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마을 결혼식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마을 결혼식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05.26 14:1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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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대지를 위한 바느질

[더피알=이윤주 기자] 마을 사랑방 할머니들이 요리하고, 주변 꽃집에서 부케를 만들고, 결혼식이 끝나면 인근 대학교 학생들이 설거지를 한다.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공동체 전체가 들썩이는 ‘마을결혼식’인 셈이다.

사회적기업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성북구 주택가에 있다. 골목을 들어서자 대지를 뜻하는 갈색 간판에 커다란 바늘이 꽂혀있는 형상을 한 집이 눈에 띄었다. 2층 주택을 개조해 만든 사무실에는 작은 정원이 있다. 이 공간에서도 결혼식이 열린다.

사무실 지킴이인 대형견 ‘그린’과 인사를 나누는데, 이경재 대표 겸 디자이너가 레몬차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목조 공간에서 진행된 인터뷰 내내 그린이의 코 고는 소리가 이어졌고, 따뜻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는 계속됐다. 역시 예비부부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장소다웠다.

성북동에 위치한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무실. 사진= 이윤주 기자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어떤 기업인가요.

먼저 회사를 차리게 된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2005년에 한 연예인의 결혼식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어요. 웨딩드레스가 어디 브랜드고, 얼마짜리 타아라를 썼고, 영국에서 온 플로리스트가 뭘 했고 등등 한 달 내내 기사화되더라고요. 정말 소중한 건 빠지고 얼마짜리 결혼식을 했느냐가 주목받는 걸 보고 결혼식의 의미가 흐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전 환경에 관심이 많아서 썩지 않는 일회용 웨딩드레스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그걸 입고 결혼할 주인공을 모집한다는 공지를 냈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됐습니다.

결혼을 할 때 드레스를 대여하잖아요. 1~2번 입으면 세탁해도 새옷 같지 않아져요. 버리거나 스튜디오로 보냅니다. 그래서 저희는 결혼식이 끝나면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원피스로 리폼해주죠. 이 외에도 뿌리를 자르지 않은 부케를 만들어 이후에도 화분에 옮겨 담을 수 있게 하거나 청첩장을 재생용지로 만듭니다.

왜 성북동에 둥지를 트셨나요.

정릉에 있는 국민대학교를 나와서 이 동네에 대해 잘 알아요. 10년, 15년 된 맛집도 많이 알고요. 그 메뉴들이 결혼식에서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서 여기에 사무실을 차리게 됐어요.

'대지를 위한 바느질' 이경재 대표.

마을을 위한 결혼식을 여신다고요.

결혼식 뷔페음식은 종류는 많지만 딱히 ‘맛있다!’하는 음식이 없잖아요. 메뉴가 10종류더라도 그게 다 맛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희가 생각한 방식이 결혼식 당일 성북동에 있는 맛집에서 음식을 조달하는 거예요. 가게에서 만드는 음식을 그대로 가져오면 품질도 보장되고 뷔페업체와 거래에서 드는 커미션도 아껴 비용도 적게 들고요.

뿐만 아니라 동네 꽃집, 미용실, 사진관 등을 이용해요. 소상공을 위한 수익창출도 되고, 대형 프랜차이즈에 밀려 사라져가는 오래된 장인가게도 살릴 수 있죠. 결혼식으로 인해 지출되는 비용이 지역주민에게 나눠지는 거예요. 헤어숍, 경력단절여성, 할머니, 떡집 사장님….

마을경제 활성화에 기여하시는 만큼 성북동 주민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사무실 내부에 전시된 코스튬. 사진: 이윤주 기자

아직 성북구에서 유명하진 않아요. 먼저 연락 오는 가게도 없고요. 조금 더 홍보를 해야겠죠. 

한 번은 만두집 사장님에게 제안하러 갔던 적이 있어요. 당연히 ‘좋아하시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안 하신다는 거예요. 직원도 힘들고 그만큼 할 수 있는 시설이 안 돼 있다고요. 그렇다고 미리 만들어 놓으면 맛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래서 더 신뢰가 갔어요. 돈을 생각하는 사람이면 어떻게든 했을 테니까요.

결국 사장님이 할 수 있는 선에서 20인분만 해 달라고 했어요. 1시간 뒤에 한 번 더 와서 두 번에 나눠서 가져가겠다고요. 덕분에 하객은 따뜻하고 맛있게 드실 수 있었죠. 

지금은 조금 늘려서 한 번에 40인분도 해주세요.(웃음)

결혼식 당일에 직원들이 고생하겠네요.(웃음)

맞아요.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까요. 반면 조달할 수 없는 음식도 있어요. 전이나 잡채 등 식으면 맛없는 것들은 장수마을 사랑방에 모여 계시는 할머님들이 맡아주세요. 이분들 평균연령이 70세예요. 옛날 결혼식은 동네잔치였잖아요. 다들 음식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으시거든요. 결혼식을 위해 3~4일 정도 일하시는데 하루에 8~10만원씩 드리니까 할머님 생계에도 도움이 되신대요.

한번은 할머니들이 우리 못하겠다며 안 하신다는 거예요. 왜 그러시나 알아봤더니 이 일이 수입이 되니까 본인들끼리 싸우다가 다 같이 ‘나 안해!’ 이렇게 된 거였어요.(웃음) 결국 회의를 거쳐 6명이 교대로 일하시도록 순번을 만들어 드렸어요.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옥에서 진행된 결혼식 모습.

아르바이트로 오는 대학생은 학교별로 그룹이 돼 있어요. 성북구에 대학교만 9개거든요. 처음 오면 시급 8000원, 두 번째 오면 8500원, 세 번째는 9000원, 이런 식으로 500원씩 올려주고 있어요. 본인도 좋고 저희도 좋죠. 새롭게 가르치는 것보다 계속 오는 학생들이 더 잘할 수 있잖아요. 

다음에 또 불러 달라고 해요. 다른 결혼식 뷔페알바는 사람대접을 안 해주는 곳이 많다고…

할머니들이나 대학생들을 정기적으로 고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 중에는 기초수급자도 계신데, 정부에서 주는 돈보다 이걸로 버는 수입이 더 많으시데요. 차라리 이 일로 버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려면 결혼식이 매주 있어야 하는데 홍보가 많이 돼야겠죠. 더피알이 PR지니까…(웃음)

이효리씨가 여기에 의뢰해서 작은결혼식을 열기도 했잖아요. 덕분에 많이 알려졌고요. 에코웨딩, 스몰웨딩은 계속 있었던 트렌드인데요, 옛날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대한민국 결혼문화는 이효리·이상순 결혼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톱스타급에 패셔니스타잖아요. 수많은 협찬과 의뢰를 뿌리치고 스몰웨딩을 택한 거죠. 큰 용기에요. 당시 대중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결혼식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효리씨 결혼식 이후로 원빈·이나영, 김나영씨 등 줄줄이 스몰웨딩을 했죠. 그리고 이제는 일반인들도 많이 찾으세요.

이젠 결혼식을 받아들이는 관점이 두 가지로 나뉘었어요. 내 의지대로 하는 결혼식과 남의 이목을 위한 결혼식. 스몰웨딩, 에코웨딩이라하면 지성인(?) 혹은 개념 있는 결혼식이라는 인식으로 자리 잡은 거죠.

SNS상에서 ‘스몰웨딩’이라고 치면 정원에서 예쁘게 찍은 사진들이 주로 보이는데요, 실제로 상담을 받고서 기대와 달라서 실망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상담하러 와서 결국 낙담하고 가시는 분들께 이유를 물어보면 두 부류로 나뉘어요. 한 부류는 부모님이 반대해서. 작고 예쁘게 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하객을 줄일 수가 없는 거예요. 양가 네 분 중 한 분이라도 반대하면 밀고 나갈 수 없는 거죠.

그럼 저희는 이렇게 말씀드려요. 결혼식이란 게 두 집이 만나 새로운 집안을 만드는 첫걸음인데, 당사자 여섯 분 중 어느 한 분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한 명이라도 마음에 서운함이 있는 결혼식은 행복할 수 없다고요. 조율하는 방법을 연습해보는 행사라고 생각하면 돼요.

다른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 거죠. 작은 결혼식은 쌀 것이다는 인식은 정부나 기관에서 잘못 만들어 놓은 것 같아요. 1000만원짜리, 600만원짜리 결혼식 등 금액을 앞서서 홍보를 하다 보니까 일반인들에게 그런 인식이 자리 잡은 거죠.

사실 비용은 상대적인 개념이에요. 내가 소비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금액대를 맞춰서 결혼하면 되는 거지 무조건 싸게 한다고 해서 좋은 결혼식이 아니에요. 당사자들이 충분히 수용할만한 예산에서 최대한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결혼식이 행복한 결혼식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 사옥에서 진행된 결혼식 모습.

최근 여러 공공기관에서 작은 결혼식을 장려하는 추세가 눈에 띄더라고요.

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서울시에서 주는 환경상을 수상하고,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 유니폼을 만들었거든요. 그렇게 박원순 시장과 인연이 닿아 시청 지하 공간에서 결혼을 하게 해달라고 제안했어요. 그 후 연구단이 꾸려졌고, 저희도 6개월 동안 합류해서 작은결혼식 모델을 만들었어요. 그게 지금 서울시민청 결혼식이에요.

지금 결혼식은 과포장되고 오지 않아도 될 하객을 초청하기도 하잖아요. 문제의식은 있지만 해결은 못하죠. 서울시가 앞장서서 작고 뜻 깊은 결혼식을 만드는 트렌드를 만들자고 당위성을 준거죠. 작년까지 5년 연속 시민청 결혼식 협력업체로 있었어요.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성북구 마을결혼식이 안정화 되는 거예요. 2013년에는 1쌍, 이듬해엔 4쌍, 10쌍, 15쌍이 마을결혼식을 했어요. 올해 30쌍이 되고 내년엔 50쌍이 되면 좋겠어요.

성북구가 안정화되면 다른 구에도 지역 중심 마을결혼식을 확산하려 준비 중이에요. 목표는 다섯 군데에요. 소셜 프랜차이즈 개념이죠. 어차피 이건 지역 사람들이 하는 것이어서 이 동네에 사는 사람이 다른 동네에 가서 하는 건 불가능해요.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기 위한 거니까요. 웨딩플래너도 어디가 맛집인지 알아야 해요. 다음 지역으로는 은평구를 놓고 고민 중이에요.

흔히 사회적기업이라고 하면 이윤과 멀고 사이드(side)에서 활동한다는 편견이 있어요. ‘대지를 위한 기업’은 많이 알려진 편에 속하는데요. 뜻을 품고 새로운 사회적기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쉽진 않아요. 일반 벤처기업은 수입창출이 첫 번째 목표라면 사회적기업은 사회문제 해결이 첫 번째고 그걸 위해 수입창출을 해야 하잖아요. 두 가지를 다 해야 하니까 힘들죠. 흔히 사회적기업 관계자들끼린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걸 ‘브레이크를 밟고 운전하는 상황’이라고 표현해요. 막 가고 싶은데 완전히 엑셀을 밟지 못하는 거죠. 그래도 뿌듯함은 몇 배가 돼요.

이경재 대표와 대형견 그린. 사진: 이윤주 기자

한 번은 변호사들 모임에 강의하러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분들이 절 부러워하는 거예요. 말이 안 되잖아요. 로펌 변호사들이 제가 뭐가 부럽다고요. 그런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사람들이 행복 하려고 찾아오지 않느냐고요. 자기들에겐 둘이 해결하다 안돼서, 억울함이 극에 달해서, 악에 받힌 사람들만 찾아온다고요. 돈을 못 벌어도 행복할 거 같다는 거죠. 자기만족일지 모르겠지만 지금 전 행복한 일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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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정 2017-08-27 01:09:36
좀 지났지만,,기사보니 반가워서 글 남겨봅니다~ 그린이도 사진으로나마 반갑네요~ 저도 이경재 대표님의 선한 마인드에 매료되어 사옥에서 식을 올렸죠~ 가족들을 설득하는 부분이 쉽지않았지만..제 소신대로 안했다면 평생 후회했을거 같아요~ 이제 10월 9일이면 1년이 되네요~ 시간이 더해갈수록 마을웨딩 잘했다란 맘도 더 커져갑니다~! 대지바식구들과 마을분들 늘 응원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