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리어드 앙상블 음악극
힐리어드 앙상블 음악극
  • 강주영 기자 (kjyoung@the-pr.co.kr)
  • 승인 2011.03.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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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 잔잔한 분위기 속 강렬함…괴벨스의 ‘신선한 충격’

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연극인지 뮤지컬인지 콘서트인지 알 수 없는 새로운 개념의 공연이 펼쳐진다. 제목 또한 의미심장하다.
음악극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I went to the house, but did not enter)’.
2008년 영국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초연한 이 작품이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뚜렷한 줄거리도,
특별한 내용도 없다. 단조로운 무대 위 환상적인 아카펠라만 연주될 뿐. 감히 ‘경험한 만큼,
상상에 따라 보이고 들리고 느낄 수 있는 공연’ 이란 설명을 붙여본다.

강주영 기자 kjyoung@the-pr.co.kr


독일 인기 작곡가 겸 연출가 ‘하이너 괴벨스’와 영국 유명 남성 보컬 콰르텟 ‘힐리어드 앙상블’이 만났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의 무대에서다. 괴벨스는 특정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무대미학으로 유럽 공연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인물. 내놓는 작품마다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주목을 받곤 한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라고 다르진 않다. 이 작품은 괴벨스의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줄거리나 내용이 따로 없다. 무대는 작은 살롱에서 벽돌로 된 거대한 2층 집, 쓸쓸한 호텔 방으로 이어진다. 이 세 장면이 소름 돋을 정도로 고요하면서도 긴장감 있게 흘러간다.

눈과 귀를 열어라!

눈과 귀를 여는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에 빠져들 것이다. 희미해 잔잔하기만 한 분위기가 이상하게도 강렬하게 다가온다. 괴벨스 연출에 힐리어드 앙상블 목소리의 조합은 예술 그 자체가 아닐까. 힐리어드 앙상블은 중세와 현대에 집중한 레퍼토리로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4인조 보컬 그룹. 이들은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무대에서 시를 읊거나 반주 없이 아카펠라로 노래한다. 낯선 분위기에서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는 관객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하다. 105분이 쉴 새 없이 지나간다. 세련된 무대 이미지를 신비롭게 오가는 괴벨스 특유의 비범한 연출과 움직이지 않는 듯 움직이며 차분하게 노래하는 힐리어드 앙상블의 연주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이 작품은 관객들의 공연에 대한 고정관념을 모두 깨부순다. 어디서도 쉽게 마주칠 수 없는 충격적인 무대가 관객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3년 전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 첫 선을 보인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는 원래 힐리어드 앙상블 연주회 프로그램의 일부로 제작되는 데 불과했다. 20분짜리 곡을 만들어달라는 힐리어드 앙상블 측의 요청에 괴벨스가 1시간 45분 분량의 정규 공연 길이의 작품을 내놓고 말았다. 괴벨스는 오페라 가수와는 전혀 다른 발성을 가진 힐리어드의 독특한 음색에 매료돼 20세기 초반 위기의 자아상을 그린 세 편의 시를 골라 ‘혁신’이라는 단어로 요약될 수 있는 잔잔하고 사색적인 작품을 만들어냈다. T.S.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연가(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1917)’와 모리스 블랑쇼의 ‘낮의 광기(La folie du Jour, 1949)’, 사무엘 베케트의 ‘워스트워드 호(Worstward Ho, 1982)’로 말이다.

아시아 최초 한국 상륙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는 에든버러 페스티벌 초연 이후 런던 바비칸 센터, 독일 베를린 페스티벌, 비엔나 페스티벌 주간, 홀랜드 페스티벌, 파리 가을 페스티벌 등 유럽 유수 페스티벌에서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작품. 오는 3월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서울과 통영(‘2011 통영국제음악제’ 폐막작 선정)에서 그 정체(?)를 드러낸다. 힐리어드 앙상블의 내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들은 노르웨이 출신 재즈 색소포니스트 얀 가바렉과 2002년 ‘오피시움’을 공연한 뒤 9년 만에 한국관객들과 대면한다. 괴벨스 작품 역시 2007년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선보였던 ‘하시리가키’ 이후 두 번째로 국내에 소개된다. ‘그 집에 갔지만, 들어가진 않았다’의 서울 공연은 3월 26일과 27일 오후 7시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펼쳐진다.

문의 및 예매 02-2005-0114.

[힐리어드 앙상블은...]

힐리어드 앙상블(The Hilliard Ensemble)은 영국 엘리자베스 시대 채색화가인 니콜러스 힐리어드(Nicolas Hilliard, 1547~1619)의 이름을 따 1974년 창단됐다. 이들의 레퍼토리 중 상당 부분이 니콜러스 힐리어드가 활동하던 시대에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이라는 점과 관계있다. 현 멤버는 데이비드 제임스(카운터테너), 로저스 코비-크럼프(테너), 스티븐 해롤드(테너), 고든 존스(바리톤). 힐리어드 앙상블은 소규모 성악 그룹 가운데 세계 정상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들의 독특한 스타일과 정교한 음악성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레퍼토리에서는 물론, 아르보 패르트, 존 케이지, 기야 칸첼리, 하인츠 홀리거 등 유명 작곡가들이 이들에게 헌정한 레퍼토리에서도 진하게 묻어난다.

[하이너 괴벨스는...]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는 유럽 공연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로 꼽히는 독일 대표 연출가 겸 작곡가다. 1952년 노이슈타트 바인슈트라세에서 태어나 1972년부터 지금까지 프랑크푸르트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회학과 음악을 동시에 공부한 괴벨스는 1970년대 중반 ‘급진 좌익 브라스 밴드(Radical Left Wind Orchestra)’를 창단, 음악을 통해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하르스, 크리스 커틀러, 크리스토프 안더스와 함께 아방가르드 록 그룹 ‘카시버(Cassiber, 1982-1992)’를 결성해 유럽과 아시아, 북미 등지에서 순회공연을 펼쳤다. 음악극을 연출하고 영화음악과 발레음악 등을 작곡하며 자신만의 연출 기법과 작곡법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1988년 이후 앙상블 모데른과 앵테르콩탱포랭을 위해 실내악을 작곡해왔으며, 2001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됐다. 2002년 첫 저서로 ‘무대화로서의 작곡(Komposition als Inszenierung, Composition as Staging)’ 을 발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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