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으니 행운을 쫓는다
희망이 없으니 행운을 쫓는다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02.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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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운(小運) 속 재미 추구 흐름…혼술·혼밥 등 소비 패턴 영향

[더피알=서영길 기자] 편의점에서 산 비타음료 뚜껑에 쓰인 ‘한병 더’. 예기치 않은 득템에 그날 하루가 기분 좋았던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듯하다. 장기불황이니 국정농단이니 우울한 이야기만 가득한 요즘, 이런 작은 행운이 크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을 겨냥한 ‘행운 마케팅’이 다시금 각광을 받고 있다.

♬ 삼백(만원)에 삼십(만원)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위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평양냉면 먹고 싶네~ ♪

몇 해 전 한 포크 가수가 팍팍한 자신의 삶을 재미있는 상황에 빗대어 부른 노랫말이다. 마냥 웃어넘기기엔 왠지 격한 공감이 간다. 한 아이돌 그룹이 부른 노래처럼 ‘에라 모르겠다’를 푸념하듯 내뱉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희망 상실의 시대에 살다 보니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조금씩 움트는 요즘이다.

하지만 요행에도 트렌드가 있다. 촌스런 아재처럼 ‘로또 한방! 인생 역전!’이 아니다. 경품행사를 하는 음료 뚜껑을 혹시나 하며 열어본다든지, 몇 천원짜리 복불복 복주머니에서 만원짜리 제품이 나오길 고대하는 정도. 그것도 아니면 길가다 천원 한 장으로 피카추 인형을 뽑는데 성공하는 것 정도의 행운이면 족하다. 최근 ‘인형뽑기’가 젊은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 최근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인형뽑기’. 뉴시스

이처럼 만성불황에 시달리며 꽁꽁 얼어버린 소비심리를 적절히 파고드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재미와 위안마저 주는 행운 마케팅이 업계 전반에 걸쳐 요즘 나타나고 있다. 단기간에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데다, 제품 홍보 효과도 커 기업들이 앞다퉈 행운 마케팅에 나서는 모양새다.

사실 운을 바라는 사람심리를 이용한 마케팅은 오래된 소구 방법이다. 초등학교 문구점 앞에 나란히 정렬해 있는 캡슐 뽑기 기계만 해도 아이들을 잡아끄는 흡인력이 대단하다.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드르륵 돌리는 순간 ‘오늘은 어떤 녀석이 나올까’하고 자신의 운을 테스트 한다. 꽝이 없어 최소한의 만족도를 채워주는 행운 마케팅의 고전이다.

좀 다른 의미로 ‘포춘 쿠키(행운의 과자)’도 지어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행운이란 매개체를 통해 적절히 식당 마케팅을 한 사례로 꼽힌다. 과자 속에 숨겨진 행운의 메시지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포춘 쿠키는 미국 내 중식당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최근 행운 마케팅의 트렌드는 시대에 맞게 조금씩 바뀌고 있다. 운만을 내세우기엔 소비자들이 너무 스마트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단지 크고 비싼 경품을 걸었다고 이벤트에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착오적 발상이 된지 오래다.

서대웅 브랜드액션 대표는 “전통적인 이벤트 프로모션은 외면 받는 것이 현실이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이벤트에는 단 몇 초의 시간을 할애하기도 싫어하는 게 요즘 소비자”라며 “음식점에서 나눠주는 복권을 긁어보며 식사제공권이 나오길 기대하는 등 작게 가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설명했다. 일상과 맞닿은 것에서 소소한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최근 소비자들의 움직이라는 것이다.

행운 마케팅에도 스토리텔링 있어야

이제는 기존 방식처럼 이벤트를 알리고 응모를 기다리는 일방향적 방법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 참여를 기대할 수 없다. 점점 스마트해지고 있는 요즘 소비자들은 누군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당첨되는 이벤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나’라는 능동적인 주체가 배제됐기 때문이다. 즉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닌 내 스스로 그 결과를 뽑아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에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행운 마케팅에 게임적 요소를 가미한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 마케팅도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간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 소비자들의 참여율도 높은 편이다.

조금 지난 얘기지만 2015년 온라인에서 진행된 29cm(29센티미터)의 ‘천만원’ 이벤트가 그 좋은 예다. 온라인 편집샵인 29cm는 ‘천만원을 드리면 한 달 안에 쓸 수 있는 분을 찾는다’는 현상수배 형식을 취했다. 수많은 누리꾼들이 ‘한 달이 뭐냐 하루 만에도 쓸 수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고, 이에 29cm는 기간을 하루로 줄여 같은 이벤트를 몇 달 후 다시 했다.

▲ 29cm가 진행한 ‘천만원’ 이벤트 공지문.

하지만 하루도 길다는 의견이 이어져 기간을 다시 한 시간으로 줄여 총 세 번을 진행했다. 상금을 내건 하나의 이벤트에 누리꾼들의 피드백이 댓글놀이처럼 이어지며 시리즈로 확산된 케이스다.

해당 이벤트를 기획한 전우성 29cm 마케팅 디렉터는 “‘천만원을 준다’는 것은 참여자 입장에선 누군가 주면 받는다는 식의 수동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천만원을 주면 한 시간 안에 몽땅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표현하면 사람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해당 이벤트는 행운을 기대하는 동시에 쌍방향 재미를 선사하며 총 20만명의 응모자들을 끌어 모았다.

이에 대해 김철환 적정마케팅연구소장은 “행운 마케팅에도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며, “스토리텔링은 소비자가 직접 경험하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그래야 재미를 느끼고 바이럴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운에 기대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며 소소한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최근 불고 있는 ‘혼술’이나 ‘혼밥’과 같은 1인 가구 증가 현상과도 무관치 않다. 양재호 동아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를 ‘긍정적 의미의 개인주의’라고 정의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중·장년들도 1인 기준의 생활과 문화가 발전해 기업들도 이에 맞는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예전엔 기업이 시장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마케터들이 ‘소비자들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것 같다’고 표현할 만큼 소비자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며 “따라서 기업들이 제품을 내놓거나 서비스 할 때 예전처럼 크거나 많이 만들지 않는다. 점점 소형화 되고 세분화해 타깃팅 하는 걸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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