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마다하는 청춘들의 속사정
‘꽃길’ 마다하는 청춘들의 속사정
  • 이성훈 (ssal123223@gmail.com)
  • 승인 2017.06.21 10:0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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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3인 3색 3사표

주위에 ‘쟤 미쳤어?’ 소리를 듣는 친구들이 있다. 유명 대기업, 철밥통 공기업, 메이저 언론사에 취직해 ‘꽃길’을 걷고 있지만 새롭게 이직을 꿈꾸는 20대들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얻어낸 직장을 왜 떠나려는 건지, 속사정을 들어봤다.

공기업, A

A를 알게 된 것은 대학생 시절 가입한 언론고시 동아리에서였다. 아나운서를 꿈꾼 A는 전현무 같은 ‘아나테이너(아나운서+엔터테이너)’보다는 손석희처럼 시사문제를 깊이 전달하는 ‘앵커맨’을 동경했다. 열심히 준비하던 그였지만 집안사정이 여유롭지 않았다.

아나운서는 무척 불안정한 직업이다. 경쟁률이 200대 1을 훌쩍 넘고, 설령 계약에 성공해도 기약 없이 프리랜서 시절을 보내야 한다. 이런 직업에 도전하기는 A의 형편이 어려웠다.

A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산업특허를 관리하는 공기업에 들어갔다. 연봉도 두둑하고, 직장 분위기도 수평적이며 무엇보다 칼퇴근을 보장받았다. 본격적인 화이트칼라 입성에 A 본인도 제법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3년여를 잠잠하던 그가, 요즘 다시 움직이고 있다. 칼퇴근 하자마자 곧장 아나운서 학원으로 뛰어가서 시사뉴스를 통독하고, 발성을 가다듬는다. 정말로 ‘신의 직장‘을 탈출할거냐는 친구들의 물음에 A의 답은 항상 같다.

“이대로 살면 편하지. 근데 역시 꿈을 쫓으며 살고 싶어.”

건설사, B

B는 건축학을 전공했다. 단정한 외모와 성실함이 돋보이는 B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불리함을 딛고 여러 차례 도전 끝에 대기업 건설사에 합격했다. B는 활짝 웃으며 언젠가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한 장면처럼 친구들에게 멋진 집 한 채씩 지어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건설현장은 B의 기대와 달랐다. 모든 것은 오직 ‘빨리’, ‘많이’ 건물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 공사기간을 단축할 수만 있다면 직원들의 삶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건설현장은 주말도, 가족도 없는 유배지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건설업 종사자들은 ‘시공팀’에 배치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B는 입사하자마자 그런 귀향지 같은 곳에 파견됐다.

B가 도착한 곳은 경상도의 어느 낯선 바닷가. 해변을 따라서 종합상가-팬션 등이 지어지고 있었고, B의 선배들은 밤낮으로 ‘노가다’ 인부들을 감독했다. B는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해 밤11시가 넘어 근처 모텔로 퇴근했다. 휴일은 한 달에 하루 내지 이틀만 주어졌다.

군대보다 더한 기다림에 여자친구도 이별을 통보했다. 하루종일 콘크리트 반죽이 버무려지는 건설현장에서 B의 삶도 짓이겨졌다. 분노한 B는 이렇게 현장에서 늙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결국 과감하게 사표를 냈다.

몸도 마음도 지친 B는 퇴사 직후 3개월 동안 ‘백수의 여유’를 즐겼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더 나은 조건의 건설사로 금방 재취업했다. 한 번 합격도 어려운 대형건설사를 두 번이나 합격한데다가 이번에는 ‘현장파견’과는 거리가 먼 부서로 취직했으므로 남들은 ‘기적’이라며 칭찬했다.

그런데 이번 이직도 ‘꽝’이었다. ‘현장파견’은 운명처럼 B를 따라왔다. 몇몇 대형건설사가 전국의 건설수주를 싹쓸이하는 한국건설업의 특성상, 어디에 취업하든 매년 3개월 이상의 현장파견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B는 모든 걸 체념하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이번 생은 망했어. 이게 게임이라면 캐삭(캐릭터 삭제)하고 다시 키우고 싶다. 그러면 건설 일은 다시는 안 할 텐데…”

언론사, C

C는 에너자이저 같은 친구다. 언제나 활기가 넘치고 수다스럽다. 함께 언론고시를 준비했던 그는 자기가 원하는 아이템을 취재할 때면 잠도 잊고 며칠을 달릴 만큼 명랑했다. C는 학교를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모 언론사에 기자로 합격했다.

C에게 요구된 ‘기자질’은 그가 꿈꿔온 저널리스트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저널리스트보다는 ‘월급쟁이’에 가까웠다. 한동안 증권가를 전전했다. 기업에서 나눠주는 보도자료를 베껴쓰거나, 회사에서 원하는 논조로 기사를 생산했다. 인터뷰, 리서치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하면서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먼저 결론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정보를 끼워 넣었다. C는 실망했지만 낙천적인 성격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그러던 어느 날, C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젊은 기자들에게 ‘협찬기사’ 지시가 내려온 것이다. 본래 협찬이란 ‘기업이 홍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만, 회사에서는 특정 기업의 제품 결함, 경영 비리 등을 ‘저격’하는 기사 작성을 요구했다. 이를 무기로 기업들에게 광고협찬을 강요하는 사실상 ‘협박’인 셈이다. C는 지시를 거부하고 사표를 냈다.

대학입학부터 10년 내내 기자합격만 꿈꾸던 C가 사표 쓸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기자에서 취준생으로 되돌아간 심정을 묻자, C는 물었던 담배를 내려놓고 말했다.

“솔직히 기자라는 직업에 정내미가 떨어졌어. 이제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할까봐.”

이야기를 마치며

절친한 친구들의 20대 스토리를 들어봤다. 꿈이란 원래 꽃처럼 피고 지는 것이고, 모든 꽃이 만개할 수 없듯 누군가의 꿈도 좌절되거나 혹은 성취될 것이다. 그들의 순수함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꺾이는 순간은 안타깝지만 결과를 떠나 꿈을 포기하지 않는 20대 인생은 아름답다. 

이제 겨우 스물아홉, 아직도 친구들에겐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용감한 도전을 계속해도 좋고, 지쳐서 아늑한 곳에 정착해도 좋다. 어떤 선택을 하든 곧 찾아올 그들의 30대를 응원할 뿐이다. 

이성훈

20대의 끝자락 남들은 언론고시에 매달릴 때, 미디어 스타트업에 도전하는 철없는 청년!

*이 글은 논객닷컴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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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20대 2017-06-21 15:12:58
왜 다들 자신이 바꾸어볼 생각은 안 하고 포기부터 했는지 안타깝습니다. 그토록 바랬던 꿈이었을텐데.. 물론 그러한 기업문화와 사내 분위기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앞으로도 기사다운 기사를 쓸 수 있는 언론사, 건설가들이 안전하게 사람답게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드는데 계속 노력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