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이후 미디어 지각변동
종편 이후 미디어 지각변동
  • 이정환 기자 (top@leejeonghwan.com)
  • 승인 2011.02.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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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출혈경쟁…‘공멸’ 우려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가 선정됐다. 예상했던 것처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 그리고 매일경제까지 포함이 됐고 한국경제는 떨어졌다. 보도전문채널은 연합뉴스만 선정됐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이명박 정부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 왔던 보수 성향 언론사들에게 주는 특혜 성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제한된 광고시장에서 경쟁이 심화되면 자칫 업계 전체가 공멸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단 2013년이면 본격적으로 디지털 방송이 시작된다. 유선방송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실내 안테나만으로 웬만한 지상파 방송을 깨끗하게 볼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다채널 방송 서비스, MMS가 허용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게다가 스마트TV 보급도 확산되고 있고 다양한 형태의 네트워크 기반 주문형 비디오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 종편이라는 낡은 플랫폼에 과연 3천억원 이상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신문사들이 이처럼 방송 진출에 목을 매는 건 신문광고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가운데 방송광고는 아직 성장 여력이 남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이 풀리면서 민영 미디어렙 진출이 허용되기도 했고 중간 광고도 허용될 전망이다. 규제가 풀리면서 광고 단가가 치솟고 시장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래봐야 1개에서 2개 정도 신설 방송사와 나눠먹을 정도밖에 안 된다는데 있다.

종편 “먹고 살거리 달라” 정부 압박

애초에 종편 사업자가 2개 이상만 돼도 사업성이 없다는 전망이 많았는데 이명박 정부 입장에서는 ‘조중동매’ 가운데 어느 언론사와도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결국 이처럼 하고 싶으면 다 해봐라란 식으로 던져주는 결과가 됐는데 벌써부터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손익 계산이 분주한 가운데 ‘승자의 저주’에 빠져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공정성 논란도 제기된다. 최근 유출된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종편 사업자에 지망한 태광그룹이 기술적 능력과 콘텐츠산업 육성·지원계획 등에서 최저 점수를 받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태광은 18개 평가항목 가운데 자금출자와 재정능력을 뺀 14개 항목에서 꼴찌를 기록했다. 반면 조중동은 심사위원의 주관이 크게 개입되는 비계량적 항목 배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13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7명이 송도균·형태근 상임위원의 추천 인사인 것으로 드러나 일부 심사위원들이 특정 후보에게 점수를 몰아준 것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 심사위원들의 세부 점수표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불필요한 논란을 부추길 뿐이라며 정보 공개를 꺼리고 있다. 800점 만점에 1.62점이 부족해 아슬아슬하게 미끄러진 머니투데이 등도 여러 차례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연합뉴스도 구설수에 휘말려 있다. 연합뉴스 노동조합이 지난해 직원들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합뉴스 보도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65.9%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그런데 이번 심사에서는 공정성·공익성 등의 항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정부 지원을 받는 언론사가 공정할 수 있느냐는 비판과 함께 주요 주주로 참여한 을지병원의 적격성 논란도 제기된다.

정부는 일단 종편을 떡밥으로 던진 이상 이들 언론사들에게 어떻게든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 고민거리를 안게 됐다. 국회 의결을 남겨두고 있는 KBS 수신료 인상과 KBS 2TV 광고 폐지 문제 등도 다시 검토될 가능성이 크다. 파격적인 규제 완화는 물론이고 정부 광고가 이들 언론사에 직간접적으로 대거 집행될 가능성도 있다. ‘조중동매’는 벌써부터 지면을 동원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이들 신문사들은 유선방송 사업자(SO)들에게 의무 재전송을 제도화하고 지금 홈쇼핑업체들이 차지하고 있는 황금 채널을 내주라고 요구하고 있다. 병·의원이나 전문 의약품 광고까지 허용해 달라는 요구도 나왔다. 일본 방송 프로그램 방영 비율을 높여주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어느 것이나 업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데다 여론의 반발이 거센 사안이라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재원·인력·콘텐츠…무한경쟁 돌입

재원 조달도 관건이다. 업계에서는 중앙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언론사들은 재원 조달이 순탄치 않을 거라는 관측이 떠돌고 있다.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에 주요 주주가 이탈할 경우 최악의 경우 승인이 취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매일경제는 직원들 350여명이 한 사람 앞에 적게는 1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 출자하기로 약정을 했으나 다들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보수 성향 신문사들이 대거 방송에 진출하면서 한국판 폭스TV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조중동매의 점유율이 전체 신문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여론 독과점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청률 경쟁이 격화되면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방송시장 전체가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게 될 거라는 전망도 많다.

종편 방송사들은 일단 뉴스보다는 드라마와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전력을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당장 투자 대비 성과가 큰 분야기 때문이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들 드라마 외주 제작 비율이 90%가 넘는 상황에서 콘텐츠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프라임 타임의 주력 프로그램에서는 두 배 이상이라도 비용을 들여 초기 경쟁에서 승부를 내려고 할 가능성이 크다.

신설 방송사들이 늘어나면서 인력 대이동도 예상된다. 미디어오늘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400여명, 매일경제가 500여명, 연합뉴스가 200여명 규모로 방송사를 꾸릴 계획이고,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는 외부 충원 60%, 자체 인력 30%, 신입 채용 10%라는 구체적인 인력 구성 계획까지 밝힌 상태다. 외부 충원은 당연히 기존 방송사 인력이 타깃이 될 전망이다.

그러나 PD저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PD연합회 회원 325명 가운데 65.5%가 종편 채널로 이직 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MBC는 이직 의사가 있다는 응답자가 단 한 명도 없었고 KBS도 7.1%로 비교적 낮았다. SBS가 17.1%로 상대적으로 높았는데 이는 최근 구조조정·인력감축설 등 내부의 흉흉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결국 상당한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인력 수급이 만만치 않을 거라는 이야기다.

콘텐츠 확보 경쟁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신규 종편 채널은 물론이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컴퓨터, 스마트TV까지 다양한 콘텐츠 플랫폼이 쏟아져 나오면서 콘텐츠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미디어산업 구조의 헤게모니가 플랫폼에서 콘텐츠 진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히려 종편 시대 최대 수혜자가 종합 콘텐츠 기업으로 자리잡은 CJ E&M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미디어산업의 구조조정도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신설 방송사들로 광고가 빠져나가면서 신문사들의 광고가 급격히 줄어들고 경영 위기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군소 유선방송 채널 사업자(PP)들의 인수·합병도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의 헤게모니가 붕괴하면서 이제 누가 얼마나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고 새로운 질서에 발 빠르게 적응하느냐의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 누가 최종 승자가 될 것인지 아직은 예견하기에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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