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藥) 광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약(藥) 광고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 유현재 (hyunjaeyu@gmail.com)
  • 승인 2017.06.14 16: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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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재의 Now 헬스컴] 화려하고 가벼운 접근법, ‘이미지 소비’ 부채질할 수도

[더피알=유현재] 과거 광고회사 근무 시절 제약광고를 잠시 담당한 적이 있다. 당시 고참들은 ‘관련 법규를 좀 더 꼼꼼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물론 여타 제품들도 연관된 법규나 금지 사항, 혹은 업계의 금기 등으로 전해지는 각종 문화를 숙지해서 광고를 기획하고 제작해야 했다. 하지만 특히 의약품은 광고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메시지를 만들거나 실제 표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이 많다. 사용할 수 있는 항목들과 사용해서는 안 될 문구, 개념, 표현 등이 꽤 있다.

따라서 회의실에 모여 소위 법에 안 걸리는 수준에서 최대한 사람들을 신속하게 설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건강과 직결되는 제품인 ‘약’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공포소구를 사용할 이유는 없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신나는 징글(jingle·특정 브랜드를 기억하게 하는 간단한 소리)을 만들기도 하고, 코믹 스토리나 말장난 등도 대안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판단사항은 수위의 조절이었다. ‘위법’은 절대 불가였으며, 소비자들에게 오해 혹은 반감 등이 있을지 등을 미리 가늠해서 꼼꼼하게 아이디어를 판단했다. 이 과정을 거쳐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회자되는 히트작이 나오면 참 기분이 좋았다.

현란한 이미지가 주는 가벼움

요즘 제약광고들을 보면 이 같은 전략의 방향성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일반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테크닉은 더욱 업그레이드되고 다양해진 것처럼 느껴진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약간 오버(과장) 아닌가?’‘약 하나 먹었다고 저렇게 변할까 참... 대단하다’ 등의 생각을 들게 하는 광고 또한 여전히 자주 보인다. 그럼에도 어느새 자연스럽게 설득돼 해당 약품을 약국에서 찾게 되곤 한다.

예를 들면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광고가 한동안 히트를 친 적이 있다. 최근의 시리즈 광고에도 이전의 것과 유사한 메시지가 사용되고 있다. 지인 의사에게 광고에 등장하는 헤드라인에 대한 의견을 물었더니, “맞는 말이긴 한데, 사람이 피로하다고 느낄 수 있는 기전은 아마도 간뿐만 아니라 수백 가지가 넘지 않을까?”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비(非)전문가인 필자가 막연히 떠올려봐도 일상적 업무가 무엇이든 근무시간이 길어지기만 해도 이래저래 피로할 것이며,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도 피곤하다고 느낄 것이고, 감기만 걸려도 당연히 피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극단적으로는 암 같은 심각한 병에 걸려도 여러 이유에 의해 너무나 피곤할 것이라는 가정도 가능했다.

대웅제약 우루사 광고 화면.

이처럼 다양한 피로의 원인과 원천이 있지만, 앞서 언급한 제품은 “간 때문이야!”라고 단정하며 크게 외쳤다. 그것도 인지도 높은 유명인들을 동시에 기용해 대단히 재미있고 중독성 있는 전술을 활용했다. 신나기 짝이 없는 음률과 비트를 적용, 아예 징글로 만들어 전국 방방곡곡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일부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해당 광고에 사용된 징글과 상황을 패러디 하는 등 대중 확산효과는 상당히 빠르고 지속적이었다.

사실 이 정도의 높은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면, 피로를 느끼고 뭔가 방법이 필요하다는 니즈가 약간이라도 있는 소비자들은 출퇴근길에 가까운 약국에 들러 “OOO 주세요”라고 자동적으로 주문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상담은 약사에게’라는 원칙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요즘 회사일이 많아서 피로를 느끼는데... 혹시 영양제나 약이나 뭐 없을까요?”라고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는 과정은 사라지고, 귓가에 맴돌던 음률과 강렬한 메시지가 자극하대로 특정 제품을 콕 집어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의미다.

해당 제품이 몸에 유익하다는 팩트, 구체적 성분의 우수성 여부 등을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기업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을 사용해 마케팅을 진행하는 것도 결코 문제될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각종 주장들이 난무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소비자들은 반드시 이 같은 현상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제품이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강’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위부터) 동아제약 베나치오 광고, 보령제약 용각산쿨 광고, 광동제약 비타500 광고.

실제 제약광고에서 시선을 잡아끌기 위한 현란한 전략은 흔한 일이다. “드신 날과 안 드신 날을 비교해 보세요!”라는 강력하지만 개인의 주관적 혹은 추상적 경험 소지가 다분한 몸에 대한 느낌을 비교 삼아 소비자를 설득하는 경우가 있고, 다양한 이유로 소화가 안 된다고 느끼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쭉 짜서 먹으면 신속하게 소화가 이뤄지는 그래픽을 활용하는 광고도 다수 있다. 각종 고퀄리티의 그래픽을 활용, 방금 전까지 허리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인물이 복용과 거의 동시에 만세를 부르는 기적을 연출하는 황당하지만 속 시원한 광고도 자주 보인다.

명확한 이유도 없이 연예인이 무작정 등장하는 광고도 다수다. 해당 연예인이 도대체, 왜 특정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제품을 홍보하는지는 파악이 불가하지만, 어쨌든 인지도를 활용해 제품을 단순 권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발탁하기 위해서는 일단 특정 제품과 관련된 ROI 즉 연관성(Relevance), 독창성(Originality), 강도(Impact) 등을 최대한 고려해야 한다고 교과서에 쓰여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해당 연예인이 계약 시점에서 얼마나 높은 인지도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지에 의해 결정되는 사례도 상당할 것이다. 그런 기준에 의해 선택된 연예인은 특정 약품에 정확한 지식도, 별다른 관련도 없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즉, 자신이 모델인 제품에 대한 본격적 이해, 관련 정보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홍보한다기보다는, 촬영 당일 처음으로 직접 만져보는 제품에 자신의 이미지를 덮는 작업만 수행할 수 있다. 관여도를 높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약’이 연예인의 이미지에 의해 구입되고 소비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이고 까다롭게 분별해야

다른 제품도 아니고, 우리가 건강증진 혹은 치료를 위해 먹고 바르고 소비하는 약의 상업적 소통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는 조금은 달라져야 한다. 뭘 별스럽게 문제제기를 하는가에 대한 지적도 있을 수 있겠다. 어차피 의사가 처방을 해야만 환자가 소비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들은 일반 공중 대상의 광고가 금지되어 있는 상태이고, TV 등 대중적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광고들은 일반의약품에 한정되어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기업이 홍보활동 진행과정에서 아무런 규정을 어기지 않았는데, 설득 유형에 대해 토를 다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틀리지 않은 지적이다.

하지만 최소한 건강과 관련된 제품에 대해서는, 커뮤니케이션의 문해력(Literacy) 및 정보에 대한 소비 태도가 상당히 중요한 분야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약 광고가 마치 제과나 스낵 광고처럼 가벼운 접근을 사용하며 나에게 다가오더라도, 실제 약품의 선택 시점에서는 광고가 전달하는 이미지 위주의 사항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인 정보수집과 이성적 판단이 개입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다. 주변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도 있으며, 약국에 언제나 상주하는 약사 선생님에게도 진지하게 여쭤볼 수도 있을 것이다. 광고에서 연출되는 논리나 이미지, 주장하는 메시지가 어느 정도까지 타당한 것인지, 혹 침소봉대나 아전인수는 아닌지 등을 조금 더 진지하게 파악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약 제품은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것이고, 경쟁 또한 갈수록 치열해질 것이다. 약 광고의 홍수는 기술의 진보 및 고령화 사회의 본격화와 함께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소위 저관여(Low Involvement) 방식과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약 광고들도 더욱 쏟아질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스마트 컨슈머는 물론 확인하는 컨슈머, 적극적인 소비자이자 까다로운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가장 좋은 옵션의 약품 선택을 위해서 말이다. 백세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이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자세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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