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공공브랜딩에 또 경종 울려
폐기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공공브랜딩에 또 경종 울려
  • 안선혜 기자 (anneq@the-pr.co.kr)
  • 승인 2017.06.30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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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폐기 수순…전문가들 “상황적 특수성 이해…핵심 DNA 대표 언어는 필요”

[더피알=안선혜 기자] 국가브랜드 슬로건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가 론칭 1년여 만에 폐기됐다. 정해진 수순이라는 의견과 함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생기고 사라지는 공공브랜딩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교차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는 지난해 7월 발표 직후부터 프랑스 국가산업 슬로건을 표절했다는 논란을 겪었고, 이후 국정농단 관련 주요 인물들이 추진 과정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실상 고사 상태에 있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이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월 국가 전체 브랜드가 아닌 해외홍보 용도로만 사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새 정부 출범과 신임 장관 취임이 이뤄지면서 아예 사용 중단 결정이 내려졌다.

종로 한 건물에 걸려있던 국가 슬로건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뉴시스

문체부는 “새로운 국가브랜드 슬로건 개발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며 “국가브랜드는 슬로건이 아닌 한 국가의 국민성, 문화유적, 관광 기반시설(인프라), 정부의 대국민 정책 방향 등 총체적인 사회 문화적 가치에 의해 구축되는 만큼 우리 국민들의 생활문화를 전반적으로 향상하는 일에 정책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 29일 밝혔다.

앞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 검증 과정에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의 폐기를 시사한 바 있다. 표절 의혹 등 여러 논란으로 국민적 공감과 신뢰를 얻지 못해 국가이미지 제고라는 정책효과를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의 사업 종료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소 엇갈린다. 

새롭게 바뀐 정권에서 여러 문제가 불거졌던 슬로건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상황적 배경을 이해하는 측면도 있는 반면, 장기적 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국가브랜드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쉽게 뒤집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지원 제이앤브랜드 대표는 “전 정권에서 문제가 불거질 대로 불거져 폐기 직전까지 갔던 슬로건이기에 새 정부에서 이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상황적 배경을 이해한다”며 “최근에는 국가 브랜드뿐 아니라 기업도 하나의 키워드, 슬로건으로 대변할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브랜드 아이덴티티(Brand Identity)를 만드는 과정에서 키워드 도출을 위한 근거를 찾아내는 데 상당한 노력과 시간을 기울였다면, 최근에는 핵심 단어 도출 과정은 간단하게 진행하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의 실행에 훨씬 많은 공을 들인다는 설명이다.

이종혁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역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라는 마스터플랜을 보여주는 접근이 공공브랜드에 필요하다”며 “정부가 일방적으로 국가브랜드를 알리는 시대가 아닌, 시민들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전환되고 있다. 여기에 적합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방안을 만들었다면 아무리 촌스러워도 인정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오른쪽)이 지난해 7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새 국가브랜드 표절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럼에도 슬로건 자체를 없애버린 접근에 대해선 다소 아쉽다는 의견이다. 정 대표는 “여전히 언어로 표현되는 힘을 믿는다”며 “지금은 어떤 언어를 내세우더라도 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학습했기에 단순 슬로건을 내거는 활동은 하지 않겠지만, 핵심 DNA를 대표할 직관적 언어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같은 관점에서 이희복 상지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도 “국가브랜드를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소위 적폐에 대한 시정이나 수정은 필요하겠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사업은 백지화시키는 관행을 답습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논란이 있으니 슬로건 자체를 아예 안 쓰겠다는 건 편의주의적인 접근”이라며 “매번 쉽게 바꾸지 말고 제발 일정 기간이라도 좀 써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공공브랜드는 기본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기에 중장기적인 목적을 가져야 한다는 제언이다.

국가든 도시든 브랜딩의 기본 목적은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끌어올려 자신들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통해 자국 기업의 제품 혹은 특산물, 문화상품 등의 판매를 촉진시키려는 것이다. 관광객을 끌어들여 수입을 증대시키고 활발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도 지나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공공영역과 기업의 브랜딩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김유경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공공재로서의 사명감과 정체성을 갖췄을 때 공공브랜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일부 기업과 같은 얄팍한 상술을 도입하는 게 아니라 국가나 도시의 영역, 그리고 조직을 혁신하는 도구로 브랜드를 도입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국가브랜드를 (특정) 정권의 홍보 브랜드처럼 사용한다면 실패하게 된다”며 “실제 크리에이티브 자체는 국가브랜드 2.0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단어지만 창조라는 표현과 맞물리다보니 마치 정권브랜드처럼 비쳐지고 정치적 문제로 비화돼 이를 크게 만들어나가기 쉽지 않았던 것”이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단순 프로모션이나 광고를 통해 알리는 접근이 아닌 공공과 민간영역이 머리를 맞댄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강조한다.

김유경 교수는 “국가가 포괄적 노력을 한다면 민간영역은 정교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브랜드) 정체성이 살아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거버넌스(governance)”라 말했다.

스페인 빌바오시의 브랜드가 된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스페인 소도시인 빌바오의 경우 민간 부문에서 먼저 브랜드 작업을 추진하고 그후 관이 조직화한 도시브랜딩 사례다. 세계적인 미술관인 구겐하임 별관을 유치하면서 이를 랜드마크로 활용, 별다른 슬로건 없이 미술관 자체로 도시브랜딩을 추진했다.

브랜딩 과정에서 슬로건을 사용할 경우 마음대로 바꾸는 것은 지양된다. 적잖은 시간과 예산이 또다시 소요될뿐더러 정체성마저 상실할 수 있다. 피치 못해 브랜드를 교체하더라도 정체성은 이어갈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정지원 대표는 “홍콩은 ‘슈퍼시티’ ‘Asia’s world city’ 등으로 슬로건을 계속 교체했지만 홍콩다움을 잃지 않았고 이를 통해 관광객들의 기대감과 열망을 (계속)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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