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의 예능나들이, 어떻게 봐야 하나
대권주자의 예능나들이, 어떻게 봐야 하나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7.03.13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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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면모 부각하며 정책 어필…“이미지 정치 쉬워질 수도”
공중파 방송도 아닌 다소 독하고 과격한 설정의 인터넷 프로그램에 대선주자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정치 예능 프로그램은 전성기를 맞았다. 메시지는 세련돼졌고, 제법 온라인 유저들의 맘을 읽은 콘텐츠들이 엿보인다. 우려 반 기대 반 속에 꽃피는 예능화된 정치의 봄이다.

[더피알=안선혜 기자] 안희정 충남도시사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혹독한 검증을 한다며 개그맨 양세형이 매달려 안긴 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다. 대답을 할 때마다 버둥거리는 양세형 덕에 안 지사는 진땀을 뺀다.

뒤이어 진행된 이상형 월드컵은 더 가관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는 직무정지 상태)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진을 동시에 제시하고 누가 더 좋은지 고르라고 종용한다.

SBS 모바일콘텐츠 제작소 모비딕이 만든 ‘양세형의 숏터뷰’에 나오는 장면이다. 다소 해괴하고 황당한 설정들이 이어지지만, 코미디 요소와 함께 인터뷰이 나름의 인물관과 정치적 가치관을 엿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깐족거리는 듯한 자막은 이 짤막한 모바일용 인터뷰의 백미다.

예능 나선 ‘노잼’들의 반란

정치인만을 인터뷰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님에도 조기대선이 점쳐지는 정국에서 다수의 대권주자들은 숏터뷰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을 시작으로 안희정 충남도지사, 남경필 경기도지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이 출연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도 출연이 예정돼 있다.

인터뷰에 대한 반응도 좋다. 이 시장과 안 지사는 각각 조회수 200만을 넘겼고, 후발로 참여한 남 지사도 발군의 성적을 거뒀다.

공중파 방송도 아닌 다소 독하고 과격한 설정의 인터넷 프로그램에 각 주자들이 얼굴을 내미는 건 지난 선거 때에는 쉽사리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대선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조금이라도 많은 유권자들에게 얼굴을 알리고 특히 2030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함이다.

숏터뷰의 제안을 한 차례 거절했다가 응하게 된 유승민 의원 측은 “너무 가볍고 적응이 안 돼서 주저했는데, 방송국 측이 다시 한 번 권유하면서 진행하게 됐다”며 “지금은 미디어가 다양화된 만큼 다양한 국민을 접촉하는 기회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치인 특유의 딱딱하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벗고 인간적인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시도는 전통매체인 TV방송을 통해서도 활발하게 이뤄지는 추세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안희정 지사, 이재명 시장은 각각 JTBC 예능 ‘말하는대로’에서 출연해 ‘토크버스킹’(거리공연)을 시도했다. 출연진들이 거리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진솔하고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방식으로 진행되기에,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기에 좋은 포맷이다.

시사·예능 프로그램은 정책 사안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 가능하면서도 적절한 유머로 지루함을 없앨 수 있어 대선 주자들의 출연이 봇물을 이뤘다.

대표적으로 JTBC ‘썰전’은 유승민 의원, 이재명 시장,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안희정 지사, 심상정 대표 등 주요 대선 주자들이 돌아가면서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묵직한 대선주자들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면서 방송에서 했던 발언이 기사화되는 동시에 후보 간 미묘한 시청률 경쟁까지 벌어졌다.

TV조선 ‘강적들’도 발빠르게 대선주자들을 섭외해 방송을 꾸렸다. 지난 2월 1일 방송에서는 남경필 지사, 안희정 지사가 함께 출연해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생각과 대선 공약들을 털어놓았다. 유승민 의원도 뒤를 이어 출연해 사담과 시사를 오가는 토크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사·예능의 본진 격인 종합편성채널이 선전하는 사이 공중파도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SBS가 대통령 지원자에게 압박면접을 가한다는 독특한 콘셉트로 검증 토론회를 준비한 것. ‘대선주자 국민면접’으로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안철수, 유승민 5인이 차례로 출연했다.

사실 정치인의 예능나들이가 전례 없던 일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SBS ‘힐링캠프’에 당시 유력 대선후보로 꼽히던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 사장이 신년특집 손님으로 출연한 사례는 유명하다. 2009년 당시 안철수 전 카이스트 교수가 MBC ‘무릎팍 도사’ 출연으로 단번에 인지도를 높이며 정치에 입문한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보다 이른 2009년 당시 홍준표 의원(현 경남도지사)은 MBC 예능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출연했는가하면, 2012년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채널A의 개그프로그램 ‘개그시대’에도 출연한 바 있다. 다만 개그시대 출연은 선거 기간과 겹치면서 해당 방송사가 제재를 받았고, 다른 후보로까지 확장되지는 않아 트렌드로 해석되지는 않았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지난 2012년 채널a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모습(왼쪽)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위)와 박근혜 전 대통령(아래)이 2012년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방송 화면.

선거보도 심의규정에 따르면 선거일 전 90일부터는 후보자들의 예능·교양·드라마 출연이 금지된다. 차기 대선일이 확정됐다면 대권주자들의 이같은 예능 출연은 불가한 것이었지만, 탄핵 심판이 결론나지 않았다는 특수성에 한시적 예능나들이가 가능했다.

다만, 지난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서 헌법 및 공직선거법에 따라 60일 이내에 선거를 치러야 한다. 예능 출연이란 한시적 특수가 더 이상은 불가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선 레이스에 돌입하면 정책과 공약 등을 집중적으로 발표하는 정국으로 분위기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지 정치 우려 vs 정치 진입 관문 기대

그럼에도 정치인의 예능 출연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리적 거부감이 많이 낮아지면서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도 정치인의 예능 나들이는 더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해외에서는 데일리쇼나 SNL(Saturday Night Live) 등의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통해 유권자들이 정보를 얻고 정치인들이 자신의 정책을 어필하는 건 익숙한 풍경이다.

문재인 캠프의 박광온 의원은 “토크 프로그램은 인간적 면모나 사람의 됨됨이, 사색의 깊이, 위기 대응 능력 등 다양한 면을 볼 수 있기에 국민들이 요즘 관심 있게 보시는 것 같다”며 “지금까지 나온 프로가 웃긴 행위만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지적하는 부분이 있기에 후보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철수 캠프의 대변인인 이용주 의원은 “대선까지 남은 시간이 짧기에 여러 사람과 면대면으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 방송이나 SNS 등을 통해 많은 사람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며 “후보들에 대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인간적인 부분들도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시도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정치인들의 이같은 활발한 예능 출연에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인물 검증보다 자칫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는 “정치가 국민과 가까워진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지만, 정치가 너무 희화화되거나 정책 검증보다 선거 외적인 부분들이 부각될 수 있다”며 “전달에만 치중해 각 사안을 너무 단순화시키다 보면 이미지 정치로 가기 쉬워진다”는 의견을 표했다.

반대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시민들에게 ‘떠먹여주는’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시사·예능과 같은 풍자 프로그램이 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이훈 경희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정보의 질이 높더라도 사람들은 감정적 이입을 하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며 “정치풍자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이끌어주는 게이트웨이(gateway)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정통 미디어와 뉴스 풍자 프로그램이 상호 대립이 아닌 보완관계가 될 수 있다”며 “기존 뉴스를 보지 않는 젊은층들이 풍자 프로그램을 보고 궁금한 점을 정통 미디어에서 찾아보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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