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컨설팅 받는 사람들
행복을 컨설팅 받는 사람들
  • 더피알 (anizini@naver.com)
  • 승인 2017.05.26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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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통)’이 전하는 인생솔루션, 답은 가까이에

‘通(통)’은 오래 전 서울 안국동 아름다운가게 앞쪽에 있다가 삼청동으로 옮긴 사주풀이, 인생상담 집이다. 통집 주인장은 전직 국회의원이자 ‘꼬방동네 사람들’로 유명한 L(69) 전 국회의원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이가 전직 국회의원이요, 세상에서 가장 새빨간 거짓말이 ‘전직 의원이 바쁘다는 것’이라는 말처럼, 별도의 전문직이나 현장을 지키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전직 의원들은 정말 한가하다. 현역일 때 워낙 바빠서이겠지만 이젠 전직 의원이란 수식어 마저도 민망할 만큼 세월이 지났다. 65세가 넘으면서부터 대한민국 제헌회에서 나오는 의원연금 월 120만원을 볼 때마다 ‘아, 맞아. 내가 국회의원이었지’를 느낄 뿐이라고 했다.

L형과는 꽤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1977년부터 알고 지냈는데, 내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KSCF) 소속 학생으로 모처의 집창촌을 드나들 때 그는 그곳의 왕초였다. 자주 오가며 친해지다가 그곳 매춘녀들과 틈틈이 예배를 보기 위한 아지트로 만화가게(당시는 비디오가 일반화되지 않았을 때다)를 차렸을 때, 그는 방장이었고 나는 당시 도시선교회 소속 전도사였던 Y목사의 시중꾼이었다.

그때부터 가깝게 교유하다가 1985년경 영화감독 A선배가 주도하여 B감독, C기자, D교수, A선배(A감독 동생), 이름을 밝히기 어려운 거물급 정계인사가 된 선배 두엇과 함께 ‘꼬방회’를 만들었다. 20여년 전 쯤에 작고한 D교수만 빼고는 모두 건재하다. (일 년에 한번 모이는데 의제는 단 하나. 다음해 모임날짜 결정이다.)

‘통’은 사주풀이를 통해 행복을 컨설팅하는 인생상담소라고 할 수 있다. L형이 행복컨설팅을 잘할 수 있다거나 그에 합당한 공부나 수련을 잘 쌓았는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지만, ‘누구나 행복해야 하고,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래서 행복컨설팅이 꼭 필요하다’고 누구보다도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자격과 실력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통’엔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은 물론 가회동의 우아한 귀부인으로부터 청량리 매춘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행복컨설팅을 받으러 온다. 하루에 열명 이하만 상담하는데, 복채가 0만원쯤이라고 하니 하루 수입은 00만원쯤이 된다. 어떻게 그 돈을 쓰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은 벌이가 없는 옛 친구나 민주화운동 동지들의 밥값이 된다.

하루는 한 매춘녀가 찾아왔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온 39세 여인이었다. 자신은 하루에 최소한 네명의 손님을 받아야만 말기암으로 고생하는 늙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 수가 있는데, 20년 이상 몸을 팔아 살다보니 성한 데가 없다고 했다. 의사 말로는 이대로 가면 2년 이내 죽는다고 하니 대체 어쩌면 좋냐는 것이었다. 이쯤되는 상황이라면 상담이고 뭐고 사주를 짚어볼 필요도 없다.

그는 ‘생계형 매춘’이란 단어를 꺼내면서(그때부터 매스컴에서 이 개념적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몸을 팔면 네가 죽고, 몸을 안팔면 엄마가 죽으니…… 너도 살고, 엄마도 살아야 하니… 하루에 두 명만 받으며 살라”고 했다. 설사 상담이 없었던들 못구할 답은 아니었지만, 이 여인은 이내 웃으며 돌아갔다.

또 한번은 사납게 생긴, 딱 보기에도 무서운 여인이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 남편과 함께 통을 찾았다. 부부 사이 별별일을 놓고 날마다 싸우느라 가정이 엉망진창이 됐다. 급기야 바람난 여인은 곧 집을 나갈 판이요, 남편은 이미 그것을 눈치 채고 있었고 부부의 사주자체도 그것을 증명할 정도로 나빴다. 

그는 부부의 외아들 사주를 묻고는 “아들 사주가 너무 좋다. 아무래도 재상감이다. 부모가 정성을 다해 잘 키우면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자식인데… 당신들 부부사이가 원만치 않으면 모두 허사다. 이제부터 당신들은 오직 자식만을 위해 화목을 도모하라”고 상담했다. 별 희망도 없이 짜증과 분노로 날을 보내던 이들 부부은 그날로부터 오직 자식만들 위해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건강하고 화목하게 지내게 됐으니 가정은 좀 더 행복해졌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통도사의 상담은 바로 행복컨설팅이요, 희망컨설팅이었던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것도 일도 많은 요즘, 나라 전체가 행복컨설팅을 받아야 할 정도로 행복하지 못한 요즘, 오랜만에 삼청동 골짜기 골목안 ‘통’을 찾았다. 하루에 여덟명만 받는다는 데도 거실에는 아줌마, 영감님들이 그득 앉아 상담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참 많은 모양이다. 부디 우리나라가, 우리 정치가, 우리 국민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희망컨설팅이 필요하다.

안희진

한국DPI 국제위원·상임이사
UN ESCAP 사회복지전문위원
장애인복지신문 발행인 겸 사장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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