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7-18 19:34 (수)
홍보계 워킹맘은 안녕하십니까
홍보계 워킹맘은 안녕하십니까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05.02 1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하우스-에이전시 원더우먼 스토리…‘사내눈치법’ 여전, 공사(公私) 분리 힘들어

[더피알=이윤주 기자] 강한 여자가 엄마가 되는 게 아니라 엄마가 되면 강해진다고 했던가. PR분야에 몸담은 워킹맘들을 취재하는 내내 든 생각이었다.

“제가 하는 일이 커뮤니케이션인데 오히려 내 아이는 케어 못해요” “기자와 술자리 후 해롱해롱한 채 아이를 볼 수 없잖아요” “육아로 자리를 비우게 되면 디지털 감(感)이 떨어질까 겁나요” 등등 고민은 다양했고 또 현실적이었다.

10% 속 1%

A씨가 근무하는 대기업 홍보팀은 여성 비율이 10%에 불과하다. 출산 후 회사로 돌아온 직원은 A씨가 유일하다. 홍보업무의 특성 때문에 육아휴직 후 복직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 내 모든 부서에 세대갈등이 있지만 특히 홍보는 윗분들(임원)과의 생각 차가 유독 심한 것 같아요. 아직도 저녁에 기자와 술자리하면서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홍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아이를 돌보는 엄마 입장에선 저녁 약속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업무의 연장선상이지만 별도의 시간을 빼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일을 잘해도 출산을 앞둔 직원은 인사고과가 바닥이다. 그러다보니 남성에 비해 승진도 더디다”고 토로하는 A씨는 무리하게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관둔 후배도 있다고 했다. 워킹맘으로서 터프한 홍보업무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뿐더러, 일에 있어서도 오로지 실력으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대기업에 근무하는 B씨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회사생활에서 가장 큰 허들은 ‘애 엄마는 언젠가 그만 둘 사람’으로 인식하는 거예요. 여성이란 수식어를 떼고 인정받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 사내 분위기가 자발적 퇴사를 불러오는 것 같아요.”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2016 세계 성 격차’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과 여성의 평등정도는 세계 144개국 중 116위로 최하위에 속했다.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남성대비 여성의 노동 참여비율(91위), 유사업무 남녀임금 차이(125위), 추정소득 차이(120위)로 나타났다. 워킹맘에 대한 사회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견고한 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당연한 권리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법적으로 아이 낳으면 출산휴가 3개월과 육아휴직 12개월이 보장된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워킹맘 중 이를 모두 사용한 사람은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노동법보다 ‘사내눈치법’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A씨는 “(상사가) 대놓고 얘기한다. 두 달도 길다고. 그래서 둘째 낳고서도 한 달 밖에 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출산지원금을 몇 십 만원 늘린다, 출산휴가를 2~3년까지 연장한다 말이 많지만 정작 기업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유명무실인 셈이죠.”

자신의 자리가 없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도 한몫 한다. ‘경단녀’(경력단절여성)가 될 우려에서다. A씨는 “1년 3개월을 쉬고도 회사 내 자신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는다면 무조건 쓰겠죠. 하지만 불안하니까…”라고 말끝을 흐렸다.

일반 기업에서는 여전히 ‘애 엄마는 언젠가 그만 둘 사람’으로 인식하는 분위기다.

지난달 여성가족부가 만 25~54세 대한민국 미혼·기혼여성 483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의하면 만 25~54세 기혼여성 중 결혼, 임신·출산, 양육 등으로 2명 중 1명꼴(48.6%)로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사유 중 결혼 비중은 크게 줄고 ‘임신·출산’, ‘가족구성원 돌봄’으로 인한 비율은 증가했다.

반면 워킹맘이지만 육아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답하는 홍보인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소속 기업의 육아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었다.

C씨의 경우 직장 내 보육시설이 있어 부담이 적다. 아이와 함께 출근했다가 퇴근할 때까지 맘 편히 일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을 알기에 C씨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인사상 불이익이나 누가 키울까를 고민하는 직원을 만나면 우선 낳으라고 해요. 그럼 길을 열릴 것이라고요. 완벽하게 보장되진 않지만 정부나 기업들의 출산‧육아 정책이 달라지고 있거든요.”

B씨가 근무하는 회사도 기업 문화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육아휴직을 쓰려면 결제를 맡아야 해 눈칫밥을 먹었지만, 이제는 1년 3개월을 쉬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 이 같은 변화는 사소한 계기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육아휴직을 다 채우지 않고 중도복귀하려면 다시 결제를 올리는 시스템이 생긴 것이다.

“저 낳을 때만 해도 안 그랬는데 최근 들어 분위기가 변했어요. 여자라서 더 대접받겠다는 건 아니지만, 주어진 권리를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건 바람직한 현상이에요.”

시도 때도 없이 연락…아이보다 왈칵

D씨가 근무하는 에이전시(PR회사)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업계에서 워킹맘 없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D씨가 회사로 복직했을 때 직원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얼마나 힘들기에 애 엄마가 한 명도 없냐는 흉흉한 뒷말이 돌 정도였어요. 출산 후 돌아온 사람이 실무진 중에선 제가 처음이니까요.”

게다가 팀장급이었기에 사원이나 대리급 복귀보다 상징적 의미가 컸다. 지금은 육아휴직 후 복직하는 사람의 비율이 1대 9에서 6대 4 정도로 변하고 있다고.

(자료사진) 유한킴벌리가 진행했던 워킹맘 캠페인 영상 화면.

에이전시의 경우 인하우스에 비해 여성인력이 많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보편화돼 있다. E씨는 아침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출근 시간을 30분 미뤘다. “등원 시간이 엄마와 아이에게는 엄청난 스킨십이거든요. 전 이 시간 때문에 삶의 질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자잘한 융통성을 허용해줄 수 있는 회사 분위기나 문화가 중요해요.”

인하우스에 비해 조직문화가 유연해 협의 하에 탄력근무가 가능하다는 점도 에이전시 워킹맘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어디 있든지 클라이언트 업무만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반면 연락이 시도 때도 없이 온다는 단점도 있다. 주말이나 휴가기간에도 예외가 아니다.

“하루는 월차 쓰고 아기와 진짜 오랜만에 둘 만의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클라이언트에게 연락이 오더라고요. 애가 없던 때는 그러려니 하고 급하게 업무를 처리했는데, 그날은 유독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에이전시에 근무하는 F씨의 하소연이다.

G씨는 일하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PR업의 특성상 공사(公私) 분리가 어려워 불편할 때가 많다. “클라이언트나 기자들이 궁금한 거 있으면 수시로 연락이 와요. 업무와 집안일의 분리가 어렵죠. 몸은 집에 있는데 머리는 회사에 있을 때가 많으니까… 가끔 아이들과 있을 때 고객사에서 연락이 와서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특히 야근을 밥 먹듯 하는 제안서 시즌은 가족들의 배려가 더 절실해진다. 업무에 몰입해야 투입 시간 대비 높은 성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후배들은 남아있는데 어쩔 수 없이 먼저 가야 하는 처지에 쌓인 업무를 들고 집으로 간다. 하지만 졸던 아이들도 엄마를 본 순간 각성해 다시 놀기 시작하고, 반대로 엄마는 아이들을 재우기 위한 고군분투를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일을 시작하면 어느새 시계는 밤 12시를 가리킬 때가 많다. 심지어 아이가 깨지 않도록 소리 나지 않는 마우스를 사용한다는 이도 있었다.

“대체로 일하는 엄마들의 아이는 늦게 자는 것 같아요. 퇴근하면 아이가 깨고 그런 패턴 때문에요. 불 끄고 책 읽어주고 어떻게든 재워요. 그래야 몇 시간이든 일해서 내일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에이전시 역시 육아휴직을 꽉 채우지 않고 돌아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팀장급이 출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리를 오래 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출산 시기를 암묵적으로 조절하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E씨는 “짧게 쉬고 올수록 적응이 빠른 것도 있지만, 대부분 팀장급이기 때문에 팀을 해체하거나 다른 팀으로 병합하지 않는 이상 오래 비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며 “그러다보니 (자리를 비울 수 있는 시간이) 최대 3개월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일이 좋아서 자발적으로 1년을 채우지 않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D씨는 출산 후 ‘감’을 잃어버릴까봐 고민이 많았다. 그는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는 내가 다시 기획자로 쓰일 수 있을까. 재미있게 SNS를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더 컸다”고 말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