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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조건과 국민의 조건내우외환의 대한민국, ‘나쁜 크리에이터’에 놀아나지 말자

신간 <대통령의 조건>을 읽어 보았다. 정신과 전문의가 쓴 대통령 스카우팅 리포트이다. 유력 후보들의 성장환경과 경력 그리고 심리코드를 심도있게 분석해 놓았다. 책을 보니 현재 후보들 행태가 이해가면서도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들었다. 이런 후보들로 현재 한국이 처한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국민의 조건’이란 것도 생각해야하는 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조건이 있다면 국민의 조건도 있는 것이 아닐까. 픽사베이

최근에 어떤 현상은 오히려 다른 나라(?)와 더 잘 통하기도 한다. 원정출산, 이중국적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젊은층들의 할로윈 축제나 부유층 지역 유치원 아이들이 혀를 꼬부리며 영어를 하는 것, 맞불집회에 성조기 등을 보면 미국은 한국보다 더 이들을 자국민으로 인정해줄 것만 같다.

일반적으로 국민(Nation)은 ‘소재지와는 관계없이 일정한 국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의 구성원’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민을 그런 의미로만 쓰지 않는다. 한국에 귀화했지만 정체성은 다른 외국인, 외국에 살면서 한국의 체리피커로 사는 사람 등은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국민은 역사와 언어, 문화, 공동체 의식 등에서 일체성으로 묶이는 집단으로 생각되는데 그러면 ‘오늘날 하나의 일체성 국민이란 것이 과연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물론 월드컵과 올림픽을 치를 때, 태안만 기름띠 제거나 금모으기 때 같이 하나 되는 국민은 존재했다. 그런데 한국 정부의 기원, 재벌 개혁, 사드 같은 문제가 되면 하나 된 국민은 없다.

수년 전에 한국의 젊은층에게 ‘전쟁이 나면 총을 들고 나가겠는가?’를 물은 설문조사에서 중국 일본 다음 순으로, 그것도 아주 현격하게 낮은 비율로 예스(yes) 응답을 해서 기성세대를 충격에 빠뜨렸었다.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북유럽 국가에서도 국민의 평등 의무를 위해 여성들도 군복무를 시키는 입법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것들을 보면 과연 국가를 지킬 국민의 조건은 무엇일까?

남의 아빠에게 빵을 달라는 자식

이상의 의문에서 몇 개의 허점을 찾았을 것이다. ‘국민과 민족을 헷갈리는 거 아닌가’ ‘국민은 선택적 계약일 뿐이다’ ‘하나된 일체성 국민은 파시즘 국가에나 어울리는 말이니 민주국가에서 그 전제는 애초부터 잘못된 것이다’ 등등. 그럼 또 의문이 든다.

국민들은 '모두의 대통령'을 꿈꾸며 투표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픽사베이

국민의 조건은 정할 수 없는데 왜 국민을 위하는 대통령의 조건은 요구하는 건가?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은 자신에게 한 표를 준 유권자들과 자신을 지지하는 당과 세력들의 리더 아닐까? 그를 반대한 유권자들과 세력은 다음 선거에서 자신들을 대변할 사람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다르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면 그를 반대했던 국민들이 자신들 이익도 대변해달라고 아우성이다. 비유하자면 남의 아버지에게 “나에게도 빵을 주시오. 당신도 결국 내 세금으로 연금을 타니까 나도 자식이오”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에이, 대통령이 되면 지지자가 아니라 국민들의 대통령이 돼야지”라며 흥분할 분이 계시다면 잠깐 참기 바란다. 그러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잘 안되니 하는 말이다. 가슴에 품는 자식은 따로 있는 법이고 인류학적으로도 부모는 모든 자식들을 다 공평하게 돌보지 않는다. 하물며 정치역학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보라! 지역과 분배의 불균형, 선택적 소통, 지원 양극화 등이 여전히 심화되는 것을.

만에 하나 국민의 대통령이 나와도 정작 국민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해관계, 언론의 프레임 만들기, 인식론적 쏠림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 안 된 국민들은 이미지 정치와 프레임에 쉽게 넘어가 버린다. 불행히도 준비가 된 국민들은 40%를 넘지 않는 것 같다. 대략적으로 ‘진보=빨갱이’라고 보면서 무조건 보수를 찍는 35%와 투표하지 않는 30%를 감안하면 그렇다. 이들이 결국 대통령의 조건을 무력화시키는 준비 안 된 국민이다. 새 정치를 표방했던 후보가 결국 수구 보수 세력에 아부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상황이 그를 말해준다.

더구나 지금 한국은 내우외환의 상황이다. 특정 세력의 지지로 된 대통령이 그들 지지자 눈치를 보면서 트럼프, 시진핑이 패권싸움을 벌이는 폭풍 상황에서 줏대 있게 헤쳐나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래서 대통령의 조건만으로는 안 될 것 같으니 이번만은 국민의 조건도 필요한 것이다. 

좋은 광고는 좋은 광고주가 만들 듯이...

광고업계는 어느 업계보다 더 소비자들을 리드할 크리에이터가 필요하다. 그런데 광고업계에는 ‘좋은 광고는 좋은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좋은 광고주가 만드는 것’이라는 역설이 있다. 그래서 회사의 광고 크리에이티브는 그 회사 광고주의 수준만큼만 나온다. 여기에 국민의 조건 시사점이 일부 있다.

국가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리드할 현명한 크리에이터가 필요하다.

좋은 광고주는 우선 정확한 시장 이해를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고 그에 맞는 광고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목표는 회사의 비전과 부합해야 한다.

다음은 좋은 크리에이터를 찾는 것이다. 저기서는 훌륭했는데 내 프로젝트에는 안 어울리는 크리에이터도 많다. 그래서 크리에이터를 수시로 테스트하거나 자꾸 이상한 요구를 하는 것은 피하고 크리에이터의 요설에 현혹되지 않아야 한다. 제작 상황을 살피면서 좋은 광고가 나올 때까지 영감을 주고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기다려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목적한 안을 현명하게 고를 줄 알아야 하며 결과는 같이 책임진다. 일련의 행위들이 좋은 광고주의 조건이다.

국민의 조건은 이보다 훨씬 어렵고 미묘하다. 국민은 투표할 때 외에는 프로젝트 책임감이 없다. 국민의 조건 교육을 받은 적도 별로 없다. 참여하는 방식도 잘 모른다. 그래서 나쁜 크리에이터에 놀아나거나 또는 반대로 무책임하게 흔들어댄다. 잘못되면 다 크리에이터 탓이라고 하는데 그보다 중요한 것이 광고주라고 했다. 광고주는 바로 유권자 국민이다. 그러니 ‘대통령의 조건+국민의 조건=훌륭한 나라’라는 소원이 어찌 절실하지 않겠는가.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황인선  ishw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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