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에게 미소를 건네는 일
낯선 이에게 미소를 건네는 일
  • 안희진 (anizini@naver.com)
  • 승인 2017.03.28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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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사랑씨 뿌리기’ 운동, 서울에선 안될까

명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뉴욕에서 병원을 개업한 스티브 요르라는 친구는 뉴욕에서 ‘사랑씨 뿌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다정하게 말을 건다. 택시운전사에게는 운전을 아주 침착하게 잘한다는 칭찬을,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무자에게는 힘들지만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응원한다. 식당에서는 하다못해 맹물 맛이 좋다는 인사까지 건넨다.

▲ 작은 배려가 필요한 '사랑씨 뿌리기' 운동.

물론 그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별 이상한 사람을 다 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건네는 친절한 말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고, 그 좋은 느낌이 그들이 만나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달되어 세계에서 가장 각박한 도시로 통하는 뉴욕에 사랑을 심어갈 수 있으리라고 믿고 있다.

40년 전, 학생시절 강화도에서 일주일 간 계속됐던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국제웍캠프’에서 만나 친구가 됐던 스티브는 하루에 적어도 열명에게(환자 빼고) 기분 좋은 말 한 마디씩을 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스티브가 하는 일이 부질없는 짓이라 여기고 냉소하던 나는, 몇 년 전 회의참석차 그와 함께 필라델피아에 간 적이 있었다. 아침 일찍 함께 공원길을 걷다가 못생긴 여자에게 윙크하는 스티브를 보고 놀라서 물었다.

“너 지금 저 여자에게 윙크했니?”

스티브가 대답했다.

“그래, 만일 저 여자가 학교 선생님이라면 오늘 저 선생님 반의 아이들은 신나는 하루를 보내겠지?”

모르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면 미소를 짓는 것은 어떨까? 우리가 길에서 스쳐가는 낯모르는 사람들에게 굳은 얼굴로 외면하는 대신 미소를 보낸다면 어쩌면 우리는 오늘 저녁 한 가정의 부부싸움을 막을 수 있을 것이고, 공장의 불량품을 조금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돈도 들지 않고 시간도 필요하지 않은, 그저 타인에게로 향하는 약간의 사랑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나도 서울에서 스티브 식의 사랑씨 뿌리기 운동을 실천하고 싶다. 그렇지만 50세도 넘은 중년이 초등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해 아들과 함께 시신을 유기하고, 어떤 장년은 의붓딸을 몇년 동안이나 성적 노리개로 삼고 낙태수술까지 시켰다질 않나, 선생이란 자는 학부형과 학생을 차례로 성폭행하고 돈까지 요구했다고 하는 신문기사가 흘러넘치는 내 조국에서 그 운동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날마다 실감하고 산다.

▲ 모르는 사람에게 인사하기는 쉽지 않다.

함부로 웃으며 농담을 일삼았다간 성추행 예비검속에 걸려 갖은 모욕과 망신 끝에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으니, 마주 오는 사람을 보며 웃기는커녕 눈이라도 마주칠까 죄지은 놈 모양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할 판이다.

지하철에선 볼펜이나 휴대폰을 떨어뜨려도 몸을 구부려 승객 틈을 헤치고 더듬으며 줍지 말아야 할 것이며, 친구 딸이 아무리 귀엽더라도 과자나 캔디를 사줄 수도 없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무슨 놈의 사랑씨 뿌리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인간이든, 시민이든, 지식인이든, 선배든, 아버지든 간에 삶이 너무도 팍팍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사랑씨 뿌리기’의 당위와 필요와 명분은 이미 서 있질 않는가. 가끔은 예비검속 걱정말고 헤실헤실 웃음을 흘리며 칭찬하고 함께 걸으며 살아보자.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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