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몹쓸 말들을 무덤에 묻어라
네 몹쓸 말들을 무덤에 묻어라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05.12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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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동맥경화 시대…선조들의 지혜의 장 ‘말무덤’을 찾다

[더피알=서영길 기자] ‘아무말대잔치’가 유행하며 정말 아무렇지 않게 막말을 토해내는 세상이다. 팩트폭력이라는 그럴싸하게 포장된 단어로 상대방을 제압하며 자기 말빨에 으쓱해 하기도 한다. 입으로 남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게 하나의 능력으로 인정받으며 더 센 언변의 소유자를 찾는다. 설전(舌戰)이 일상화되며 관계가 틀어진 시대. 옛 선조의 말씀자취를 찾아 경북 예천의 ‘말무덤’으로 향했다.

말무덤 전경.
말무덤 전경.

 

말무덤으로 가는 길에 세워진 이정표. 사진: 서영길 기자

언중유골(言中有骨). 익숙한 사자성어로 ‘말에 뼈가 있다’는 뜻이다. 좋은 의미일 때는 말의 묵직함으로 상대의 생각을 깨우치지만, 나쁜 의미로 쓰일 경우 이보다 더 치졸한 방법도 없다. 주로 쌓였던 악감정을 은근슬쩍 말에 보태 흘리는 식이다. 눈치 빠른 상대방은 곧장 전투모드에 들어가기 십상이다. ‘혀 아래 도끼 있다’는 속담처럼 이때 사용된 언중유골은 ‘도끼’와 다름 아니다. 그렇게 말로 찍힌 상대는 도끼를 ‘비수’라는 말로 바꿔 맞받아치며 서로 간 설전이 시작된다.

때로는 칼로 베인 상처보다 말로 난 작은 생채기가 더 아프고 오래가 서로의 관계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보이지 않는 말의 무서움이다. 그런 걸 알면서도 우리는 희망적인 말보다 절망적인 말, 품는 말보다 내치는 말, 손 내미는 말보다 등 돌리는 말, 아랫목처럼 따스한 말보다 차디찬 얼음 같은 말을 더 많이 하며 살아간다.

말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일은 특히 정치판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불과 얼마 전까지 치열했던 대선 TV토론만 봐도 그렇다. 근거를 가진 논리적 공방보다 비난과 말장난에 가까운 언쟁으로 결국 진흙탕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한 후보는 조크라는 미명하에 여성비하도 서슴지 않는 등 선거 국면의 단골손님인 막말, 거짓말, 네거티브 따위의 말들은 투표가 끝날 때까지 수없이 반복됐다. 어떻게 하면 상대 후보에게 흠집을 낼 수 있을까 골몰하는 정치인들의 ‘막말 대잔치’에 대중의 피로도도 그만큼 높아진 것엔 긴 설명이 필요없다. 

실제로 우리는 기나긴 탄핵정국을 거치며 유례없는 ‘정치 곤궁’을 겪었다. 이는 사회 갈등과 세대 간 대립, 분열이라는 또 다른 난제를 남겼고, 그 기간만큼 서로 다른 집단을 향한 악감정과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린 정치 진영 논리의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고, ‘네 탓 공방’을 벌이며 대화는커녕 자신들 무리 안에서 하는 말만 듣고 믿으려 한다.

오죽하면 한 대학교수가 지금 우리 사회를 풍자해 ‘소통의 동맥경화’라고까지 표현했을까. 기술의 발달로 어디서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는 많아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소통은 단절돼 버린, 서로 ‘나 잘나’ 시대에 갇힌 느낌이다.

말 많은 세상의 말 없는 스승

 

주둥개산 초입의 말무덤 안내판.
주둥개산 초입의 말무덤 안내판.

통상적으로 10cm 길이에 60g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인간 신체 중 지극히 작은 혀가 내놓는 말의 위력은 실로 크다. 이 작은 신체에서 나온 한 마디는 개인이나 사회를 해치기도 하고 부메랑이 돼 자신을 겨냥하기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하루 평균 하는 말의 양은 약 3만 마디라고 한다. 그래서 말에 관련된 속담과 경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없이 많이 존재해 왔다.

하지만 입단속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요즘처럼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그런데도 이렇다 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실의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하루에 몇 번씩은 욱하는 마음에 속된 말로 ‘뇌를 거치지 않은’ 아무 말들이 난무하고, 뱉은 말을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보태기도 한다. 그게 친구든, 직장 동료든, 가족이든 피폭당할 상대는 그 누구라도 될 수 있다. 때문에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시점이다.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가끔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고백을 했다. 말을 많이 해 화를 만드느니 차라리 침묵이 값질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도 한번 쯤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실상 경청을 전제로 둔 침묵은 백 마디 말보다 효과적일 때가 많다.

이런 의미의 침묵을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일러주는 곳이 있다. 최첨단 기술도, 만능으로 통하는 인공지능도 더더욱 아니다. 몇 백 년 전 살다 간 우리 선조들이 남겨준 지혜의 장, ‘말무덤’이 바로 그곳이다. 충성스러웠던 말(馬)을 묻은 곳이 아닌 ‘말씀(言)의 무덤’ 즉 언총(言塚)이다. 언총은 한 마디로 침묵의 상징이다. 국내에서도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무덤이 아닐 수 없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에 조성된 말무덤은 400여년을 이어오며 지금의 우리에게 말없는 스승이 돼 주고 있다.

이 마을에 구전을 통해 내려온 말무덤이 생겨난 연유는 이렇다. 예부터 한대마을에는 다양한 성씨들이 모여들어 살았다. 임진왜란 전후로 밀양박씨와 인천채씨, 춘천박씨가 살고 있었는데, 후에 한대마을을 양분하는 낮은 언덕배기를 사이에 두고 김녕김씨, 진주류씨, 김해김씨, 경주최씨가 들어와 집성하며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고 한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큰 싸움으로 번지는 등 말썽이 잦자 마을 어른들은 그 원인과 처방을 찾기에 골몰했다.

말무덤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길 곁으로 격언비들이 세워져 있다.
말무덤으로 올라가는 소나무 길 곁으로 격언비들이 세워져 있다.

어느 날 한 과객이 이 마을을 지나다 산의 형세를 보고는 “좌청룡은 곧게 뻗어 개의 아래턱 모습이고, 우백호는 구부러져 길게 뻗어 위턱의 형세라 마치 개가 짖어대는 상구형을 하고 있어 마을이 항상 시끄럽다”며 예방책을 일러주고 떠났다.

실제로 한대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야산은 그 형세가 마치 개가 입을 벌리는 듯해 ‘주둥개산’이라 불렸다. 마을사람들은 이 과객의 말에 따라 개 주둥이의 송곳니 위치인 논 한 가운데에 날카로운 바위 세 개를 세우고, 개의 앞니 위치인 마을길 입구에는 바위 두 개로 재갈바위를 세웠다. 그리고는 마을사람 모두에게 자신들이 생각하는 상스럽고 험한 말, 남을 함부로 비방해 가슴에 상처가 남게 하는 말, 미움과 원망이 담긴 말 등을 모아 지방처럼 써서 마치 신위 모시듯 사발에 담아 오라고 했다.

마을사람들은 싸움의 발단이 된 말(言)들을 사발에 모두 담아 주둥개산 소나무 숲 언저리, 즉 개가 짖어대는 주둥이 언덕배기에 묻고는 무덤처럼 돌과 흙으로 수북이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한 마디로 말 장사를 지낸 것. 이후 마을사람들은 이 무덤을 신성시했다. 그 뒤부턴 문중 간 싸움이 없어지고 한대마을은 지금까지도 두터운 정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해진다.

조금 황당한 방법이었을는지 모르지만 ‘말무덤’이란 상징을 만들어 말을 절제하고, 마을 간 화합을 이끌어낸 선조들의 번뜩이는 지혜가 빛나는 대목이다. 현재 한대마을 어귀의 주둥개산에는 이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말무덤이 지금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50여년 전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말무덤 앞에서 제사를 지내고 동네 화합과 평안을 빌었다고 한다.

“여서(말무덤) 친구들하고 비료 포대 응디(엉덩이) 깔고 썰매도 타고, 소나무 밑에서 본부 지어서 마캉(모두) 놀기도 놀고. 그럴 때마다 동네 어른들이 여선 말조심해야 한다고 혼내고 그랬제. 지금도 말무덤 옆에 있는 정자에서 마을사람들이 가끔씩 모여 동네 회의를 하기도 하는데 싸울 일이 없지. 말무덤 옆에서 우에(어찌) 싸우노?” 한대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진영(63) 이장은 말무덤과 관련된 이야기를 이렇게 회고했다.

언행일치 보다 심행일치

한대마을과 역사를 같이해 온 말무덤은 세월의 흐름만큼 변화도 겪었다. 말무덤은 조성된 지 약 400여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90년이 되어서야 출향인사들로 인해 위치를 알 수 있는 표지석이 하나 세워졌다. 이 표지석 앞면에는 ‘말무덤’, 뒷면엔 한자로 ‘言塚(언총)’이라고 쓰여 있다. 원래 지름 14m에 높이 5m 가량 된 봉분이었지만 관리가 제대로 안되며 예전에 비해 많이 축소된 상태라는 게 만나 본 마을사람들의 얘기다.

말무덤 주변에 세워놓은 격언비들.
말무덤 주변에 세워놓은 격언비들.

이에 예천군이 2013년에야 비로소 나서 관광지로 조성하며 관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말무덤 주변이 사유지인 이유로 당초 계획했던 만큼의 부지를 확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들녘 가운데 세웠던 재갈바위들은 수십 년 전 농경지 정리와 마을 진입로를 내면서 사라진 상태다. 대신 예천군은 말무덤 진입로와 주변에 말과 관련한 격언과 명언을 13개의 자연석에 새긴 격언비를 세웠다.

이들 비에는 우리가 흔히 들어봤던 속담 구절을 포함해 고종황제가 했던 말과 관련된 경구, 명언들이 적혀있다. 

‘한 점 불티는 능히 숲을 태우고, 한 마디 말은 평생의 덕을 허물어 뜨린다’(고종황제) ‘귀는 크게 열렸고, 입은 작게 열렸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 ‘말단 집 장맛이 쓰다’ ‘내 말은 남이 하고 남의 말은 내가 한다’ ‘말은 할수록 늘고 되질은 할수록 준다’….

많은 구절들 가운데 ‘말 단(많은) 집 장맛이 쓰다’는 속담이 눈에 띈다. 말이 앞서는데 어떻게 정성을 다해 장을 담글 수 있겠는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속담처럼 언행일치보다 심행일치가 더 필요한 요즘이다.

말무덤 주변에 세워놓은 격언비들.

이런 말 많은 시대에 김추인 시인은 ‘허공은 세상 모든 말들의 무덤이겠다’라는 시구를 남겼고, 이기주 작가는 ‘말무덤에 묻어야 할 말을, 소중한 사람의 가슴에 묻으며 사는 건 아닌지’라는 자성의 문구를 우리에게 건넸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며 수많은 검증의 말이 홍수처럼 넘쳐나고, 귀담아 듣기보다 먼저 말하기를 더 좋아하는 지금 이 시점에 서로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언어들이 간절하다. 그 어느 때보다 언총, 즉 말무덤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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