hydrant)’ 서비스 페이지.

폭설로 전신주가 쓰러져 화재가 발생했지만, 높이 쌓인 눈 속에 소화전이 파묻히면서 제때 불을 끄지 못해 피해가 커지자, 이를 시민들에게 하나씩 분양하는 형태로 관리 상 어려움을 해결한 시도였다.

이 소스코드는 2012년 하와이에서도 요긴하게 활용됐다. 시빅해킹이 오픈소스를 고수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와이에서는 소화전 대신 쓰나미 경보기를 관리하도록 했다.

경보기 배터리가 도난당해 정작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인근 주민이 쓰나미 경보기를 입양해 역시 책임 있게 관리하도록 유도했다.

입법 플랫폼…시민과 정치인 잇는 가교

우리나라와 가까운 일본에서도 지난 2011년 도호쿠 대지진을 계기로 ‘코드포재팬’이 만들어졌다. 당시 서로 간 안부를 묻고 지진 재건 정보를 공유하는 플랫폼을 선보이면서 시빅해킹의 가능성에 눈을 뜬 개발자 할 세키가 지난 2013년 코드포재팬을 조직하게 됐다. 개발자 외에 일반 시민들에까지 참여를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국내에서는 또 다른 시빅해킹 단체인 코드나무를 씨씨코리아가 운영하면서 일부 멤버가 지난 2014년 코드포서울을 조성했다. 코드포인천 멤버도 코드포서울 활동을 하다 지리적 문제로 지역사회에서 근거리에 있는 사람들과 모임을 조직하면서 탄생하게 됐다.

꼭 이 같은 단체가 아니더라도 기술을 가진 개발자 개인이 공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 5월 20일 국내 첫 확진 환자가 나오면서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메르스 발병 때였다. 정부가 당시 초동 대응을 미흡하게 한 데다 정확한 정보 공개에 뜸을 들이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자 한 시민이 직접 메르스 확산 상황을 지도에 그려 넣은 것.

지난해 6월 3일부터 서비스를 시작해 같은 달 10일 자정까지 서비스를 제공했다. ‘메르스맵’이란 필명을 썼던 이 개발자는 “많은 유언비어가 퍼지는 상황에 SNS의 정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보다 해당 정보의 투명성과 사실 여부를 평가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같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사회적 감시와 투명성 요구로 이어지는 사례들도 있다. 코드포서울은 영국의 비정부기구(NGO) ‘오픈스펜딩’이 시도한 ‘내 세금 어디 갔니?’ 프로젝트에 영향을 받아 2014년 ‘내 돈은 어디로 갔나(Where Does My Money Go)’ 프로젝트를 실행하기도 했다. 정부 세출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참여를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올해에는 ‘존맛국회’를 개발, 구글 지도에 국회의원들이 많이 가는 음식점과 지출 금액을 표기하고 있다. 지난 2014년 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확보한 국회의원 후원금 지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시민들의 행정 편의를 위해 만든 ‘알뜰 서울의 발견’도 현재 추진되고 있는 프로젝트다. 자기 관심사에 따라 서울시 행정서비스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맞춤형 구독 서비스로, 등록되지 않은 행정 서비스는 시민이 직접 추가할 수도 있다. 행정서비스 이용후기를 남기고 이를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 국회톡톡

단순 정보 공개를 넘어 보다 적극적으로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나오기도 한다. 정치스타트업 와글이 선보인 온라인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이 그것이다.

국회톡톡은 시민들이 직접 입법을 제안하고 1000명에게 지지를 얻으면 해당 상임위 국회의원들에게 이를 전달하는 형식이다. 해당 입법제안을 받은 국회의원의 참여 혹은 거부, 무응답 등 반응이 공개되고, 제안을 수용한 국회의원은 시민들과 입법 활동을 함께 해나갈 수 있다.

때론 NGO 등과 협업도 진행하는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만15세 이하 어린이 병원비 국가가 보장하라!’와 같은 경우 1000명을 넘어서 천정배, 기동민, 남인순, 오제세, 윤소하 의원과 함께 입법 활동을 추진한다.

다양한 활동가들이 시민의 편의를 위해, 때론 정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자발적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어려움도 존재한다. 코드포서울 활동가인 장승훈 씨는 “금전적인 지원을 꾸준하게 받는 것도 아니고, 프로젝트 진도가 안 나가거나 매주 정기적으로 모이다보면 활동가 분들이 지치기도 한다”며 “지속가능함이 언제나 고민”이라고 밝혔다.

What is 코드포인천

시빅해킹에는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까.
코드포인천에서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는 유호균씨는 지난해 밋업(Meet up)이란 플랫폼을 통해 이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송도 주변 혹은 인천에 거주하는 이들이 유 씨와 동일하게 밋업을 통해 동참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나.
코드포인천 멤버 대부분이 개발자지만 간혹 논술 선생님도 있고, 중학생 개발자, 영어강사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아이디어를 제공하거나 기획자로 참여하게 된다. 디자인 분야서 도움을 받기도 한다.

모임 주기는 어떻게 되나.
정기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갖고 있는데 각자 할 일을 가져와서 하다가 아이디어가 생기면 서로 이야기도 하고, 한 사람이 짧게 발표를 진행하기도 한다.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 모임마다 의무적으로 뭔가를 준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본인이 원하는 일을 가져와서 하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논의를 진행한다. 멤버들이 각자 본업이 따로 있기에 일이 바빠지면 모임 참여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 코드포인천에서 만든 소란지도

정부기관과 협업하기도 하나.
코드포인천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정부 관계자가 방문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지속적인 참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코드포서울의 경우 서울 공공데이터 주무관이 아예 참여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공공기관과 코드포 단체들이 협업하는 사례는 많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에 정부 기관과의 협업 가능성은 항상 열어두고 있다.

모임을 진행하면서 어려운 점은.
인맥 폭이 넓지 않다는 점이다.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발자이고, 기획자는 한 명이다. 처음엔 디자이너조차 없었다. 밋업이 국내에서 많이 쓰는 플랫폼이 아니다 보니
사람을 모으는 데 더 어려움이 있었다.

홍보는 어떻게 하나.
마케터도 코드포인천에서 희망하는 멤버다. 유씨는 “대외적 홍보는 어플리케이션을 마켓에 내는 수준”이라며 “마케터가 내부에 없다보니 그쪽(마케팅 및 홍보)으로도 에로 사항이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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