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넘은 김영란법,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
100일 넘은 김영란법, 그때는 맞고 지금은 아니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7.01.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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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관계시 식사·골프문화 원상복귀 중…막가파식 협찬요청 여전

[더피알=안선혜 기자] 언론홍보 관행에 큰 변화를 몰고 왔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 100일을 넘어섰다.

김영란법을 계기로 기자-홍보인 간 골프접대나 고가식사 등의 문화는 상당 부분 개선됐지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느슨해진 측면도 많이 감지된다.

▲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시행 100일을 맞은 5일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 청탁금지해석과에서 직원들이 위반 사례에 대한 유권해석을 논의하고 있다. 뉴시스

우선 경직됐던 기자와 홍보인 간 스킨십은 다소 완화됐다. 시행 초기 ‘시범케이스’에는 걸리지 말자는 심정으로 서로 눈치작전을 펼쳤던 데 비해 이제는 이른바 3·5·10 규정(식사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 10만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한 대기업 홍보인은 “요즘 식사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며 “초기엔 몇 천원 단위까지도 (3만원을) 넘어갈까 조심했는데, 지금은 조금 오버되면 2차 맥주는 기자가 사는 식으로 좀 더 유연해졌다”고 전했다.

다른 홍보인도 “처음에는 기자들이 법인카드를 들고 다니면서 나눠 내곤 했는데, 요즘은 (김영란법 시행 전인) 과거와 비교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식사비용이나 횟수가 이전보다 줄어들고 비싼 곳을 찾거나 하진 않지만, 시행 3개월여가 흐르면서 법에 대한 경각심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확 줄었던 골프 약속도 슬슬 부활하는 분위기다. “골프 약속이 아예 없다. 주말을 얻었다”며 좋아하는 홍보인도 있지만 “다시 부킹(booking) 많이 잡는다더라”며 주변 변화를 귀띔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해외 팸투어나 행사 취재처럼 취재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데엔 김영란법이 확실히 새로운 풍경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지난 5일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가전제품 박람회(CES) 2017 취재는 전적으로 개별 언론사가 부담했다. 기자들이 여행사가 구성한 패키지 상품을 구입해 참석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삼성, LG, 현대차 등 한국 대기업들이 참여하는 국제 행사의 경우 출입기자들이 항공료를 지불하면 숙식을 포함해 현지에서 소요되는 제반비용은 기업들이 부담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김영란법이 변화를 가져온 것.

물론 향후 광고비 등으로 언론사의 취재비용을 상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일단 언론사가 자비로 해외 취재에 나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 (자료사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삼성전자 ces 2017 프레스 컨퍼런스 현장. 올해 각 언론사 기자들은 패키지 상품을 구매해 참석했다. 

언론·홍보계가 촉각을 곤두세웠던 광고·협찬 부분은 잔뜩 얼어붙었던 몇 달 전과 비교해 상당히 완화된 모양새다. 달라진 점이라면 협찬 시에도 증빙서류를 꼼꼼히 챙겨 정당한 권원(權原)을 확보한다는 데 있다.

이와 관련, 한 대기업 홍보담당자는 “과거엔 별도의 증빙 없이 언론사 사이트에 회사 로고 잠깐 올렸다 내리거나 그냥 세금계산서로 퉁치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식으로 협찬을 진행하지 않는다”며 “계약서나 약정서를 다 챙겨 증빙서류를 남긴다”고 전했다.

내부 규정에 따라 투명하게 계약을 체결하는 ‘절차적 요건’을 갖추는 동시에, 협찬금액에 상응하는 대가(반대급부)가 있어야 하는 ‘실체적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홍보팀에 보내는 공문에 협찬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는 사례도 있다. 실제 일부 기업은 최근 ‘광고 협찬’이나 ‘광고’라는 말 대신 ‘광고기사’로 대체해 달라는 요청서를 각 언론사에 보내기도 했다. 광고팀과 홍보팀의 업무를 분명히 구분하면서 김영란법에 저촉될 소지를 피하기 위한 조치다.

그럼에도 막가파식 광고·협찬 영업은 여전하다. 김영란법 시행 초만 하더라도 협찬 요청 자체가 줄었지만, 국정농단 사태로 법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와 감시의 눈길이 소홀해진 틈을 타 과도한 요구를 하는 곳이 부쩍 늘어났다는 전언이다.

한 대기업 홍보임원은 “시국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들은 몰라도 기자들은 김영란법에 거의 신경을 안 쓴다”며 “특히 매체광고 비수기인 연말연시 기간이다 보니 오히려 압박이 더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다른 홍보인도 “특히 마이너지들에서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 행태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미리 언제 (부정적) 기사가 나간다는 걸 예고하고 수정사항이 있으면 담당자에게 연락 달라는 식으로 광고·협찬을 유도한다”고 말했다.

다른 홍보인은 “윽박이나 협박 식으로 들리는 요청도 여전히 많다”고 했다. 기사와 광고를 맞바꾸는 건 언론과 기업 간 정상적 거래로 보기 어려운 데다 청탁으로 간주될 수 있어 김영란법 위반임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것.

이 홍보인은 “김영란법 도입 첫 달에는 (광고·협찬 요구가) 거의 사라졌었는데, 언론사 경영에 큰 관련이 있다 보니 다시 예전 수준으로 복귀되고 있는 듯하다”며 “말은 조심하면서도 과거 기사로 협박하던 것과 비슷한 뉘앙스를 많이 비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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