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Opinion 칼럼 유현재의 NOW 헬스컴
TV가 술 취하고 있다[유현재의 Now 헬스컴] 음주 소재 방송 콘텐츠 봇물…매체 다양화 주목
  • 유현재 서강대 교수
  • 승인 2017.02.09 10:05
  • 댓글 0

[더피알=유현재] 먹방이 술방으로 옮겨가고, 혼밥을 넘어 혼술까지 나왔을 때, 그리고 ‘혼술남녀’라는 드라마까지 방영되며 음주장면이 대놓고 등장할 때부터 아슬아슬하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는 ‘인생술집’이라는 프로그램은 아예 TV 모니터 안쪽에 술집을 차린 모습이다.

등장인물이 음주하는 장면을 프로그램 전개에 맞춰 자연스럽게 극화해 ‘잠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연예인들이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황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형식이다. 프로그램 콘텐츠가 현재 우리나라 규정이나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서 찾아봤다. 규제하는 조항과 장치들은 존재했지만 예상대로 강력하거나 촘촘해 보이지는 않았다.

   
▲ 케이블 프로그램 '인생술집'의 한 장면.

실제로 인생술집이라는 프로그램은 ‘미운 우리 새끼’와 함께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안건으로 오를 만큼 이슈화 됐다. 방통위에 따르면 인생술집의 콘텐츠는 방송심의규정 제 28조 ‘건전성’과 제 43조 2항 ‘어린이 및 청소년의 정서함양’에 의거해 심의를 받는다.

하지만 어느 정도 강력한 규제를 받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규정 자체에 음주장면이 불가하다는 내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주 등의 내용을 다룰 때에는 이를 미화하거나 조장하지 않도록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정도로 돼있기 때문이다. 안건으로 올라온 사항들에 대해 위원들이 전체 맥락에 맞춰 문제성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이다. 어쨌든 현재의 프로그램 형식과 전개가 전체적으로 유지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같은 규제방식과 내용은 술이라는 객체(Object)에 대한 우리 문화의 전반적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설령 음주장면을 포함한 프로그램이 방영된 다음 문제성이 있다고 판단돼 제재를 받는다고 해도, 사과 혹은 재발방지 약속 등의 액션만 취하면 그 이상 심각한 제재 장치는 실질적으로 없어 보인다. 결국 음주와 관련된 장면에 대한 질서는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는 담당자가 어떠한 마음으로 자정작용을 수행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혼술 넘어 아예 술집

최근 술을 소재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은 유행을 넘어 홍수 수준이다. 지난해 서울 YMCA 시청자 시민운동본부는 지상파 3사가 방영한 드라마에 대해 음주장면이나 ‘정황적인’ 음주장면 등을 모니터링한 결과 약 160회가 관찰되었다고 발표했다. 동일한 방식에 의거 조사를 진행했던 2013년 126회보다 상당히 증가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극화된 드라마 속 음주장면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리얼리티 술방은 더욱 심각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매체 다양화도 주목할 점이다. 모 방송사에서 모바일 콘텐츠로 제공하는 술방의 타이틀은 ‘3차 가는 길’이며, 가수들이 실제 술자리에서 한 데 어울려 노래하는 모습을 그대로 내보내는 ‘이슬라이브’도 있다. 셀럽(celebrity)들이 실제로 술을 마시며 즐기고 망가지는 모습을 관찰하는 방식은 다양한 후속 프로그램들을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 인터넷에서 방영된 ‘3차 가는 길’ 장면.

더욱이 ‘3차 가는 길’은 얼마 전 정부에서 절주를 위해 기획한 ‘911 캠페인’, 즉 술자리는 9시 전에 마감하며, 가급적 한 종류의 술을 마실 것을 권고하고, 가능하면 1차에서 마무리하자는 것과는 너무나 차이가 있는 하드코어 술방이다. 911 캠페인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3차 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프로그램도 적절치 않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과도한 음주조장에 음주에 대한 맹목적 미화가 내용의 핵심인 프로그램들의 대중화를 보며, 소위 ‘임계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정능력을 상실한 상태로 치닫고 있다는 의미이다. 어떠한 내용과 콘텐츠든 적당한 수위만 지켜진다면 ‘무조건’ 강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명제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TV 등 미디어에 등장하는 객체가 적법한 상품이나 행위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 자체로 범법이 아닌데 압박 규제를 가하는 것은 민주와 자유 등의 높은 가치를 굳이 적용하지 않더라도 인간의 기본 정서에 역행한다.

최근 강력한 규제대상이 되고 있는 흡연 장면도 극중에서 일부러 끼워 넣는 고의성만 느껴지지 않는다면 노출되는 대상에 따라서는 일정 부분 묘사할 수 있는 여지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담배라는 제품이 우리 사회에서 적법하게 팔리고 있는 상품이고, 흡연도 우리 삶의 명확한 일부이기 때문이다.

상품은 아니어도 폭력 장면이나 성적 묘사, 자살 장면 등의 노출도 마찬가지 원리가 적용될 수 있다. 제작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줄거리 전개상 삽입되어야 하는 설정이라면, 관련 규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는 표현의 자유라는 가치와 함께 용인될 수 있는 부분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과도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언론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들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면 사회적인 장치가 작동되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헬스컴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최근의 막무가내식 음주방송은 이에 해당된다.

   
▲ '미운 우리 새끼'에 등장한 김건모의 소주트리.

지명도 높은 연예인들이 모여 술 마시는 모습은 프로그램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만들 수도 있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을 포함한 미성년 시청자들에게는 음주의 너무 좋은 면만 보는 ‘미화 일변도’의 이미지만 줄 가능성도 다분하다.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는 동안 미성년 자녀가 해당 프로에 대해 질문하면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잠시 아득해지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연예인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제라고 설명한다는 것이 영 찜찜하다.

음주와 흡연의 이중잣대

술방에 대한 비교적 관대한 조치 및 전반적 분위기는 심의 기준에 있어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도 있다. 방통위에 따르면 현재 음주와 흡연은 방송심의 규정상 동일한 규제를 받고 있다. 하지만 담배의 경우 불을 붙이는 것조차 금기시 하는 사회 분위기다. 오죽하면 드라마 주인공이 담배를 손에 쥐고만 있던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관련기사: 오 과장, 술은 마셔도 담배는 못 피운다?

이런 상황에서 음주는 흡연보다 덜 위험해서 음주를 단독 주제로 하는 방송도 가능한 것인지, 이중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물론 담배의 경우 폐해가 명확하게 인지된 탓에 제작자들의 자체적 자제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음주에 의한 폐해도 흡연 못지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생각한다면 규제의 관행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 방송심의 규정에 따라 흡연장면이 모자이크 처리(왼쪽)될 정도로 엄격히 규제되는 것에 비해 음주에 대해선 관대하다. (자료사진) 드라마 '또오해영'과 '혼술남녀'

술방을 제작하는 감독의 인터뷰를 접하고 다소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프로그램 일부로서 과도한 음주를 삼가야 한다는 등 공익적 메시지를 포함시킬 용의가 있는지 기자가 질문했는데, 이미 검토한 사항이지만 여의치 않았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줄거리에 따라 15세에서 19세 이상 관람가로 정해진다고 하니 미성년자가 접할 수 있는 콘텐츠임에 분명하다. 다시보기 등 최근의 미디어 환경을 고려하면 미성년자들이 언제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음주에 대해 유난히 관대한 문화, 규제 조항의 모호함 등이 현실이어서 당장 큰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다면, 필자는 일선 광고에서 의무화되어 있는 경고 혹은 계도 문구 및 이미지 등을 의무화하면 어떨까 제언해본다.

통상 디스클레이머(Disclaimer)로 불리는 이같은 장치는 주류광고에 포함된 ‘지나친 음주는 간경화~’로 시작되는 경고문구, 증권사 광고에 등장하는 ‘투자 손실에 유의하시고~’ 등의 메시지를 의미한다. 담배 광고에도 물론 디스클레이머는 필수이다. 구체적인 방식이야 제작자들이 고안할 몫이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자제의 메시지, 혹은 미성년자들을 향한 경고 혹은 당부의 한 마디가 꼭 전해지기를 바란다.

물론 성인들을 위한 환기도 유용할 수 있다. 술방 제작자들이 주장하듯 술보다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야기 등이 핵심 콘텐츠라면, 혹시라도 프로그램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력에 대해 짚어주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대중적 콘텐츠가 가져야 하는 책임성이자 숙명 같은 작업일 것이다.

진행자의 마지막 한마디도 좋겠고, 줄거리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적절하게 첨가해주시기를 바란다. 그런 작은 예의는 해당 프로그램이 더욱 사랑받는 술방으로 도약하는 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유현재 서강대 교수  hyunjaeyu@gmail.com

<저작권자 © 더피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현재 서강대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