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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미세대가 선배세대에게 고하는 글
픽미세대가 선배세대에게 고하는 글
  • 석혜탁 hyetak@nate.com
  • 승인 2017.02.10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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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시대가 만들어낸 ‘잘난 청춘’을 대표하다

“긴장한 탓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죠. 바보같이…”

긴장해서 엉뚱한 얘기를 늘어놓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바보 같다고 자책을 하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는 익스(Ex)의 리드보컬 이상미가 실제로 한 회사 면접에서 낙방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한 번의 실수쯤은 눈감아 줄 수는 없나요.”

자책의 원인을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냉정한 사회는 한 번의 실수도 눈감아주지 않습니다. 청춘들은 오늘도 자신의 어수룩함을 탓하며 괴로워합니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처절한 생존경쟁. 전쟁터(면접장)의 모습은 살풍경합니다. 최근에는 ‘픽미세대’라는 씁쓸한 조어까지 만들어졌습니다.

▲ 일자리를 두고 벌이는 처절한 생존경쟁에 '픽미세대'라는 말까지 나왔다.

“젊은 청춘들은 ‘나를 좀 선택해 달라’는 간절한 문장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췄지만 순위대로 피라미드의 자리가 주어지는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선택(pick-me)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하는 세대” _<트렌드 코리아 2017> 김난도 외 5인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닐 겁니다. “스펙이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쉽게 말하는 어른들의 말을 청춘들은 무책임하다고 생각합니다. 스펙 외에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객관적 지표가 마땅치 않고, 부족한 스펙 때문에 응시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취업 시즌이 완전 끝난 올해 봄. 나는 서류전형 한 번 통과해보지 못하고 시즌을 접었다. ‘지원자격: 토익 800점 이상’이라는 문구에서 나는 이런 목소리를 들었다. ‘넌 꺼져.’” _<나의 토익 만점 수기> 심재천

<나의 토익 만점 수기>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에서 현군고투(懸軍孤鬪)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입니다. 영어실력 향상, 정확히는 토익점수 상승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노력이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노숙하기에 좋은 나라인가. 이것이 내 어학연수행의 첫째 조건이었다. (…) 티켓값은 이삿짐센터에서 두 달간 일해서 마련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을 떠났다. 내가 한국을 떠난 건지, 한국이 날 밀어낸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긴, 똑같은 말이다.”

매년 많은 학생이 어학연수를 떠납니다. 우리사회가 그들을 반강제적으로 밀어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위 소설에서 호주 생활을 통해 주인공의 영어실력은 일취월장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주인공과 함께 생활하고 있고, 영어를 모국어로 삼고 있는 스티브는 말합니다.
“도대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그 나라 국민이 되는 거야?”

▲ 한 청년 구직자가 채용상담지를 작성하고 있다. 뉴시스

‘그 나라’에서 청춘들이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습니다. 아흔아홉 번째 오디션에 떨어진 수인, 9급 공무원시험에 4년째 도전하고 있는 민재. 수인이 말합니다.
“우린 둘 다 실패자들이군요.” _<드라이아이스> 홍지화

수인의 말에 민재는 “그렇네요”라고 쓸쓸히 답합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민재. 민재는 장갑을 끼는 것을 깜빡하고 드라이아이스 조각에 손을 가져갔다가 그만 손가락을 다칩니다.

“드라이아이스. 그것은 마치 무색의, 무취의 까맣게 타들어가는 청춘의 양면성 같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러나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개미지옥에 갇혀 허우적대는 개미처럼 현실의 갈증에 갉아 먹히는 제 청춘 같았다.”

무색무취의 드라이아이스에게 우리가 던지는 말은 그저 가혹하기만 합니다.

“M과 나는 두 시간 전에 서른 번째 입사시험의 면접을 봤다. 오늘 역시 면접관으로부터 ‘됐으니까 그냥 나가보세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한번은 쫓겨나는 도중에 인사담당자에게 탈락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개그맨 시험이나 한번 쳐보세요’라며 등을 떠밀었다.” _<유리방패> 김중혁

익스의 노랫말 속 청춘은 곧 심재천 소설의 어학연수생이요, 홍지화가 말하는 ‘드라이아이스’입니다. 김중혁 소설에 나오는 ‘됐으니까 그냥 나가보세요’는 픽미세대가 지겹도록 듣고 있고 앞으로도 적잖이 듣게 될 말입니다.

“울어도 되나요
가끔은 혼자 펑펑 울고
털고 싶어요 엉엉~”

울어도 되는지조차 상대에게 질문하는 가긍(可矜)한 청춘. 우리가 그들에게 친구로서, 선배로서, 어른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제 얘길 들어줘
정말 고마워요
잘 부탁드립니다.”

익스의 노래는 자기 얘기를 들어줘서 고맙고, 잘 부탁드린다는 처연한 말로 끝이 납니다.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것을 습관화하고, 억울함과 불만은 속으로만 삭이고, 취업에 성공한 친구를 보며 느끼는 부러움과 열패감에 짓눌리는 청춘들.

그들의 말을 찬찬히 들어줍시다. 그들에게 충고랍시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웬만한 건 다 준비하고 시도했으며,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친구들입니다. 픽미세대가 선배세대에게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닐 겁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여는 것이 먼저입니다.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를 숙이는 건 왜 꼭 청춘들만의 몫이어야 할까요? 미래의 주역인 청춘들에게 잘 부탁한다고 먼저 손을 건네는 어른, 선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시대가 만들어낸 우리 잘난 청춘들.
잘 부탁드립니다!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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