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도 2.0버전 출시하자
축제도 2.0버전 출시하자
  • 황인선 (ishw11@naver.com)
  • 승인 2017.06.1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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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사치 이벤트 범람…입체적 도시 만드는 ‘명품’ 탄생하려면

지난 10년간 한국에는 두 개의 고난이 있었다. 하나는 부도덕한 정권이 국민에게 가한 고난이다. 국격은 훼손됐고 정권은 국민을 대상으로 ‘장사치 짓’을 했다.

또 하나는 세월호 침몰이다. 그런데 침몰한 것은 배만이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믿음도 있었다. 그러다가 촛불의 힘으로 더러운 권력을 걷어냈고 세월호는 고난의 몸을 드러내 국민들에게 다시 믿음을 줬다. 6월 10일에는 시청 앞 광장에서 지난 투쟁들의 성과를 축하하는 시민 축제가 열렸다. 요즘 페북 콘텐츠도 거의 축제 같은 희망과 감동의 내용들이 많아졌다.

축제처럼 치러진 탄핵 환영 촛불집회. 뉴시스

수천개 행사, 마케팅 효과는?

지난 5월 말에 총감독으로 참가한 춘천 마임축제의 ‘불의 도시’도 기존 행사에 이런 국가적 분위기를 더한 것이었다. 그 축제공간에서 수만명 시민들은 불의 나라 도래를 자축하고 불같은 내일을 기원했다.

시대의 지평이 확보되면 사람들은 축제를 연다. 요한 하위징아가 말했듯이 인간은 호모 루덴스(Homo Ludens. 놀이, 유희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아주 잘 논다. 놀이와 축제가 없는 곳은 감옥, 공장, 군대, 병원, 학교, 회사, 독재사회 등이다. 그들엔 기껏해야 체육대회, 전진대회만 있을 뿐이다.

축제는 뿌리가 깊은데 지역과 시대마다 양상은 달라 유럽에서는 페스티벌(Festival), 카니발(Carnival), 페스타(Feast), 갈라(Gala) 등이 있고 한국에는 동맹의 ‘국중대회 음주가무’부터 잔치, 축제, 난장, 대회 등으로 전해져왔다. 이들은 정착사회에서 한해의 노고를 위로하고 수확물을 나누며 신과 자연에 감사하고 더 풍요한 내일을 기원하는 추수감사제 성격이 짙었다. 이 의식에는 예술, 교환행위, 특별한 놀이문화와 음식이 따라 붙었다.

최근에는 축제가 유망한 문화관광산업으로 인식되면서 경제 가치와 놀이, 문화 관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에만 비공식적으로 1만개 이상의 축제가 있고 동네잔치 수준을 빼면 2500여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유럽의 축제 마케팅은 이미 유명하다.

그래서 눈치 빠른 기업들은 축제를 조직문화 혁신과 고객 경험관리에 활용한다. 이벤트라고 표현할 뿐 본질은 축제에서 온 것이다. 이벤트의 어원은 라틴어 E(out)와 Venire(to come) 뜻을 가진 Eventus인데, ‘발생’이나 ‘우발적 사건’과 같이 일상의 흐름 중에서 특별하게 발생하는 일을 가리킨다.

기업에서 이벤트는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놀이와 감사, 상징성과 차별적인 의미를 부여해 감동의 폭을 높이는 의사(Pseudo-) 축제 기능을 한다. 다만 축제에 비해 종교성이나 공동체 지향이란 측면은 약하다. 현재 많은 지역축제들이 사실은 이런 이벤트 마케팅을 한다.

필요하기는 하지만 문제는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거나 정체성이 약한 붕어빵 이거나 장사치 이벤트 또는 젊은이들은 없고 어르신만 모이는 경로축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축소, 변질되는 경우도 많아 오랜 역사를 지닌 명품 축제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외국 관광인구가 1500만명이고 국제 대회가 한국처럼 많은 나라도 드문데 그럼에도 외국인들이 한국의 축제에 맞춰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래서 한국 축제는 이제 2.0버전으로 진화해야 한다.

축제 2.0=f

높은 수준의 축제는 개방적이고 소통을 지향한다. 최근 확산 중인 거리예술제는 그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제의성은 약하지만 지역통합과 해방(폐쇄된 고정관념에서, 스마트 감옥에서 등) 기능은 탁월하다. 차가 점령했던 거리를 개방하면 학원과 스마트폰에 갇혔던 아이들은 강아지 떼처럼 차도를 뛰어다니고, 젊은이들은 차를 버리고 애인과 거리를 음미한다. 아티스트들은 공중으로 올라가고 건물 수직 벽에서 공연을 하며 버티컬 곡예, 불꽃과 화염, 무중력 인간 등은 공동체의 상상을 깨운다. 사람이 도시의 주인이 되며 도시가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춘천 ‘물의 도시-아수(水)라장’ 거리축제에 왔던 20대의 SNS마케팅 전문가들은 뜻밖에도 축제가 처음이라고 했는데 물 난장에 참가하던 그들이 “이런 건지 몰랐다. 다음에도 다시 오겠다”고 했던 이유가 거리축제의 그런 매력들 때문이다. 

춘천마임축제2017의 개막축하 행사 ‘물의도시 아水라장’을 즐기고 있는 참가객들.

과천에서 시작해 거리예술제를 확산시키고 있는 임수택 감독은 좋은 거리축제의 기준으로 예술성과 소통, 전통의 현대화를 꼽는다. 세 단어가 공통적으로 함유한 의미는 아마도 미래성일 것이다. 미래는 기술의 혁신, 문화의 재해석, 다양한 소통 등을 포함하는 말이다. 축제 2.0버전에서 반드시 내포할 의미들이다. 2.0버전에서 보면 한국 축제가 발전할 여지는 아직 많다.

이번에 살펴보니 호반의 도시 춘천에는 닭갈비와 막국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슴도치 섬 외곽에 대규모 애니메이션 박물관과 로봇, 토이 박물관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하던 소양강 처녀 스토리도 있다. 오랫동안 한국과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노래방 애창곡 1위였으니 덴마크에 인어공주, 스위스에 알프스 소녀가 있다면 한국엔 소양강 처녀가 있는 셈이다. 이런 기술과 캐릭터 그리고 처녀 스토리는 향후 춘천마임축제 2.0으로 진화하기 위한 훌륭한 소재들이다.

다른 도시들도 이런 2.0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해 밀양 아리랑 축제는 밀양강 중앙에 첨단의 워터스크린을 설치하고 영남루를 배경으로 오디세이 뮤지컬 영상을 시연하는 진일보된 축제를 선보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700년이 넘는 일본 하카다의 기온야마카사(山笠) 축제는 다양한 인형과 브랜드 캐릭터를 융합하여 현대성을 놓치지 않는다. 세계 3대 겨울축제로 꼽히는 삿뽀로 빙설축제는 거대한 빙설작품과 얼음무대에 첨단의 미디어와 캐릭터, 동영상 콘텐츠를 총동원한다.

이들 사례를 보면 ‘축제 2.0=f(스토리, 기술, 소통)’임을 생각하게 한다. 이런 함수관계가 되어야 축제 2.0이 되며 지역은 기술발전, 경제효과 고양과 문화발전이 가능해진다. 그렇게만 되면 젊은 세대들이 굳이 축제 시즌에 클럽이나 인천공항으로 가지만은 않을 것이고, 기업은 이벤트 콘텐츠가 더 풍부해질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 한국! 축제2.0으로 잘 놀아보자. 

황인선

브랜드웨이 대표 컨설턴트
문체부 문화창조융합추진단 자문위원
전 KT&G 마케팅본부 미래팀장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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