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연예인병’이 위험한 이유
‘공황장애=연예인병’이 위험한 이유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7.04.12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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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미디어 속 왜곡된 이미지 확산…심각성 희석시킬까 우려돼

[더피알=유현재] 공황장애라는 키워드를 포털에 입력하면 단연 연예인들의 이름이 많이 검색된다. 대표적인 인물로 정형돈, 김구라, 이병헌, 그리고 최근에는 걸그룹 멤버의 이름들도 자주 보일 정도로 자주 언급된다. 함께 검색되는 문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공황장애는 연예인만 걸리는 병인지 심각하게 물어보는 분도 있고, 다소 비아냥거리는(?) 느낌으로 ‘공황장애=연예인병’을 써놓거나 조롱하는 투의 모습들도 있다.

배우 차태현은 최근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공황장애를 겪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영상 화면

실제로 장기간 병원치료를 하며 한동안 바깥활동을 못했을 정도로 심각했던 연예인들도 있지만, 언젠가부터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공황장애가 토크의 소재로 사용되는 일이 잦아졌다. 심지어 자신의 과거 슬럼프를 강조하면서 굳이 공황장애를 활용하는 일부 출연자들도 관찰되는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에 출석요구를 받은 최순실이 사유서에 자신이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을 미출석의 이유로 들며 ‘공항장애’라고 적어 씁쓸한 웃음을 낳기도 했다.

이처럼 미디어에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지명도 있는 인물들이 빈번히 언급해 공황장애가 소위 ‘연예인병’으로 포지셔닝되거나 의미의 왜곡이 발생하는 상황이 종종 목격되고 있다. 증상이나 질환자체를 두고 사회적인 작용에 의해 오해가 빚어질 수 있는 환경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공황장애 진료환자, 연평균 16%↑

공황장애는 ‘갑자기 엄습하는 강렬한 불안, 즉 공황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장애. 불안장애 중에서도 가장 격렬하고도 극심한 장애라고 할 수 있음.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극심한 공포...’ 등으로 정의되는 틀림없는 질환이다. 개인이 경험하는 공황의 정도에 따라서는 대단히 위험한 상황으로 귀결될 수도 있는 분명한 위기인 것이다.

최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공황장애로 실제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의 규모는 지난 2010년 5만900여명에서 2015년 10만6000여명 이상으로 급속하게 늘어가는 추세다. 연 평균 약 15.8%의 증가 수치는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신적 불안 상태를 경험하며 의료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자료: 국민건강보험공단

전문가들에 의하면 공황장애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과도한 스트레스다. 만약 일정한 시간 동안 급격하게 불안감이 다가올 경우, 당사자는 마치 죽을 것만 같은 공포와 숨이 실제로 막히는 것 같은 순간을 맞는다고 한다. 이같은 경험을 하는 ‘환자’들에게는 궁극의 공포 그 자체인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공황장애를 방치할 경우 결국 만성으로 진행돼 심각한 우울증에 진입하거나 술 혹은 안정제 등에 과도하게 의존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상당히 많은 숫자의 환자들이 초기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필자가 경계하고 싶은 점은 바로 공황장애가 미디어에 의해 일반화(?)되거나 경시되는 분위기이다. 경제적·사회적·관계적으로 다양한 측면에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수가 공황장애라는 이름으로 치료를 받는 것도 비극적인 일인데, 심각한 질환이 여러 목적에 의해 가볍게 통용돼 자칫 심각성이 무뎌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최근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언젠가 연예인들의 무분별한 ‘자살경험 발언’이 자제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적이 있다. 오랜 공백을 딛고 복귀하는 연예인들이 토크쇼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동안 힘든 시간을 견뎌왔던 점을 강조하며 “자살까지 생각했었다” “극단적인 생각도 매일 하곤 했다”는 식의 발언을 너무나 손쉽게 했던 것이다. 심지어 일부 연예인들은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도구와 방법, 그 외 관련 상황들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그같은 어려운 시간들을 극복하고 다시 카메라 앞에서 당당히 방송에 임하는 연예인들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되지만, 연예인들을 무조건적으로 모방하는 문화가 존재하는 우리사회에서 결코 적절치 않은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유명인의 자살 후 세계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방대한 베르테르 효과가 발생했던 우리사회에서는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판단된다. 이는 연구자, 관련 전문가들은 물론 차인표씨와 손현주씨 등 연예인들 스스로도 자살 관련 발언이 자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었다.

자살문제와 마찬가지로 공황장애도 무분별하게 토크의 소재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공황장애’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심각한 공황장애로 겪었던 고통을 자신이 출연하는 미디어에서 밝히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해당 경험을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표현해 전달하거나, 때로 웃음거리의 일부로 이용하는 것은 지양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가벼운 터치·경험의 일반화 경계

올해 보건의 날(4월 7일)에서 다룬 중심 주제는 정신보건이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건강에 취약한 상태인지를 알고,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처한 한국적 현실을 논의하고 공유하는 자리였다.

일부 행사를 준비하며 정신건강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회의에 참석했던 상당수의 전문가들은 미디어에 등장해 공황장애를 언급하는 연예인들 혹은 일반인들이 과연 실제로 전문가와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은 했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미디어를 통해 유통되는 공황장애의 일반적(?) 이미지에 의해 혹시라도 별거 아닌 질환으로 치부해 버리고 심각성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경계감을 밝힌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의료진의 도움을 받은 공황장애 환자들만 10만명 수준이다. 물론 미디어를 통해 공황장애의 증상과 위험성을 인지해 전문가와 상담하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미디어 속에서 비쳐지는 공황장애의 이미지와 특성에만 근거해 본인 혹은 주변 사람들의 정신건강 상태를 판단하거나 좌시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미디어 콘텐츠는 현실을 반영해 기획·제작되고 유통되지만, 때로는 현실을 왜곡할 수 있고 이해관계에 맞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 오디언스로서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소화하는 역량은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나 건강 관련 콘텐츠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최근에는 더더욱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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