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도 스타가 되는 지름길 ‘TV’
일반인도 스타가 되는 지름길 ‘TV’
  • 염지은 기자 (senajy7@the-pr.co.kr)
  • 승인 2011.03.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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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강연 선순환하며 명사반열에

1960년 미국 대선 당시 TV토론회는 존 F. 케네디 후보가 대선판도를 뒤집으며 승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민들은 토론 당일 건강이 안 좋아 보이고 카메라를 응시하지 않았던 닉슨 대신 캘리포니아에서 막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 검게 그을린 건강한 모습으로 힘있게 말하던 케네디를 선택했다.

올드미디어로 불리지만 TV는 현재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PR수단이다. 인터넷 매체와 SNS의 파급력이 아무리 커졌다 해도 TV의 영향력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TV는 최근 들어 인터넷TV, 3DTV, 스마트TV로 진화하며 가장 강력한 PR미디어로서의 위상을 놓지 않고 있다. 공중파, 케이블, 종편 등 국내 TV방송 채널도 수백개에 달하며 더 많은 채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개인이 TV를 통해 PR할 수 있는 길도 더 많아졌다.

염지은 기자 senajy7@the-pr.co.kr


TV방송 출연으로 인생역전

방송을 통해 인생역전을 이룬 최고의 스타는 지난해 10월 뮤직방송 케이블 M-net의 스타발굴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 시즌 2’를 통해 우승을 차지한 환풍기 수리공 ‘허각’이다. 케이블TV 역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이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허각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중졸학력이 전부인 그의 성공은 자신을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었던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프로그램 TOP 4로 꼽한 존박, 장재인, 강승윤 등도 정식 데뷔 전 CF 계약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를 얻으며 자기PR에 성공한 주인공들이다.

자기PR에 성공한 또 다른 대표적인 인물은 음악감독 박칼린이다. 지난해 KBS 2TV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을 통해 ‘칼마에 신드롬’을 일으켰다. 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는 리더십의 대명사가 됐다. 특히 그녀가 TV를 통해 얻은 유명세는 뮤지컬을 비롯해 문화계 전반에서 신드롬을 재생산하고 있다. 협력연출을 맡은 뮤지컬 ‘아이다’는 박칼린 효과로 흥행을 누리고 있고 지난해 11월 출간한 에세이집 ‘그냥’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근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모은 기획앨범 ‘칼린 셀렉츠’를 출시하기도 했다. 신한은행 CF 모델로도 활약 중인 그녀는 기업들이 섭외하고 싶은 CF모델 1순위로 꼽힌다.

무명인에서 스타, CEO, 정치인으로~

평범했던 독일 출신의 귀화 한국인 이참은 독일 이씨 시조로 한국을 위해 일하며 각종 방송에서 이름을 알리다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발탁됐다. 이참 사장은 지난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한 이후 공중파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과 드라마 출연으로 널리 얼굴을 알렸다. KTV에선 자신의 이름을 건 ‘이참의 업그레이드 코리아’에서 관광 발전과 한식의 세계화 등의 아이템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이참’ 이라는 브랜드를 관광상품으로 만들었다.

일반인이 자신을 PR해 스타가 되는 대표적인 프로그램 SBS TV의 ‘놀라운 대회 스타킹’ 최고의 스타는 트레이너 숀리(본명 이승환)다. 지난해 초부터 진행된 다이어트 프로젝트 ‘다이어트킹’의 트레이너로 참여한 숀리는 남성미 넘치는 매력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방송이 나간 뒤 숀리의 피트니스센터는 예약이 불티가 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그의 이름을 건 다이어트 식품도 출시됐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 예은이, 노래하는 가난한 필리핀 소녀 펨핀코, 꽃게잡이 어부 남현봉, 말썽꾼 고교생 김호중, 야식배달부 김승일, 수족관 기사 김태희씨 등도 스타킹을 통한 자기PR로 인생항로가 바뀐 무명인들이었다.

20대에 100억을 번 슈퍼개미 복재성씨는 심심해서 시작한 증권까페와 증권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타며 증권투자자문사 CEO가 됐다. 그는 지금 해외 투기자본에 맞설 인재 육성을 위해 세계 최초의 증권 대학설립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변호사이자 방송인, 증권전문가로 낯익은 고승덕 변호사는 TV프로그램 출연으로 자신을 알리며 국회의원에도 도전, 성공했다. 고시 3관왕, 스타 변호사 펀드매니저 등 팔방미인으로 이미 이름을 알린 그는 SBS 솔로몬의 선택에 2002년부터 5년여간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오너들도 자기 PR하고 기업이미지 ↑

CEO들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알리며 기업 이미지와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있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8년 직접 소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북한으로 가는 모습을 TV를 통해 전 세계에 보여주며 현대그룹의 명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역대 CEO 중 최고의 홍보마인드를 갖춘 오너로 꼽힌다. 애플 스티븐 잡스, 페이스북 마크 주커버그 등도 TV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기업이념과 철학을 대중들에게 전하며 스타CEO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견 식품회사인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CF에 출연해 화제가 되며 회사 브랜드 인지도까지 높여놓은 케이스. 그는 지난해 CF에 출연해 자사 제품을 선전하며 “정말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라는 유행어를 탄생시켜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CF출연 후 그를 흉내내 각종 패러디까지 등장하며 천호식품 매출은 두배 가까이 상승했다. 현재 자신이 직접 출연하는 새로운 광고 촬영을 진행 중이다.

[TV 개인PR人① 주목받는 CEO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홈쇼핑 TV판매 적중…

‘한경희’ 브랜드 파워 구축”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는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화해 신뢰와 파워를 구축하고 있다. 그녀의 사업 성공 배경은 주부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제품력과 유통채널로 TV홈쇼핑을 택한 점, 그리고 ‘한경희’라는 브랜드다. 1999년 회사 설립 당시 사명은 한경희생활과학이 아니었다. ‘한영전기’에서 ‘한영베스트’로 사명이 바뀌었으며 2006년 지금의 ‘한경희생활과학’으로 변경했다. ‘한경희’ 라는 이름으로 제품에 대한 자신감, 책임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여성의 입장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여성을 위한 제품이라는 핵심 요소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전략은 주효해 좀 더 빠르게 고객들의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교육부(현재의 교육과학기술부) 사무관으로 재직하던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는 집 안 청소를 하다가 ‘걸레질 좀 편하게 할 수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던 중 아이디어가 떠올라 창업했다.

3년간 제품 개발에 매달린 끝에 내놓은 서서 청소할 수 있는 스팀청소기는 2005년 홈쇼핑을 통해 선보인 후 지난 해까지 1000만대가 팔려나가는 국민 브랜드가 됐다. 그녀가 유통채널로 TV홈쇼핑을 선택한 판단은 적중했다. 고생 끝에 개발한 ‘스팀청소기’가 자금력 부족과 인지도가 낮아 홍보와 오프라인 매장입점이 힘들자 그녀는 TV홈쇼핑을 주목했다. 주 시청자가 주부층으로 스팀청소기 구매 타깃과 일치하고 TV 광고처럼 방송에서 제품을 상세하게 소개해 광고뿐 아니라 입소문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자본금 3억 원으로 1999년 출발한 이 회사는 이제 지난해 매출 1600억원 규모의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015년 매출 7000억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미국, 중국, 유럽, 중동, 아시아 등 해외 진출에도 성공하고 있으며 생활가전에서 화장품, 주방용품 등으로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교육부 근무 전 스위스 로잔의 국제올림픽위원회 본부에서 홍보 업무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홍보의 중요성을 잘 아는 CEO다. 회사 창립 초기부터 홍보 대행사를 통해 홍보를 진행했고 홍보를 더욱 강화하기 위해 2008년부터 인하우스 체제로 전환,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녀는 “소비자와의 신뢰 관계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한다고 본다. 신뢰 받지 못하는 기업은 그 어떤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선보인다 할지라도 소비자들에게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다”며 “PR은 소비자들과 신뢰 관계를 맺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이기에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주부 마음 읽은 것이 성공 요인…경청이 홍보 노하우”

홍보 노하우 꼭 한 가지를 얘기해달라는 질문에 그녀는 ‘경청의 자세’ 라고 답했다. “기업과 사람 또는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맺게끔 하는 것이 홍보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진실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의 얘기를 귀담아 듣는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비자, 미디어, 내부 직원, 협력 업체 등 누가 됐던 상대방의 메시지를 먼저 듣고자 노력한다. 듣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녀는 회사가 운영하는 브랜드 커뮤니티에 자주 들어가 주부들이 남긴 글들을 읽는다. 그녀의 미래 꿈은 글로벌 시장에서 생활 제품의 세계적 브랜드로 인정받는 것이다.

[TV 개인PR人② 스타 슈퍼개미 복재성 (주)J.S대표]

“J.S, 복재성을 알리는 건

남들이 못한 것을 먼저 개척하는 것”

‘증권천황’ 으로 불리는 복재성 J.S 대표는 주식투자로 20대에 100억원을 번 슈퍼개미다. 그가 운영하는 증권사이트 ‘히트넷(http://www.hitnet.co.k)은 증권 방송과 까페를 통해 알려진 그의 유명세만으로 유료회원들을 모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주식 생초보인 그가 대학 수능 시험 직후인 19살에 시작한 주식투자가 성공하게 된 데는 오기와 열정, 프론티어 정신에 보태진 PR이 한몫했다. 그는 2000년 수능 시험 후 두 달 동안 주식 공부에 매달려 투자한 전 재산 300만원을 모두 날리자 군산 집 근처 절로 들어가 1년 가까이 주식공부에 매달렸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로 처음 주식을 시작했던 종자돈 300만원을 다시 만들어 밥먹는 시간 빼고는 주식투자에 매달리며 성공한다.

집안에서 주식만 하던 그는 재미삼아 한 인터넷 증권 토론방, 사이버 증권 방송, 증권 투자대회 등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실력을 알아보고 싶어 나간 증권 투자대회에선 3개월간 1등을 하며 입소문이 나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스카웃됐다. 하지만 그는 회의를 느껴 1년만에 증권사를 그만두고 지인들끼리 계좌를 공유해 주식을 해보자는 동호회 취지의 까페를 개설했다. 12명으로 시작한 까페(주식투자로 100억 만들기)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실시간 무료 추천 종목을 올려 입소문을 타며 회원이 늘기 시작, 다음 29만1000여명, 네이버 6만7000여명이 가입해 증권까페 중 최고의 회원 수를 자랑한다.

대중적 인기를 얻은 그는 경제신문과 공중파TV에도 잇달아 소개되며 유명인사가 됐다.

“세계 첫 증권대학 세워 증권 선진국 만들겠다”

까페가 커지면서 그는 2007년 이니셜을 딴 J.S라는 투자회사도 차렸고 증권사이트 히트넷도 만들었다. 지난해 4월 서울 사무실도 마련했으며 현재 50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운이 좋아 대박을 내며 유명세를 탄 듯 하지만 사실 그는 노력으로 성공한 열혈 청년이다. 새벽 5시 미국 시장과 관심 종목을 체크하는 일로 시작되는 그의 일과는 다음날 추천 종목을 정리하는 오후 8시가 돼야 끝난다. 또 일주일에 한권씩은 경영서적을 독학하며 CEO로서의 역량을 쌓고 있다.

사업을 하며 “개인 투자자들을 도와 모두 웃을 수 있게 하고 싶다” 는 꿈을 갖게 된 그는 J.S를 통해 한국을 증권 선진국으로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도 생겼다.

복재성 대표는 “누구나 저렴한 비용으로 투자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증권아카데미를 만들어 전국화할 계획이다”며 “세계 첫 증권대학을 설립해 유능한 인재를 양성, 외국자본에 빼앗긴 투자금액을 되찾아 월스트리트에 한국이 증권 선진국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복재성이라는 브랜드 관리 및 PR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J.S, 복재성을 알리는 것은 남들이 개척하지 못한 부분을 먼저 개척하는 것이다”며 “복재성이라는 이름보다 J.S를 더 크게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TV 개인PR人③ 스타방송인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 브랜드 유지는

본업에 충실했기 때문”

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부국장)는 방송을 통해 유명해진 스타 언론인이다. 현재 그녀는 MBC 생방송 ‘오늘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익한 생활정보들을 전달하고 있으며 여성가족부의 인터넷 웹진 ‘위민 넷’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한양대 경영대학원 CEO과정 강사로도 출강하고 있으며 기업과 학교, 지자체 등의 강의 및 기고 글 요청도 끊이지 않고 있다. 3월엔 여성들의 직장생활 Q&A를 주제로 한 서적도 출간할 예정이다. 그녀의 블로그 ‘수다의 힘(http://soodapower.khan.kr/40)’은 하루에도 많게는 수천명이 찾고 있으며 15만명이 다녀간 파워 블로그다. 최근엔 경향신문사에 ‘알파레이디 리더십(ALL)’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평범한 주부기자였던 그녀가 이렇게 바쁜 명사가 된 데는 방송 출연이 계기가 됐다. 대학 졸업 후 여성조선(전 가정조선)에서 일하다 전업주부로 3년을 보낸 그녀는 1990년 2월 경향신문 생활담당 기자로 입사했고 출입처로 방송국을 맡으며 방송과 연이 닿았다. 석간신문들이 조간으로 바뀌던 1991년 KBS 생방송 아침 프로그램 ‘전국은 지금’ 에서 ‘오늘의 조간 브리핑-이주일의 방송가’ 라는 코너를 통해 얼굴을 알린 것. 1주일에 1번 3~4분 정도의 방송 출연이었지만 방송 출연으로 알게 된 인연들은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 주었다.

그녀에게 또 다른 세계를 열어 준 이는 방송에 함께 출연하던 출판평론가 김영수씨. 미시족 바람이 한창인 당시 아이를 낳고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 된 고마움에 “아줌마가 너무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던 그녀에게 김씨는 “한번 책을 써보라” 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한 달 반 만에 써낸 ‘내 인생 내가 연출하며 산다’는 책은 7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녀의 나이 서른 셋. 주부들 일상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하면서는 여기저기서 방송 섭외가 들어왔고 그녀는 이내 유명인사가 됐다.

“좋은 일 하자면 나서는 이 많아 유명해져 좋다”

‘대한민국 대표 아줌마 유인경’이라는 브랜드를 갖고 있는 그녀의 매력은 시원스런 말투와 유머, 진솔한 편안함으로 상대를 무장해제시키는 흡인력이다. 그녀는 정치, 시사 등 어려운 얘기 대신 남편이 집에 안 들어온 얘기, 치매걸린 엄마를 돌보는 얘기 등 신문사 여기자라기보다 이웃집 아줌마 같은 생활 얘기로 편안하게 시청자들을 파고든다. 스스로 유명인사가 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줬다고 말하지만 그녀의 화술은 일주일에 4권씩 읽는 독서에서 나온다. 또 휴대폰에 저장된 1000개가 넘는 인맥들은 지금의 그녀를 만들어 준 1등 공신. 사람들은 그녀에게 스스럼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그녀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이권이 개입하지 않는 한 잘 들어준다. 그녀는 “좋은 일을 하자고 하면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유명해져서 가장 좋은 점이다”고 말했다.

‘유인경’ 이라는 이름이 브랜드가 되고 나서 그녀가 지키는 것이 있다. 신문기자라는 본업에 충실한 것. 그녀는 “노력하는 것이 있다면 꼭 하려고 하는 용기보다 안할 것을 안 하는 용기이다” 고 말한다. 유명해졌다고 과도하게 매스컴에 나가지 않았고 수많은 제의에 응하지 않은 일 등이다. “끊임없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그녀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운영도 조만간 시작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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