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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 우편함은 내 고민을 해결해줄까
삼청동 우편함은 내 고민을 해결해줄까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04.19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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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현실판 ‘온기제작소’을 찾다

잡화점을 운영하는 나미야 유지. 그는 동네 아이들의 짓궂은 고민편지에 진지한 답을 써준다. ‘시험에서 100점 맞는 비결이 뭐냐?’ 물음에 ‘선생님에게 자기에 관련된 시험 문제를 내 줄 것을 요청하라’는 식이다. 훗날 선생님이 된 꼬마는 어색한 교우관계를 풀기 위해 ‘친구에 관한 시험’을 본다며 나미야에게 감사편지를 쓴다.

[더피알=이윤주 기자]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났다. 누군가의 고민을 읽고 손편지로 답장해 주는 특별한 잡화점을 통해서다. 서울 삼청동 돌담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온기우편함’은 따뜻한 상상을 구현하는 매개체이다. 손편지로 소통하는 잡화점 점원들의 모임을 찾았다.

삼청동 돌담길에 설치된 '온기우편함'. 온기우편함 제공

토요일 저녁, 이화여대역 골목 작은 카페에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소설 속 점원처럼 일주일에 서너번 2시간가량 편지를 읽고 답장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주일에만 200여통이 넘는 고민들이 쌓인다. 어느새 답장을 쓰는 점원들도 60여명으로 늘었다.

온기제작소를 운영하는 조현식(28세, 대학생) 씨는 편지를 읽기 전 점원들과 함께 지난 일주일 간 감사했던 점을 나눴다. “동생과 캐치볼을 하고 맥주 한 잔을 했는데 좋았어요” “군대 간 남자친구에게 드디어 답장이 왔어요” “커피숍에서 알바를 하는데 손님이 맛있는 거 줬어요” 등 일상의 소소한 감사가 오갔다.

티슈에 적힌 고민. 사진=이윤주 기자

답장을 쓰기 전 마음을 예쁘게 정돈하는 ‘의식’을 마치고 조 씨는 아침에 수거해온 40여통의 종이 뭉텅이를 풀었다. 편지지, 종이 한 장, 티슈 등 여러 모양으로 빼곡하게 글씨가 채워져 있었다. 영천, 제주 등 지방 곳곳은 물론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 해외까지 다양한 주소지가 적혀 있었다.

점원들은 손에 잡히는 편지를 읽다가 그 중 자신이 답해줄 수 있는 내용에 대해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단, 온기우편함만의 ‘말씨’에 대한 주의사항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고민을 쓴 사람이 되어 봐요 /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과 공감을 원하는 것 같아요 /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할 때 가장 좋아요 / 강요, 확신하는 어투는 지양해 주세요

이내 카페에는 딸깍거리는 펜 소리와 종이의 부스럭거림만 가득 찼다. 편지를 읽는 점원들은 마치 편지가 자신에게 온 것인 것 마냥 설렘 반 궁금 반으로 봉투를 열었다. 간간히 외국어로 쓰인 편지를 놓고 고민하거나, 비슷한 이야기가 적힌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다. 이들은 두어 시간동안 2~3통의 답장을 썼다.

'온기제작소' 점원들이 모여 답장을 쓰고 있다. 사진=이윤주 기자

이날 두 번째로 참석한다는 이희주(27세, 직장인)씨는 저녁 뉴스를 보다가 온기우편함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오늘 고른 두 개의 편지 모두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고민을 담고 있었어요. 제가 취준생 때 자주 했던 생각이라 당시의 감정을 써줬어요.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이 있네’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남자친구와 매일 싸우지만 화해할 시간도 가지지 못한 채 하루가 흘러가요’ ‘내일부터는 출근을 하지 않아요. 실직했기 때문이죠’ ‘얼굴에 흉터가 있어 콤플렉스예요’ 등 다양한 사연이 한 데 모였다. 점원들은 정성스레 쓴 답장과 고민종이를 동봉해 그들의 집으로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채택한 사연과 어떤 답변을 적었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제 고민에 대한 답장, 아직은 안 볼래요”

조 씨가 온기우편함을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과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때문이다. 진심이 담긴 손편지를 주고받으며 소통창구가 되고자 했다. 

“현대인들은 고민이 많잖아요. 반면 들어줄 곳은 별로 없어요. 자연스럽게 ‘내가 해볼까?’해서 시작했죠.”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곳이 어딜까 생각하다 삼청동 돌담길을 떠올렸다. 

온기잡화점 조현식 대표. 사진= 이윤주 기자

즉시 사비를 들여 우체통과 편지지를 구매했고 우편함을 설치해도 된다는 구청의 허가까지 받았다. 하지만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예상보다 많은 이들이 참여해 편지지와 우표값을 충당하기 어려진 것이다. “우표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요. 처음엔 예쁜 편지봉투에 보내려 했는데 420원짜리 우표를 써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330원짜리 규격봉투에 보내요.”

온기우편함은 금세 입소문이 퍼졌다. 덕분에 편지지와 우표를 기부해주는 사람이 생겨났고, 현재는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한 모금도 고민 중이다. 

점원이 되고 싶다는 지원자도 많아졌다. 조 씨는 “오전에 어머니들과 함께 장장 4시간에 걸쳐 답장을 쓰고 왔어요. 편지도 잘 쓰시지만 무엇보다 열정적이시더라”며 만족해 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또하나의 현실적 고민도 생겨났다. 점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마땅치 않기 때문. 1인 1음료를 시켜야하는 카페에서는 아무래도 비용적인 제약이 있기 마련이다. “모임장소를 알아보러 종로구청에 가보려고요. 우체통도 닦아야 하고요.”

고민 해결사를 자청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문득 20대 청년으로서 조 씨의 고민도 궁금해졌다. 만약 온기우편함에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을 쓸 거냐고 묻자 점원들 몰래 편지를 보내봤다는 뜻밖의 답변이 돌아왔다.

“항상 고민해오던 건데요. 어떻게 하면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궁금해요. 저한테도 답장이 오긴 왔는데 안 읽었어요. 아직은 간직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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