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여론조사와 언론의 공생관계
의도적 여론조사와 언론의 공생관계
  • 이상요 (leesy54@kbs.co.kr)
  • 승인 2017.04.18 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혼란스러운 조사결과…문·안 양강구도, 실제 투표로 이어질까

19대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인가. 답을 찾느라 언론들은 분주하다. 여론조사 결과 보도는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신뢰도 95%에 오차 범위 얼마’ 하는 식으로 과학성과 합리성을 내세운다. 그러나 최근 언론의 여론조사는 실제 결과와 상반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언론들이 의뢰하는 여론조사가 졸속적이라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작년 4·26 총선의 경우, 언론이 보도한 여론조사는 압도적인 여당 승리를 예측했다. 300석 중 200석까지도 휩쓸 것 같다는 정도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표정관리에 애를 먹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결과는 야당의 압도적 승리였고, 그 여파는 대통령 탄핵까지 이어졌다. ▷관련기사: 여론조사는 왜 미운털이 박혔나

작년 6월,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도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 영국과 세계 언론은 유럽연합 잔류로 결정날 것이란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결과는 약 52% 탈퇴 지지였다. 

투표지 문구는 간결하고 중립적이었다. “영국은 EU 멤버로 남아야 하나, 혹은 EU를 떠나냐 하나”(Should the United Kingdom remain a member of the European Union or leave the European Union?) 자기 의사와 다르게 기표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처였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막바지 혼전 양상을 어느 정도 보도하기도 했지만, 일제히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언론은 힐러리 우세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결과는 트럼프 당선이었고 그제서야 미시건, 위스콘신, 펜셀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러스트 벨트의 민심 이반이 주요 원인이란 분석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언론은 신뢰도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관련기사: ‘탈진실’ 다음은 무엇일까

이런 점을 염두에 둔다면 작금 우리나라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는 믿어도 괜찮을까?

여론조사와 선거결과는 다르다

문·안 양자구도에서 안 후보가 앞선다는 보도도 많지만, 양자대결 구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다자구도에서도 안 후보가 앞선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KBS와 연합뉴스가 5자 대결구도 지지도 조사에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약 4% 앞섰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조사는 표본집단이 모집단의 생태계를 왜곡되게 반영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앙선관위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여론조사업체의 조사방식을 점검하기 위해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한 상태다.

언론들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문-안 양강구도를 만들고 있다. 17일 두 후보의 유세 모습. 뉴시스

언론들이 의뢰하는 여론조사가 졸속적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집전화를 과다대표한다거나 RDD 샘플 추출 방식 오류, 지나치게 짧은 조사기간, 낮은 응답률 등 여론조사 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이런 오류 투성이 여론조사 결과를 무수하게 쏟아내고 있다. ▷관련기사: 여론조사 보도가 가짜뉴스 진원지 될라

의도적인 여론조사와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보도를 통해 프레임화를 시도한다는 의혹이 제기된지 오래다. 언론들이 ‘안(安) 띄우기’를 통해 양강 대선 구도 프레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상으로는 이미 양강구도가 고착됐다. 지난 주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6개 가운데 5개가 오차범위 내에서 문·안 접전이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여론조사 보도가 혼란스럽다. 언론사의 프레임 개입을 염두에 두고 여론조사 보도를 해독해야 하는 지경이다. 여론조사 보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가 혼란스러운 것은 유권자들의 태도 때문이기도 하다. 대통령 탄핵 후 이뤄지는 보궐선거라는 상황 때문에 보수적 유권자들은 보수정당에 대한 지지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보수 후보는 지지율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들은 방황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론조사 결과로는 이들의 방황은 안 후보 지지로 정착하고 있는 듯하다. 여론조사상 양강구도를 만든 에너지다. 그런데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 투표로까지 이어질 것인가?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흑인 민주당 후보 브래들리는 여론조사와 출구조사에서 백인 공화당 후보 듀크미지언을 앞섰지만, 선거 결과 패배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상당수 백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로 비난 받을까봐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못했다거나 비백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거짓 응답하고, 실제 투표에서는 백인 후보를 찍었다고 분석했다. ‘브래들리 효과’다.

1990년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흑인인 와일더 후보가 상대 백인 후보를 여론 조사에서는 큰 차이로 앞섰으나, 선거 결과 0.4% 차이로 겨우 당선되는 일이 일어났다. 같은 현상이 반복된 것이다. 이번에는 ‘와일더 효과’라 했다.

언론들은 방황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안철수 후보를 대안적 후보로 지지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로 보면 이 분석은 타당할 것이다. 현재 사회적 분위기로는 보수적 유권자들이 보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드러내기 어렵다. 그러나 실제 투표에서도 여론조사 결과대로 표심이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브래들리 효과나 와일더 효과를 대입시키면 이들 중 일부는 결국 보수 후보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

언론의 프레임화, 시대정신으로 귀결될 것

양강 후보 입장은 뚜렷하다. 문 후보는 보수 유권자를 분산시키려 하고, 안 후보는 결집시키려 한다. 이 때문에 양강은 상호 네거티브 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언론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어느 나라에서나 언론은 프레임화를 시도하고 선거에 광범위하게 개입한다.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일까.

여론조사의 오류는 작년 6,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도 입증됐다. 당시 영국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이 투표소의 투표용지를 분류하는 모습. 뉴시스

노이만은 여론 형성 과정에 매스 미디어가 미치는 영향력이 강력하다고 주장한 대표적 학자다. 그가 제시한 ‘침묵의 나선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유사 통계적 감각’을 가지고, 자신의 의견이 소수의견일 때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는 것이다. 후보들이 자신이 대세라고 내세우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밴드 왜건’, ‘스노우 볼’ 효과도 같은 말이다.

이는 1960년대 이론이다. 밴드 왜건, 스노우 볼에 대응하는 ‘언더독’ 효과도 이미 검증되었다.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의견대로 투표한다는 것이다. SNS의 일상화로 매스 미디어의 프레임화가 역풍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이제 언론의 프레임화는 실제 결과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번 대선 결과도 언론이 어떤 프레임화를 시도하던 결과는 결국 시대정신으로 귀결될 것이다.

대선에서 정책이 실종되고 프레임과 이미지가 난무하는 현상은 정도의 차이일 뿐, 어느 나라나 같다. 이미지 대선은 1960년 케네디와 닉슨이 겨룬 세계 최초의 ‘대선 후보 TV토론회’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월등한 정책을 가지고도 닉슨은 케네디의 젊은 패기 이미지에 패배했다.

국가의 미래는 이미지보다 정부의 성격과 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 선거 과정이 이성적 정책의 한 판 토론장이 될 수는 없을까.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