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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많하않’ 속 할 말 하는 법영스타일로 재탄생하는 고요 속 외침, PR·마케팅 소재로도 톡톡히 활용

[더피알=조성미 기자] ‘할 말은 많으나 하지 않겠다’를 줄여 쓰는 ‘할많하않’. 신조어라고 하기에는 유사한 의미를 지닌 유구무언(有口無言)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그럼에도 요즘 젊은 세대는 새로운 표현을 만들면서까지 하고픈 말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어느 때보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자기표현에 능한 요즘 젊은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이야기 해봐야 감정싸움만 나고, 서로의 간극만을 확인하는 뻔한 결말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대신, 하고 싶은 말은 대나무숲을 통해 세상에 외친다. 답답하게 감춰둔 마음의 소리를 익명으로나마 내뱉고 감정의 응어리를 배출한다.

달라진 소통방식에 대해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섣불리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출했다가는 인터넷상에서 공론화가 되고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형태로 쉽게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결과”라고 바라봤다.

직접 대화가 아닌 온라인을 통해 이야기 하다보면 받아들이는 방식이 모두 다르고, 또 익명성 뒤에서 극단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이들도 있기 때문에 굳이 상처를 받아가면서 자기 의사를 밝히는 것을 회피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말 해봐야 무슨 소용 있나’란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태도가 ‘할많하않’을 확산시키고 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요즘 젊은 세대들의 자기표현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추구하는 개성을 표현함에 있어 상징적 의미나 감성을 담아내는 매개물이 활용되고 있다.

요즘 젊은층은 패션 아이템으로 자기목소리를 낸다. 위안부 팔찌(왼쪽)와 멸종위기동물 폰케이스. 출처: 트위터 @woohyeoking, 텐바이텐

가방에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 장식을 달고, 손목에는 위안부 할머니를 응원하는 팔찌를 착용한다. 멸종위기 동물을 지키자는 메시지가 담긴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고 파리테러가 발생했을 때는 애도의 마음을 담아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프랑스 국기 색상을 적용했다.

이에 대해 여준상 교수는 “광고도 마케팅도 대놓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넌지시 알리는 것이 각광받고 있다”며 “다양한 이야기에 자기표현이 묻히고 의미가 부각되는 것이 쉽지 않은 언어적 표현보다는 매개물 등에 자기 개성을 투영해 간접적으로 표출하는, 요즘 시대가 만들어낸 표현방식”이라고 말했다.

알 사람은 아는 시그널

간접 표현법은 소통의 주도권을 화자가 아닌 청자에게 넘겨준다는 점에서 해석의 여지가 많다. 화자는 상징물을 통해 자신을 투영할 뿐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 의미를 알아채는 것은 청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강치 넥타이만 해도 타이에 담긴 의미를 누군가가 눈치 챔으로써 가치가 살아난 케이스다. 강치 넥타이는 한 디자인 브랜드가 2012년 112주년 독도 주권 선포의 날을 기념해 ‘독도를 말하다’라는 주제로 만든 제품이다. 문 대통령은 이전에도 이 제품을 착장했지만, 김이수 신임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모습이 생중계되는 장면에서 새삼 눈에 띄어 비로소 그 안에 담긴 메시지가 널리 알려지게 됐다.

마치 암호처럼 아는 사람만 아는 의미를 지닌 것이 있는가하면, 다소 노골적인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상사를 향해 쏴주고픈 멘트나 차별에 대응하는 말 등 ‘을’이기에 시원하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매개물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말로 하지 못하는 직장인의 속내를 담은 굿즈. 직장인을 위한 방탄키트와 이런십육기가.

한국여성민우회는 직장인을 위한 방탄키트를 펀딩을 통해 제작했다. 모니터 메모보드, 마우스 패드, 오프너, 책상에 붙이기 좋은 엽서 등에 ‘외모? 왜? 뭐?’ ‘집에 가고 싶다.’ ‘회식하다 빡칠 때’ ‘나만힘든가?’ ‘팀장님그농담핵노잼’ 등의 메시지를 담았다. 이에 대해 한국여성민우회는 “속 시원한 멘트로 멋있게 받아치고 싶은데, 직접 말하자니 불편해질 것 같고, 자연스럽게 알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란 생각에 키트를 제작했다”며 “굿즈 소장 시, 따로 에너지를 쏟지 않고도 굿즈에 담긴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방출시킬 수 있다”고 활용법을 소개했다.

우아한형제들은 배민문방구를 통해 ‘이런십육기가’란 문구가 적힌 USB 메모리와 ‘이끌든지 따르든지 비키든지’란 수첩을 판매하고 있다. 속마음을 이 문구에 담아 전달했을 때, 눈치 빠른 누군가가 ‘나한테 하는 소리야?’라고 태클을 걸더라도 그냥 유머라고 넘길 수 있다. 이와 반대로 명확하게 주어를 명시해 노골적으로 아부 의사를 전달하는 ‘사장님이 최고예요’ ‘교수님 사랑해요’ 등의 제품도 마련해 두고 있다.

그 외 얼굴을 맞대고는 차마 못할 직장인의 마음을 담은 티셔츠 등도 꾸준히 인기를 끈다. 무조건 땡큐를 부르는 ‘월급인상’과 정시퇴근을 기원하는 ‘칼퇴’가 적힌 굿즈는 일상 속 소심한 저항을 가능하게 해준다.

기업이 대신하는 을의 사이다

간접화법을 통한 이같은 소소한 항변은 스케일을 키워 기업PR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주로 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식이다. 서비스 업종을 중심으로 캠페인을 통해 소비자들과 감정적인 교류를 만드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알바천국은 문재인 대통령 취임에 맞춰 새롭고 희망찬 대한민국을 맞이하길 바라며 ‘알바 하기 좋은 나라, 알바선진국으로 갑시다!’를 슬로건으로 한 ‘알바선진국’ 캠페인을 선보였다. 

이를 위해 청년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알바생들이 존중 받고 일할 수 있는 정책 수립 및 사회 인식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과 동명인 알바생 문재인 양과 대표 직군의 알바복을 입은 청년 6인이 광화문1번가에 ‘알바하기 좋은 나라를 위한 대국민 의견서’를 전달하기도 했다.

진에어는 올바른 휴가 문화 정착을 위한 ‘바른휴가운동’ 캠페인을 통해 휴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직장인의 고충을 살핀다. 자유롭게 휴가갈 수 있는 문화를 조성코자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휴가를 편안하게 다녀오자’란 주제로 직장 내 휴가 관련 다양한 상황들을 각색한 캠페인 영상을 선보이고, 웹툰과 프로모션 등 휴가 사용을 촉구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직장인 휴가 사용 장려는 과거에도 기업 캠페인 소재로 종종 활용돼왔다. 그만큼 1600만 직장인들의 ‘격공’을 부르는 키워드인 것. 실제 2000년대 초반 현대카드가 광고카피로 내세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는 현재까지도 직장생활 격언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익스피디아 역시 지난 2015년 ‘휴가 다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이처럼 기업이 소비자의 입이 되는 것에 대해 양재호 동아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지의 기초적 모델을 들어 설명했다. 인지의 기초적 모델은 소비자가 ‘인지-태도-행동’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으로, 이제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인해 정보의 유입 경로가 많아지며 ‘호감’과 ‘옹호’의 과정이 추가됐다고 설명한다.

양재호 교수는 “브랜드가 자신(기업)의 얘기가 아닌 내(고객) 얘기를 해줌으로써 표적고객을 터치해 호감을 얻고 감정적 옹호를 이끌어 내는 효과가 있다”며 “감성을 터치함으로써 브랜드 친숙도를 높이고 고객과 브랜드가 연결되는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준상 교수는 “요즘 사이다(돌직구 화법)가 각광받는 것은 억눌린 감정은 있지만 자기 자신이 직접 나타내기엔 부담이 있으니 누군가 대신 표현해주길 바라는 경향이 표출되는 것”이라며 “(사이다식 이야기가 있는) 캠페인을 통해 기업들은 자사 브랜드를 살리면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의 이미지와 인지도를 확보하고, 소비자는 해방감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며 양쪽의 니즈가 서로 맞닿은 결과라고 풀이했다.

조성미 기자  dazzling@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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