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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이 주는 불안감
유니폼이 주는 불안감
  • 신명관 silbsea@naver.com
  • 승인 2017.07.26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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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s 스토리] 우리는 왜 서비스를 ‘상납’해야 하는가

3~4년 전 알바를 하던 때였다. 고등학교 동창 하나가 뷔페에서 생일파티를 했다. 친구들과 신나게 먹은 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셀프바 가장 뒤쪽에 있던 냉동고로 가 딸기맛을 푸고 있는데, 능숙한 동작에 나를 직원으로 알았는지 한 아저씨가 자기 것도 퍼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네 알겠습니다~’라는 서비스 마인드로 대답한 뒤 아저씨의 손에 아이스크림 그릇을 쥐어줬다. 그것도 퍼달라는 초코맛으로. 스스로가 어처구니없어서 헛웃음을 지었었다.

유니폼의 무게가 무의식적 행동으로 나타나곤 한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얘기하자 서비스직 관련 아르바이트를 해본 애들은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털어놨다. 영화관 알바생이던 애는 낯선 사람의 좌석을 안내해줬고, 고깃집 반년차였던 동기는 알바생이 바빠보이자 자기가 알아서 앞접시와 수저를 챙겼다.

카페 알바생은 트레이에 올려져있는 다 먹은 컵과 쓰레기들을 알바생들이 가장 처리하게 좋게 정리할 줄 알았다. 직원이 포인트카드와 현금영수증을 묻지 않길래 자기가 알아서 처리해 달라고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게 웃기기도 했고, 우리 모두가 어딘가에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는 근로자라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이라 서럽기도 했다.

며칠 전 우동집을 갔다. 짜장면을 시켰지만 볶아놓은 춘장이 다 떨어져버렸다 해서 어쩔 수 없이 돈까스를 시킨 뒤 셀프바로 되어있던 밑반찬 코너에서 겉절이를 집으려던 참이었다. 앞에 은행인지 병원인지 혹은 여행사인지 남색 유니폼을 입은 여자 한 분이 먼저 김치를 집고 있었다. 포장하려던 생각인 듯했다. 손에는 앞접시가 아닌 매장에 있던 작은 플라스틱 통이 들려 있었다.

거기서 상황이 벌어졌다. 여자는 내가 다가가자 순간 몸을 움찔, 했다. 내 덩치나 인상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했지만, 그녀는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였다. 내가 앞접시를 가져가려고 그녀의 왼편으로 가자 김치를 집던 여자의 몸이 김치를 집던 그대로 주춤거리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여자는 김치를 다 담자 플라스틱 뚜껑을 덮은 뒤에 내게 자리를 내주며 자신의 자리로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그녀는 나를 무서워하거나 경계하는 게 아니었다. 그건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과도한 서비스 마인드였다. 잠시후에 유부가 올려진 우동국물과 함께 나온 돈까스를 먹으면서 생각해야 했다. 그녀나 나나 서로 마주보지 않았기에 얼굴도 몰랐지만, 안타깝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 했다.

나는 밥을 먹으려고 우동집에 들어왔다. 그녀도 밥을 포장하려고 우동집에 들어왔다. 커다란 대로에 놓여져있는 우동집에서 그저 똑같은 손님이었는데 어쩌다가 그녀는 밥을 먹으러 온 상황에서까지 나를 예민하게 신경 쓴 걸까. 나는 그녀의 고객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예의야 지켜야 할 지 몰라도, 그저 김치를 집으러 온 배가 출출한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근처에 있던 말던 쑥 쑥 김치를 집은 뒤 편하게 가져가도 됐는데 말이다.

예전에 TV프로그램에서 실험을 한 적이 있다. 한 무리의 남성들에게 한번은 군인복을, 한 번은 경찰복을 입히고 도시락을 먹게 했다. 군인복을 입었을 때는 다 먹고 나서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던 도시락 통들이, 경찰복을 입자 질서정연하게 정리돼 박스 한 쪽에 놓였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옷이 먼저가 되는 아이러니한 세상.

죄수복과 간수복을 입히고 역할극을 했던 해외의 실험 사례 또한 유명하다. 시간이 지나자 간수복을 입은 사람들은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을 폭력으로 제압하는 데 서슴없어졌고,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은 그런 간수복을 입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아무리 옷이 날개라지만 사람이 먼저가 아니라 입은 옷이 먼저가 되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EBS에서 평상복과 양복을 번갈아 입은 남성의 평점이 하늘과 땅차이인 것처럼. 나는 그녀의 유니폼이, 불필요할 정도로 남을 신경쓰게 만든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치재에게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이라고 말한다. 가볍게는 ‘무더운 여름, 네가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잇템!’, 무겁게는 ‘자연스러운 품격을 위하여, ○○○(상품명)’이라는 미명 하에.

하지만 실상 사치재는 ‘필수적이지 않아’서 사치재다. 시계, 목걸이, 반지나 비싼 옷, 가방, 신발들... 정작 없다고 해도 일상생활에 무리가 간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광고가 저러니 사야만 할 것 같고, 사야만 자신의 어떤 삶의 가치가 올라갈 것 같은 물건들.

물론 사치는 인간이 가진 기본 심리 중 하나기에 완전히 부정할 수 없다. 태고적부터 인간은 어떠한 상징물이나 의상으로 지위와 계급을 정하지 않았나. 고대 이집트의 칼라시리스부터, 조선 왕의 용포까지. 나도 만년필만큼은 환장하니까. 하지만 회사 유니폼을 입으며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슬픈 일이다. 하물며 동네 우동집인데…

우동집에서 김치를 담고 있던 여자에게 내가 함부로 동정을 건넬 권리는 없다. 그녀가 원래 그렇게 행동하는 성격일지도 모르고, 내 인기척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경계심이 발동한 걸지도 모른다. 내 덩치가 작은 편도 아니니까.

하지만 하얀 조리복을 입고 일했던 내가, 카페 유니폼을 입던 후배가, 영화관 직원 명찰을 달던 동기가, 고깃집에서 빨간 앞치마를 입고 밑반찬을 나르는 동기가 생각난 그날, 나는 노동자가 입는 복장이 마치 평범한 사람에게까지 눈치를 보게 만드는 족쇄처럼 느껴졌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닌 ‘상납’해야만 하는 상징물이란 인상을 지우기 힘들었다.

세상엔 진상들이 많아졌다. 억지스러운 꼬투리 하나를 잡아서 직원들을 감봉시키고 해고시키는 이른바 ‘또라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피해를 입기 싫어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은 더 조심스러워진 걸지도 모른다. 겉으로 봐서는 누가 진상인지 모르니 몸을 사리는 게 더 좋은 판단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이것도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는 고객들과, 과도한 서비스를 제공하라고 지시하는 기업이 비판받아야 할 문제인데, 왜 ‘제복 입은 사람들’이 피해를 받아야 하는 할까.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이 직장인을 발견하고 ‘계급이 양반이냐 천민이냐’라고 물었다. 직장인은 ‘노비요’라고 대답해 웃음을 줬다. 그런데 마냥 웃울 수 없는 것이 말 속에 뼈가 있기 때문이다. 시대는 갈수록 발전하는데 스스로를 찾고 소중히 하는 과정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은 요즘이다. 스스로를 노예화시키고 있다는 한병철의 말이 심화되지 않길 바랄 따름이다.

우리들은 의상만으로 남에 대한 불안함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를 깎아먹는 불필요한 배려까지 준 건 아닐까 생각해보자. 내 옷깃 속에다가, 얼마만큼의 쓸데없는 불안함까지 품고 있었는지 생각해보자.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기 이전에, 온전히 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는 ‘당연함’을 생각하자.

모두가 결핍을 채울 수 있는 자신의 목소리를 찾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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