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8-07-18 10:20 (수)
인터넷에도 청산해야 할 ‘적폐’ 있다
인터넷에도 청산해야 할 ‘적폐’ 있다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06.26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남발되는 임시조치…표현의 자유 어디로

[더피알=서영길 기자] 한 쪽의 일방적 주장만으로 온라인 게시글을 차단시킬 수 있는 ‘임시조치’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할 전망이다. 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가 ‘소통’에 방점을 둔만큼 온라인 소통의 동맥경화에 해당하는 임시조치도 청산해야 할 ‘적폐’로 간주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권리보호라는 가치가 첨예하게 대립되며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 A씨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 게시글이 블라인드(차단) 처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얼마 전 가족과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식당과 관련된 내용이 문제가 됐다. 당시 A씨는 음식을 놓고 몇 가지 불만을 얘기했는데, 직원이 자신을 갑질하는 손님으로 몰아간 것에 화가나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적은 글이었다. 무조건 비방한 것도 아니고 사실을 적은 글이 차단돼 황당했지만, 혹시 법적 소송으로 번질까 하는 마음에 그냥 넘어갔고 30일 뒤 해당 글은 아예 삭제됐다.

정보 내지는 공익 차원에서 써 놓은 글이 정당한 이유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경우다. A씨와 달리 자신의 글이 블라인드 처리됐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30일이 경과돼 부지불식 간 사라진 글들도 많다. 현대판 검열인 셈이다. 이런 사례는 온라인 게시판, 블로그, 카페 뿐 아니라 댓글까지 총 망라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인터넷 글로 인한 권리침해를 막아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임시조치가 과도하게 남용되며 벌어진 일이다.

일견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인터넷 사업자들의 이 같은 조치는 합법적 테두리에서 이뤄진다. 또 명예훼손이나 권리침해를 당했다고 임시조치를 요청한 개인이나 기업도 마찬가지다. 명문화된 법(정보통신망법 제44조 2)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해당 법조항을 요약하면 누구든 인터넷 게시물에 대해 권리침해를 주장해 삭제 요청을 하면, 포털 등 사이트 운영자들이 권리침해 여부를 판단해 즉각 게시물을 30일 이내로 임시조치 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이 법이 시행된 건 2007년부터다. 당시 인터넷 환경을 보면 1인 미디어가 급부상하고 콘텐츠 공유가 활발히 이뤄지던 시기다. 여기에 SNS 플랫폼도 활성화되며 개인과 개인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되던 때였다. 공유를 통한 빠른 확산과 더불어 불특정 다수에게 쉽게 메시지가 퍼지며 파급력을 가졌다. 오늘날 인터넷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현상의 초기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게시글이 확산력과 파급력을 갖게 되면서 그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고, 이 같은 인터넷의 특수성을 감안해 개인의 인격권이나 권리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지금의 임시조치 관련 법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선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터넷의 특수성 때문에 만들어진 법이 그 특수성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블로거가 자신의 글이 임시조치 됐다며 공개한 이미지.

이에 대해 ‘임시조치벙커’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는 허광준 오픈넷 정책실장은 “인터넷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데 관련법들은 현 시점에 맞지 않는 것들이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임시조치”라며 “이 조항은 세월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해 오히려 악용만 되고 있다. 법 자체의 정당성이 많이 희석된 상태”라고 평가했다. 허 실장은 “(임시조치가) 처음 취지처럼 사용되기 보다는 공인, 공직자, 일반기업, 정치인들이 자기의 불편한 내용을 막고 감추는 데 훨씬 많이 이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임시조치로 부당한 경우를 당했다고 토로하는 글은 온라인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심지어 온라인 평판관리라는 미명하에 보기 싫은 글을 지워주는 업체도 등장했다. 이들은 기업이나 공인에 대한 악성 비난이나 비판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관련 글 삭제를 대행한다. 주로 식품회사나 인터넷 홈쇼핑 업체 등 소비자와 직접 상대하는 기업에서 요청이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임시조치의 현황에 대해 박아란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도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정당한 비판까지 임시조치를 이용해 손쉽게 덮어버리는 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포털이 중심이 되는 국내 인터넷 환경에서 사실상 민간 기업에 ‘사적 검열’이라는 법적인 칼을 쥐어줬다는 점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포털 블라인드, 4년새 3배↑

임시조치는 악용되는 것 뿐 아니라 남발되는 것도 문제다. 이런 사실은 수치로 확인해 보면 그 심각성이 잘 드러난다.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임시조치 건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아래 표 참조)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서비스 사업자인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만 봐도 임시조치 총합 건수가 2010년 14만3000여건에서 2014년 45만4000여건으로 4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네이버는 2014년 한 해에만 30만건이 넘는 글에 임시조치를 단행했다. 하루에 1000건 가량의 포스팅이 사라진 셈인데, 이런 결과만을 봐도 임시조치가 얼마나 남발됐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인터넷 사업자들이 임시조치 요청이 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블라인드 처리를 해준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에서는 사업자가 1차적으로 이해당사자 간 권리침해 여부를 검토한 후 판단이 어려운 경우 임시조치를 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사업자 입장에선 자신들의 판단으로 양자 간 분쟁을 만드느니 차라리 기계적으로 임시조치 해 버리는 게 손쉽다. 이를 통해 면책법리를 적용받아 법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심리도 작용한다. 임시조치가 남발되는 만큼 블라인드 되는 글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료: 유승희 의원실

이와 관련해 지난 2015년 국정감사에서 유승희 의원은 “인터넷 임시조치 대부분은 권리침해가 불확실한 내용들인데 사업자들은 게시물 삭제 요청을 받으면 요청 건 100%를 30일간 임시조치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한 포털 관계자는 “임시조치 요청 건에 대해 모두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해당 자료에 대한 공개 요구엔 내부 방침이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뿐 아니라 모든 인터넷 사업자가 법적 절차에 따라 이 같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포털 사업자가 ‘법적 권한’을 갖고 임시조치를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민간 기업이기에 정당한 정보 공개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라는 점이다. 

소관 부처인 방통위도 “우리가 소관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임시조치와 관련해선 포털이 법적 권한을 갖고 있어 방통위가 이를 관리·감독 할 권리가 없다”며 “때문에 임시조치에 관해선 어떤 자료도 갖고 있지 않다”며 자신들의 법적 한계를 인정했다. 누군가는 법에 따라 집행을 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책임소재나 정보공개의 주체는 불분명하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양재규 변호사는 “법이 메우지 못한 사각지대”라고 표현했다. 양 변호사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포털도 임시조치라는 손쉬운 방법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방통위도 골치 아픈 일을 피하려는 문제가 발생했다”며 “결국은 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하루 빨리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승오 변호사도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임시조치 현황이나 건수 등에 대한 내용은 공공기관에서 자료를 갖고 정보공개 요구에 응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