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되지 않는 20대를 말하다
정의되지 않는 20대를 말하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03.02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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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셀프, 큐레이션, 실험, 해시태그…5가지 시선

정의할 수 없다.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간단하게 줄이는 것을 좋아한다.
매 순간 만족할 수 있는 걸 선호한다.
의미보단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흥미를 가진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다섯 문장을 하나로 묶을 만한 단어는 ‘20대’이다. 매년 트렌드를 리드하는 20대를 분석하는 보고서와 책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들을 정의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알만하면 금세 다른 데로 눈을 돌리기 때문이다. 5가지 키워드를 통해 20대를 들여다본다.

평범한 일상 속 ‘데일리룩’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거나 발끝에 초점을 맞춰 전신이 내려다보이는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게시물 하단에 #데일리룩 #데일리 #셀스타그램 #옷스타그램 등의 해시태그는 필수. 오늘 코디를 인증함으로써 나 자신을 드러내고, 어제와 비슷한 하루에 특별한 느낌을 더한다. 실제 인스타그램에는 #데일리룩 게시물이 1400만건을 훌쩍 넘는다.

데일리룩은 톡톡 튀는 패션의 화려함 보다는 일상을 보여준다는 데 의의를 둔다. 많은 옷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겐 일주일의 옷차림을 제시해주는 코디지침서가 되어주기도. 용어 그대로 ‘매일’ 입지만 같은 옷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게 하는 ‘조합스킬’이 따라붙는다. 이렇다보니 ‘일주일간 3가지 옷으로 다른 코디하기’ 식의 게시물은 베스트 게시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김정은씨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데일리룩.@jjung.n

블로그 마켓을 운영하는 20대 김정은씨는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키워드로 데일리룩을 자주 이용한다. 판매하려는 옷을 많이 노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 김 씨는 “데일리룩은 어떤 옷을 특징짓는 게 아니라 자기가 오늘 뭘 입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개성을 보여주는 정체성 역할을 한다”며 “요즘 20대들은 꾸며진 멋이 아닌 일상 속에서 멋지게 사는 모습을 동경한다”고 말했다.

학교수업, 과제, 아르바이트, 스펙쌓기 등으로 삶이 빠듯한 20대에게 필요한 건 특별함보단 보통의 정서 안에 깃든 아름다움이다.

뭐든 내 방식대로 ‘셀프’

포털사이트에 ‘셀프’라는 단어를 치면 셀프인테리어, 셀프웨딩, 셀프파티, 셀프요리, 셀프네일 심지어 셀프누드까지 다양한 연관검색어가 뜬다. 셀프족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무언가를 직접 만들기 원하는 20대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획일화된 서비스 대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주는 자율성을 택한 것이다. 남들과 차별화된 정보를 가지고 더 높은 만족을 위해 발품의 수고를 기꺼이 감내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셀프인테리어를 들 수 있다.

▲ dj rosy의 크리스마스트리 마블네일아트. '로지의 빨간방' 블로그
비록 달팽이집이지만 내집 마련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자취방은 위로와 쉼의 공간이다. 이들은 커뮤니티에서 인테리어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자신의 공간을 소개하며 만족을 얻는다. 대학내일과 패션 컨설팅 업체 PFIN의 조사에 따르면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상품을 구매하는 20대의 비율이 매년 큰 폭으로 증가해 지난해에는 최고 수준인 72.5%에 달했다.

셀프족에 전문성을 더하면 ‘혼셀러(혼자+seller)’로 진화하기도 한다. 본인이 만든 상품과 서비스를 판매해 경제적인 효과를 꾀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성공으로 인스타그램에서 유명해진 김주원씨가 ‘주원홈트’라는 책을 출간한 것이 그 예다.

DJ ROSY SEO는 디자인학과생이지만 카카오 모바일 라이브 방송 슬러시에서 셀프네일아트 방송을 진행한다. 네일아트와 관련된 기본용품부터 응용패턴까지 쉽게 설명해 ‘곰손’(손재주가 없는 사람을 비유한 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빨리 또 많이 ‘큐레이션’

흔히 20대들의 고질병이라 불리는 ‘결정장애’ ‘선택장애’ ‘햄릿 증후군’ 등은 작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정보과잉에 선택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정신적인 문제인 셈이다. 현재 20대는 많은 양의 정보를 한꺼번에 습득하는 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스레 정보를 축약해 핵심만 전달해주는 콘텐츠 큐레이션을 새로운 트렌드로 받아들였다.

큐레이션은 다양한 정보로 이뤄진 콘텐츠를 특정한 주제나 관심사에 따라 수집하고 분류해 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20대들은 책, 영화, 복잡한 사건 등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큐레이션한 콘텐츠를 구독한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강타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도 마찬가지. 많은 언론이 쉽게 파악하기 사건의 어려운 복잡한 인과관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대학내일이 개최한 ‘20대 유스마케팅’ 컨퍼런스에서도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 당시 ‘브렉시트 간단 정리’가 20대의 인기 검색어였다”고 소개되기도 했다.

20대와 여성 구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역시 이같은 욕구를 건드린다. 다양한 주제를 선정해 얕게 설명하면서도 필요한 교양지식을 채워준다. 페이스북 페이지 ‘책그림’의 경우 책과 영화의 핵심 내용을 5분 안에 머릿속으로 그려준다는 것을 모토로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에 다양한 지식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큐레이션 현상은 SNS 댓글에도 나타난다. ‘선댓글 후콘텐츠’로 미리 내용을 축약해주는 댓글을 보고 본내용을 유추, 클릭하는 수고를 덜어내고 있다.

클릭을 부르는 ‘실험콘텐츠’

하루에도 갖가지 짧은 영상 콘텐츠가 업데이트되는 1인 미디어 전성기다. 그 중에는 굳이 몰라도 되지만 잠재된 호기심을 건드리는 영상들이 있다. 주제의 범위와 다루는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드라이아이스 아이스크림’ ‘환타 치킨 사탕’ ‘새우깡 뒷면 설명서 보고 새우깡 만들기’ 등의 레시피 분야부터 ‘한국인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할까’ ‘동성애 영상을 본 한국인들의 반응’ 등 사회적 실험까지 다양하다.

금기시됐던 성적 궁금증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실험영상도 상당하다. 유튜브 채널 걸스빌리지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만 모아놓았다. 이들은 ‘남녀가 성인용품 샵에 같이 간다면’, ‘남성들이 여성의 보정속옷을 입어본다면’ 등의 콘텐츠로 구독자들을 불러모은다. 20대 뉴미디어 미스핏츠 역시 ‘생리컵 써봤다 질문받는다’ ‘생리적 기능과 쾌감재현을 중심으로 한 실험연구’ 등 도발적 제목의 콘텐츠로 20대 독자를 공략한다.

이수련 미스핏츠 대표는 “우리는 필요하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문제가 (기존) 미디어에서 다뤄지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갖는 편이어서 그런 이슈를 콘텐츠로 제작한다”며 “최근 민중총궐기 때 다른 미디어에서는 집회 준비물, 처음 가는 사람들을 위한 팁 등을 설명 하길래 다른 데서 안한 것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멤버 중 한 명의 경험을 살려 집회에서 연행됐을 때 대처법을 제작했다”고 전했다.

기능에서 놀이로 ‘해시태그’

요즘 20대 속성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은 단연 ‘해시태그(#)’다. 해시태그는 본래 게시물의 분류와 검색을 도와주는 기능이다. 하지만 지금은 놀이로서 자리 잡았다. 채팅 중에서 해시태그를 붙이거나 게시글 아래로 ‘#오늘_심심해_놀아줄_누구없나’라고 사용되는 식이다. 긴 글을 적을 때 강조하고 싶은 단어 사이사이에 해시태그를 달아 문장을 완성하기도 한다.

▲ 인스타 게시물에 달린 해시태그(#).@_eunjoooooo

이윤경 대학내일 책임매니저는 “해시태그는 놀이기능으로 상당히 많이 쓰인다. 대표적인 예가 야놀자의 #놀아보고서”라며 “신나게 놀고선 사진을 올리며 #놀아보고서라고 적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렸을 적 ‘OO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하고 엄지손가락을 내밀면 탑을 쌓아 ‘나도 참여하겠다’고 의사표현을 했던 것과 같다”고 설명하면서 “이제는 자기 담벼락에서 해시태그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에서 ‘놀아보고서’를 검색한 열에 일곱은 20대로 분석된다.

반면 스크롤만 내리면 등장하는 해시태그 범람에 피로도를 호소하기도 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20대 청년 A씨는 “기성언론이나 마케팅에서 해시태그를 어절별로 나눠서 과도하게 사용하는데 너무 별로다. 핵심적으로 압축하는 기능으로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청년 B씨는 “인스타그램의 본문 내용 반 이상이 해시태그로 뒤덮여 있다. 본질이 사라지고 오염되는 느낌”이라고 쓴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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