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실력을 말해주지 않는다
시간은 실력을 말해주지 않는다
  • 신명관 (thepr@the-pr.co.kr)
  • 승인 2017.04.0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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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힘듦과 위로와 징징거림

페이스북에서 유행한 콘텐츠가 있다. ‘내가 과제를 하는 시간’이라는 제목의 원형 그래프다. 실제로 리포트 쓰는 시간은 5% 정도고, 나머지는 ‘내일까지 패닉상태 빠지기’, ‘조사하기’, ‘주제 정하기’, ‘레포트에 대해 친구랑 떠들기’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표의 반 정도는 ‘질질끌기’가 차지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할 일을 미뤄두고 질질 끈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밥 먹고 해야지, 이것만 보고 나서 해야지, 조금만 쉬고 해야지, 청소하고 해야지, 잠깐만 자고 해야지…. 깜빡 졸다 눈을 뜨니 과제는 그대로이고 시계를 보니 지각이다. 이쯤 되면 에라 모르겠다 성적을 말아먹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모든 것을 내려놓는 사람들도 있다. 페이소스를 굳이 문학에서 찾지 않아도 될 정도다.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회자되는 '레포트 쓰면서 보내는 시간' 그래프. 많은 대학생들의 폭풍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고등학교 때 부모님에게 힘들다는 소리를 하지 못했다. 비장함을 갖고 학업에 임했다거나 ‘날 위해 고생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는 효심 때문은 아니었다. 

아빠를 닮아 타고난 투덜이였던 나는 밤 10시에 끝나는 야간자율학습에 진저리치며 농땡이를 피운 적도 많았다. 다만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껏 쉴 수 없는 이유는 누나를 의식해서였다. 누나는 내가 잘 준비를 마친 늦은 새벽까지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로 학교에서 잠을 자면서 과제를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재수 때보다 힘들게 공부하는 누나를 둔 동생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힘들단 소리를 다시 삼켜야 했다.

‘아끼는 인형을 빼앗긴 소녀의 슬픔이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여인의 슬픔보다 작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글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개개인의 감정은 비슷해보여도 모두가 다르며, 각기 다른 감정들을 나열하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더 맛있는 사과와 덜 맛있는 사과를 가져와서 비교해야지, 사과와 배를 두고 ‘이게 더 맛있어!’ 하는 건 모순이다. 지극히 그 사람의 개인적, 주관적 취향으로 갈릴 수 있어서다.

나는 이 말을 굉장히 좋아했다. 나라는 사과는 그만의 당도와 고통이 있다. 배의 고통을 사과와 비교하지 마라. 그러니 내 고통과 나란히 두고 정도를 비교할 수 있는 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201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일주일여 앞두고 학생들이 수험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이 주장에는 문제가 하나 있었다. 내 주변엔 나와 같은 ‘사과’들이 너무도 많았다. 혹은 ‘사과’의 시절을 겪어온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주말에도 침낭을 싸들고 학교로 가 과제를 하던 사람이었다. 열심히 하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어서였다. 빡쎄기로 유명한 누나의 학과는 자퇴생이 유독 많았다. 4년의 커리큘럼이 숨 막힐 정도로 빽빽했고 그만큼 학생들을 고되게 굴렸다. 그 대신 남들보다 더 좋은 졸업작품을 얻을 수 있었다. 

타 학교 동일 학과와 비교했을 때 드러나는 확실한 질적 차이와 당당하게 내보일 수 있는 두께 두툼한 포트폴리오. 똑같은 사과 박스 같았지만, 검은색 매직으로 동그라미를 친 곳에 ‘특등급’이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그 덕분에 누나는 서른이 못된 나이에 괜찮은 집을 얻어 햄스터 네 마리와 함께 오순도순 살고 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누구나 한 분야에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말이다. 학교생활 4년을 계산해보자. 주말 제외하고 1년을 350일로 치고, 하루에 10시간씩 학교생활과 과제를 한다고 쳐도 1만 시간은 금방 채워진다. 

하지만 우리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한다. 1만 시간을 채우는 건 좋지만 위에서 말한 그래프처럼 ‘질질 끄는’ 게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들은 힘들다. 그리고 그 힘듦을 몰라주는 게 서럽다. 방송 ‘말하는대로’에서 조승연 작가가 말한 대로 ‘남을 꺾고 1등을 하려는’ 혹독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다. 그게 좋은 것이 아님을 알지만 불안해한다. 

도태되는 것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는 말 때문에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잘 파악하지 못한 채 일단 뛰고 있다. 그래서 난 힘들게 일하는 사람에게 ‘우리도 힘들어’라고 할 생각은 없다. 그만큼 이기적인 말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저마다 나와는 다른 고통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위로가 필요함을 절실히 안다.

하지만 진짜 잘 하고 싶은 거라면, 자신을 질질 끄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말 성적이 잘 나오고 싶어서 내게 과제 컨펌을 부탁했다가, 새벽 세시를 넘기자 살려달라고 말한 후배의 단발마를 기억한다. 잘 하고 싶단 욕심은 ‘완벽’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죽을 것 같다’가 진심으로 나오는 게 아닌 합리화의 수단으로 쓰인다면 위험하다.

나름 지독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주의자기에 확신하는데, 시간은 변명이 될 순 있을지라도 실력이 될 수는 없다. 한 유명 온라인게임 에디터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쉽게 포기하고 도망치는데, 확신을 가지고 말하지만, 너는 아직 재능을 판단할 수 있는 실력조차 안 된다.” 욕심만으로 우는 소리를 하기에는, 거울에 비친 우리들은 꽤 많이 커버렸다.

신명관

대진대 문예창작학과 4학년 / 대진문학상 대상 수상
펜포인트 클럽 작가발굴 프로젝트 세미나 1기 수료예정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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