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페이스북을 했다면…
소크라테스가 페이스북을 했다면…
  • 윤성학 (admin@the-pr.co.kr)
  • 승인 2011.03.1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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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학의 ‘PR人 책꽂이’

윤성학의 ‘PR人 책꽂이’를 시작합니다. 이 칼럼은 누구를 가르치거나 교훈을 주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PR을 둘러싼 현상들을 좋은 문장과 함께, 다같이 생각해 보는 코너입니다. 지금, 여기, 우리보다 먼저 인간에 대해, 자연에 대해, 인간과 인간이 모인 사회에 대해 고민했던 대선배들의 책장을 들춰봅니다. 그들의 서가에서 오늘 PR인의 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오래된 책을 뽑아들었습니다. ‘플라톤의 대화’, 1981년에 종로서적이 출간한 책입니다. 종로서적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전통있는 서점이었지만 2002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거의 잊혀졌지요. 종로서적이 부도로 폐점한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 거기서 책 두권을 훔쳤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 생각으로 무척이나 큰 부채감을 느꼈습니다.

종로서적이 파산한 이유를 찾아보니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같은 강력한 경쟁자에게 시장을 조금씩 빼앗겼고 단순 서점이 아닌 문화공간으로 변신하는 데 더뎠으며 온라인 서점 트렌드에 부응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을 살펴보는 가운데 저는 ‘대화’라는 키워드를 생각해 낼 수 있었습니다. 즉 사회의 변화를 읽는 데 서툴렀고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 플라톤이 현명한 철학자인 이유

‘플라톤의 대화’는 플라톤이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제자나 친구들과 나눈 대화, 법정 진술 등을 기록해 엮은 책입니다. <에우튀프론>은 ‘경건에 대하여’,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법정 진술, <크리톤>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파이돈>은 ‘영혼에 대하여’, <향연>은 ‘사랑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청년들을 부패시키고 나라에서 신봉하는 신을 믿지 않는다는 혐의로 고소된 소크라테스가 500명 배심원들 앞에서 진술하는 내용인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그는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대화를 시도합니다.

“신탁의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 저는 그것을 알고 있는 듯 싶은 모든 사람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중략) 저는 그들이 가장 힘들여 완성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을 들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저는 그들로부터 무엇인가 배우려 한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추구하는 방법으로서 ‘대화’를 택했습니다. 대화를 통해 자신이 모르는 것을 깨닫고 틀린 것을 바로잡자는 의도였지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 “너 자신을 알라”는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모르고 있으면서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모르고 또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라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zizek)은 이렇게 말합니다. “알려진 알려진 것들(known knows)이 있다. 이는 우리가 알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known unknowns)이 있다. 알지 못함을 알고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unknown unknowns)이 있다. 즉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 대화란 무엇인가

아시다시피 PR에는 여러 장르가 있습니다. 소비자, 지역, 미디어, 전문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관계를 맺거나 그들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몇몇 PR서적과 소셜네트워크 관련 책들을 들춰보면서 성공적인 PR은 대부분 대화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PR의 핵심이 대화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스트래티지 샐러드 정용민 대표도 말했듯이 “커뮤니케이션은 수단이 아니라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대화는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인문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선생께서는 인간에 대해 배타적 ‘존재성’이라는 근대적 관점을 버리고 그것을 벗어난 ‘관계성’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인간이라는 말은 사람(人)과 사람의 사이(間)라는 것입니다. 한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나 사이의 공간, 즉 관계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죠.

대화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봅니다. 대화는 독백(獨白)과 달리 자신과 관계를 맺은 타인과 나누는 말들의 복합체입니다. 타인과 나는 일정한 공간을 형성하면서 관계를 맺습니다. 그곳이 바로 PR이 바라보는, 바라봐야 하는 공간인 것입니다.

# 소크라테스와 소셜네트워크

다시 소크라테스로 돌아갑니다. 이 책의 번역자는 소크라테스가 “무엇보다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자기 자신의 정신을 더욱 훌륭한 것이 되게 하며, 지혜를 사랑하여 자기 자신과 남을 검토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임을 역설하고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자신과 남을 검토한다? 소크라테스는 그 방법으로 대화를 선택했습니다. 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모자람을 성찰하고 타인에게 영향력을 미쳤던 것이죠. 그렇게 세상을 조금씩 더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긍정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만약 PR을 둘러싸고 있는 100가지 요소들이 있다면, 그들 중에 덜 중요한 것들을 차례로 덜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제일 마지막에 남는 것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PR은 대화를 기본 철학으로, 또 기본 매개체로 하는 생명체니까요. 소크라테스가 그러했듯이 대화를 통해 세상은 좀 더 세련되고 아름다운 곳으로 변해갈 것이라 믿습니다. 요즘 PR계의 이슈는 단연 SNS인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가 트위터를 했거나 페이스북으로 PR을 실행했다면 진정한 선수가 되었을 겁니다. SNS의 핵심 역시 ‘대화’이고 대화를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니까요.

전통적인 PR이든, SNS든, 광고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을 대화로 채워가는 노력, 그리고 대화를 기획하는 사람. 그리하여 그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가꾸고자 하는 시도들. 그것이 PR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책읽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윤 성 학
농심 홍보팀 과장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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