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f-the-Record’
‘Off-the-Record’
  • 문기환 (admin@the-pr.co.kr)
  • 승인 2011.03.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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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환의 홍보 한마디

국가적으로 중대한 특히 외교나 국방 관련 사안이 발생하면 국민들의 관심이 크고, 이를 취재하려는 언론사간 경쟁도 치열해진다. 그러나 그 내용이 미리 공개되거나 추측에 의해 잘못된 보도가 나갈 경우, 국가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를 대비해 정부 당국자들이 이용하는 유용한 방법이 있다. 즉, 언론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후 ‘절대 보도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상세히 설명을 하고 또 언론사는 약속을 지켜 이를 기사화하지 않는 소위 ‘오프 더 레코드(off-the-record, 비보도 전제)’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본래의 취지를 무시한 채 이를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경우가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아무리 홍보팀에서 사전에 주의를 주어도 CEO들은 평소 친한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 등 분위기가 화기애애해 지면 긴장감을 풀고 “이건 오프 더 레코드 인데”하며 중요한 얘기를 하곤 해 배석한 홍보맨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이 경우 기자 한 명을 상대할 때에는 홍보맨의 간곡한 요청도 있겠지만, 그 약속이 대체로 잘 지켜진다. 비보도 약속을 깨고 그 얘기를 기사화 한다면 다시는 그 기자와 편안한 자리를 갖고자 하는 CEO는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가 두 사람 이상 있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두 사람 이상이면 못 믿는다는 말이 아니다. 기자들과의 평소 친근도와 신뢰도와도 전혀 상관이 없다. 이는 언론사 시스템을 알게 되면 이해가 쉬워진다.

기자 아닌 데스크 판단에 따라…

보통 기자들은 자신이 담당하는 업체나 출입하는 조직의 주요 인사들과 공식적, 비공식적 만남에서 듣게 된 내용 중 기사거리 될 만한 것들을 반드시 그날 저녁 데스크(책임자)에게 보고한다. 그 자리에서 기사화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프 더 레코드’를 부탁했다고 해도 데스크 판단이 국민의 알 권리가 우선이라면 이 약속은 어겨도 된다는 말이다.

다음은 필자가 ‘오프 더 레코드’를 성공적으로 성사시킨 에피소드다. 1990년대 (주)대우 홍보팀장으로 있을 때였다. 연말이고 해서 평소 종합상사를 출입하는 기자 서너 명을 사장과의 저녁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다. 별 다른 이슈 없이 만난 자리였기 때문에 “한해 고생 많았고 새해에도 더욱 열심히 하자”는 덕담이 이어졌다. 편안한 자리인지라 술도 몇 순배 돌아갔을 때였다.

갑자기 사장이 비밀리에 진행중인 해외 비즈니스 프로젝트 하나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아직 협약서 단계인 그 프로젝트가 외국회사와 경합중인 것으로 최종 계약체결 이전에 발표하면 막대한 손해배상을 하거나 심지어 협약이 파기될 수 있는 조건이 붙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즉각, 방금 전 사장 말씀을 ‘오프 더 레코드’로 해줄 것을 기자들에게 요청했고, 그제서야 사장도 미안해하며 보도는 한 달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일순 어색하던 분위기는 다행히 기자들 대부분이 잘 알겠다는 반응을 보여 곧 원상회복이 됐다. 저녁 식사는 무난히 끝났고 사장이 먼저 그 장소를 떠났다. 그러나 아무래도 안심이 안된 필자는 커피 한잔 하자며 기자들을 붙잡았다. 그리고 만일 그 프로젝트가 기사화되면, 계약실패는 물론 경쟁중인 외국기업에게 빼앗길 수도 있으니, 제발 ‘오프 더 레코드’해 줄 것을 다시 요청했다.

그러자 기자들은 필자에게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후 즉석에서 회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후 한 기자가 내게 와서 하는 말. “이번 프로젝트가 보도될 경우, 회사는 물론 나라에도 이익이 될 것이 없으므로, 국민의 알 권리 보다 우선한다고 모두 동의를 했다. 이 얘기는 데스크에게도 보고하지 말자고 합의했다.” 약 2개월 후, 프로젝트의 최종계약이 성공적으로 체결됐다.

 

문기환 khmoon@saturnpr.co.kr

새턴PR컨설팅 대표
前 (주)대우 홍보팀장 (1990~1999)
前 이랜드그룹 홍보총괄 상무 (2000~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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