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공백과 관계의 안전거리
말의 공백과 관계의 안전거리
  • 최선희 (sooahn17@naver.com)
  • 승인 2017.02.22 2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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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막힌 소통로(路) 걸으며 묻다

몇 년 전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정 많은 이유를 조사한 결과를 본 적 있다. 그들은 한국인이 다정(多情)한 이유가 아이를 업어키우는 문화 때문이라고 했다. 등에는 신경세포가 많이 분포돼 있어 부모에게 안겼을 때와 업혔을 때 아이가 느끼는 정서적 유대감에 차이가 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오다리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업는 대신 안아 키운다. 그래서일까. 주변을 보면 예전에 비해 양보, 배려 등 미풍양속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동양의 고전 윤리관에서는 관계를 중시한다. 인간이라는 말 자체에 관계의 중요성이 들어있다. 인간은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으로 이뤄졌다. 사람 인은 서로 다른 사람이 기대어있는 형태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 생각하게 된다. 여러 나뭇가지로 뻗어가는 그것은 때론 무색하고 덧없고, 무겁고 귀하며, 따뜻하거나 차갑게도 느껴진다.

▲ 소통의 수단은 편리해졌는데 온도는 차갑고 깊이는 얕아졌다.

대면공화(對面共話)하되 심격천산(心隔千山)이라. 얼굴을 맞대고 서로 이야기는 하는데 마음은 천산을 사이에 둔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다. 마음 따로 몸 따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다. 속 다르고 겉 달라 서로 속내를 털어놓고 대화하지 못한다. 마음에 천산이 가로 놓인듯한 장벽을 두고 사니 소통의 고속도로는 꽉 막히고 교통사고가 빈번하다.

듣고 싶은 이야기만 해주길 바라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만 찾는다. 진실과 진심이 담긴 말도 잔소리로 치부해버리는 사람들도 많다. 토의와 공론의 장도 그저 나를 돋보이기 위한 공간으로 인식해버리기도 한다. 서로 기분 상해 돌아서는 모습은 화려한 파티장 속에서 헛헛함으로 속을 채우고, 기름기로 배를 채우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꼴이다.

이해타산에 따라 관계가 맺어지는 경우도 많다. 자신의 욕망 섞인 야망을 이루기 위해 구성요소가 될 내 편과 방해요소가 될 적들을 곁에 두고 감시한다. 직장 동료를 신분 상승 엘리베이터로 이용하거나, 친구를 쓸모 있거나 없는 사람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얄팍한 인간관계다.

이같은 유대마저도 점점 줄어든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보니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여러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상처받고 아문 경험이 있는 우리들은 점차 마음의 문을 닫는다. 게다가 내 한 몸 건사하고 살기도 바쁘다. 어렵고 복잡한 관계맺기는 꺼려지고 감정소모를 귀찮아한다. 오해를 이해로 치환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차라리 말을 줄이고 없앤다. 말의 공백은 늘어간다.

▲ 관계맺기에 실패하고 손 내밀기를 포기한 사람들이 많다.

우리는 이렇게 소통의 부재 속에 살아간다. 들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고 상대를 가르치기 바쁘다. 진정한 대화는 없다. 누적된 삶의 피로감을 해소하기 위한 놀이 상대일 뿐 대화 속에 사람은 없다. “혼자가 제일 편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오랜만에 만나도 마주 앉아 스마트폰을 보거나 카톡으로 소통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함께 있으면 사랑의 마음을 말하면서도 돌아갈 곳을 생각하는 현실이 말이다. 세상살이가 힘겹다며 기댈 곳을 찾으면서도 한편으론 서로 거리를 둔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서로를 보듬고 사랑하며 A/S를 해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사연과 눈물 고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기에. 하지만 관계맺기 어려워진 시기에 따스한 위로의 손길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관계맺기에 실패하고 먼저 손 내밀기를 포기한 사람들. 정에 굶주려 있으면서 한편으론 관심이 부담스러워 밀어내는 우리들. 어른이 되는 것은 어쩌면 인정하고 포기하는 데 익숙해지는 것인지도. 울고 떼를 쓴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마음을 잃는 대신 경력을 쌓고 이뤄가는 것이 전부가 되어 버린.

저울에 올라가 본다. 마음의 무게를 잴 수는 없다. 질량의 차이, 상대가 주는 마음을 담을 그릇의 크기의 차이로 마음을 주고 받기 어렵기도 하다. 마음의 온도차가 크다. 한 사람은 낮을 걷고 다른 사람은 밤을 걷는 것처럼 시간이 왜곡된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마음이 오가는 관계는 참 흔하기도, 어렵기도 하다.

절로 마음이 통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휩싸이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얼굴’이란 사람의 얼이 지나가는 통로란다. 사회적인 얼굴로, 표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말이라는 치장을 하고 상대를 향해 걷는 것은 얼음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자주 미끄러지고 위태롭다. 계속 걸음마하고 성장통을 겪는 그렇게 더딘 걸음으로 우리는 어느 때에야 ‘진심’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럼에도 간격 유지는 중요하다. 안전거리를 확보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어설프게 다가서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없는 집착이 되기 쉽다. 서로 배려하고 상대방 목소리에 더 귀기울이는 균형잡힌 올바른 관계가 많아지길 바라본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이 오직 사람과 사랑이기를.

 

최선희

건축회사 웹디자인 파트에서 근무 중인 습작생.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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