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의 헛기침에 콧방귀를 뀌며
꼰대의 헛기침에 콧방귀를 뀌며
  • 이수진 (4theee@naver.com)
  • 승인 2017.01.12 08: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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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65세 이상 투표 금지’ 논쟁…누구의 꿈인가

할머니는 소학교 교실에 딱 한 번 앉아 보았다. 그날로 평생 학생 노릇은 꿈으로 남게 됐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글을 깨치고 한자도 잘 알았다. 조그마한 남색 수첩에 시를 적어 손녀에게 읽어주는 낭만도 있었다. 머리가 하얀 낭만 소녀는 손녀를 살뜰하게 챙겼다. 교복도 다려주고 식사도 차려줬다.

특히 좋아하던 일은 책상 정리였는데 ‘무조건 종이에 적힌 것은 공부에 필요한 것, 중요한 것’이라는 평소 지론에 따라 작은 종이조각 하나도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었다. 구겨 버린 종이도 네 귀퉁이를 곱게 펴서 무슨 국가 기밀문서라도 되는 양 책상 위에 다시 올려놓는 통에 어찌나 난감했었는지. 그래도 그걸 차마 다시 버릴 수가 없어 학교에 되가져가 종이 재활용함에 슬쩍 끼워넣고는 했다.

▲ 나는 아흔 여섯 그녀의 꿈이었다. 픽사베이

그런 할머니는 단 한 번도 손녀의 성적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 것이 유치원부터 시작된 원복, 교복을 입고 학교 가는 학생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자랑스러워했다. 졸업장이 쌓일 때마다 내가 그 일을 해낸 이 지구상 유일한 아이인 것처럼 좋아했다. 손녀가 하는 학교 이야기나 어설픈 아는 척을 그녀는 마치 세상의 유일한 진리인 것처럼 감탄했고 수많은 추임새와 함께 들어주었다.

나는 할머니의 꿈이었다. 일제치하에서 성장했고 한국 전쟁 후에는 먹고사는 일에 쫓겨 그녀는 정작 자녀들의 교복을 다려줄 수 없었다. 아이들은 다섯이나 됐고 남편은 생계보다는 혼자만의 풍류를 쫓는 사내였다. 덕분에 맏아들인 내 아버지는 일찍 어른이 됐다. 양육의 시간보다 아들에게 의지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노년이 되어서야 잃어버린 꿈과 시간은, 비로소 아쉬움이란 감정으로 되돌아왔다. 더 이상 구부러지지 않는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으로 어린 것을 쓰다듬을 때 참 힘든 세월을 살았다고 혼잣말을 하던 할머니는, 좋은 세상에 태어난 우리 손녀는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경쟁에 뒤쳐지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 지쳐 절망에 빠져도, 어디 간들 먹고는 살 것이라고, 다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자기 먹을 밥그릇은 다 타고 난다더라”는 그녀만의 다정한 레퍼토리를 내가 잠들 때까지 반복해 들려주었다. 밥도 굶지 않고, 남의 나라도 쳐들어오지 않는 이 좋은 세상에서 가끔 이렇게 불행하다는 손녀의 이야기를 그녀는 모두 이해 할 수 없었지만, “똑똑한 손녀가 하는 이야기는 다 맞는 일일 것이다”라고 애정에 기인한 결론을 아주 빨리 지어버리곤 했다.

▲ 젊음의 "흥"과 꼰대의 "흠"이 종종 대립한다. 영화 '친구' 속 한 장면.

요즘 아버지와 나는 뉴스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시끄러운 나라 상황에 대해 논쟁을 반복하고 있다. 기본적으론 같은 생각이지만 세부 내용에서만큼은 서로의 확연한 의견 차이를 새삼 확인하고 있다. 다만 억울한 것은 우리의 나름 발전적인 논쟁이 어머니의 그만 싸우라는 말에 한낮 말싸움으로 치부되고 만다는 것이다.

내막은 이렇다. 일단 시작은 의기투합하여 뉴스 속의 악인들을 우리 부녀 둘만의 재판에 초대, 심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곧 세부적인 입장차에 따라 우리가 실은 비슷하지만, 같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기어이 발견하고야 만다.

“아버지는 말이 통하지 않아!”라며 말문을 닫기 전이면 이따금 할머니 생각이 났다. 특히 “그건 아니지”라고 아버지가 짐짓 ‘뭘 모르는구나’라는 뉘앙스와 함께 헛기침을 하는 순간에는 더욱 그렇다. 나의 잃어버린 전우는 사춘기 시절 내 수많은 궤변과 고집을 잠자코 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었다면, 누구보다도 열심히 날 응원했을 영원한 아흔 여섯 그녀를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집 꼰대의 계속된 콧방귀에도 불구하고 전열을 가다듬는 것이다.

다음 날 저녁 뉴스 시간의 논쟁에 대비해 말이 안 통하는 아버지를 설득할 모든 방법을 나는 골몰하고 또 골몰한다. 때로는 논리를 보강할 인터넷 기사를 문자로 보내기도 한다. 수신여부와 관계없이 그럴 때의 내 얼굴은 득의양양하기 이를 데 없다.

국내외 뉴스 등에서 ‘65세 이상 투표 금지’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감히 묻고 싶다. 우리는 누구의 꿈과 희망을 먹고 자랐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의 꿈은 누구를 향해 투영되고 있는지.

지금 고집을 피우고, 말이 안 통하는 노인들의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그 허리가 굽기까지, 참혹했던 시절을 견뎌낸 그들의 희망은 우리 아버지 세대였다. 이제 막 ‘꼰대’가 되어가는 아버지들은 그들이 겪었던 것보다 더 안락한 우리의 성장 환경을 위해 가족과 소통할 시간을 포기하고 회사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 나름대로 우리에게 줄 수 있던 최선이었다.

▲ 어버이연합의 한 회원이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도 자녀가 생겨나면 같은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아이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단란한 가정을 위해, 그 애가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고 ‘을’의 입장이라는 것이 나의 의지마저 꺾지 않기를 매일 기도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는 누구도 이러한 고민할 필요없는 세상이 펼쳐지기를 고대하면서, 우리의 꿈과 희망을 아이들에게 투영할 것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는 같은 꿈을 향해 달려왔다.

우리가 누리는 현재는 꼰대들의 과거와, 그들이 포기해야 했던 꿈과, 희생이 밑거름이 됐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매일매일 감사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없는 미래, 노인이 없는 미래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그들이 눈감는 순간까지 함께 해야 할 우리 모두의 것이라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입을 앙 다물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패착을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노인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설득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노인네들을 마구 꼬셔보아도 좋을 것이다. 다만 멀어지고 서로를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흥”하고 콧방귀를 뀌거나, “흠”하고 헛기침을 하면서 못들은 척을 하거든, 그건 꼰대들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거라고 알려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학습한 바에 의하면 그러한 신호는 계속 이야기해도 된다는 신호에 가깝다는 것도.

우리는 소통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그게 아니야”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사랑하는 꼰대들과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를 설득해야만 한다. 우리는 통할 수 있다는 그 희망을. 나는, 우리는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 8시 뉴스를 기대하며 우리 집 꼰대와 대적할 증거를 모아 집으로 간다. 그리고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누구의 꿈인가요?

 

이수진

영어강사입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감사합니다.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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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2017-06-21 15:21:07
좋은 기사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