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다시 부는 텔레그램 열풍, 왜?
소리 없이 다시 부는 텔레그램 열풍, 왜?
  • 박형재 기자 (news34567@the-pr.co.kr)
  • 승인 2017.09.18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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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이슈 때마다 사용량 급증, “불투명 사회의 민낯 보여줘”

[더피알=박형재 기자] 텔레그램 바람이 소리 없이 다시 불고 있다. 카카오톡에 비해 보안이 뛰어나다고 알려지면서 증권사, 제약사 등 전문직에서 이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특히 ‘장충기 문자 사태’ 이후 기업인과 언론인 가입이 급증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텔레그램은 그간 ‘사이버 망명지’로 불려 왔다. 2014년 검찰의 카카오톡 사찰 논란이 불거지자 이용자들이 대거 텔레그램으로 넘어가며 1차 망명이 시작됐다. ▷관련기사: 당신이 텔레그램을 쓰는 이유 지난해 3월에는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로 검찰이 개인 사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심이 확산되며 가입자가 늘었다.

‘3차 망명’ 현상은 지난달 장충기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문자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며 나타났다. 언론사 간부 등이 장 차장에게 자식의 일자리나 광고협찬을 부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휴대폰 메시지 관리에 더 신경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터넷신문 A대표는 “그 일(장충기 문자) 이후 언론인들 사이에서 대거 텔레그램 망명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나도 주변의 권유를 받아 이번 기회에 가입했다”고 전했다.

그는 “텔레그램은 아무래도 외국계 메신저다 보니 압수수색이나 법적 절차가 훨씬 까다롭지 않느냐”며 “불법을 행하겠다는 게 아니라 혹시나 하는 차원에서 카톡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언론인, 관료, 기업 임원 등의 직업군들은 속속 넘어가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종합지 B기자 역시 “텔레그램은 보안성이 높아서 업무용으로 쓰고 있다”면서 “카톡에 비해 사용자가 적어 불필요한 메시지가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은 언론인 외에도 특정 직업군에서의 사용이 두드러진다. 제약사 영업사원, 증권가 애널리스트, 정치인 등이 보안상 이유로 즐겨찾는다. 카카오톡처럼 대중성을 갖진 않지만 일부층에서 비밀주의가 상당히 중요한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의사와 접촉이 많은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담당 의료진과 문자나 카톡 대신 텔레그램으로 연락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텔레그램의 경우 휴대폰 앱이 없어도 인터넷만 되면 접속 가능하고, 대화를 들킬 위험이 적어 민감한 이야기를 하기 좋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해 모 보건소 의사는 ‘월별 의약품 처방내역’을 사진 촬영해 텔레그램으로 제약사 영업사원에게 전송한 뒤 리베이트를 받아오다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텔레그램에 개설된 증권사 채널들(왼쪽). 채널에 접속하면 시황정보 등을 손쉽게 알 수 있다.

증권사는 텔레그램 채널을 공식 커뮤니케이션 툴로 활용해 눈길을 끈다. 채널은 카카오톡의 플러스친구와 비슷한 기능이다. 누구나 단체방을 만들 수 있으며 채널 개설자만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공지사항이나 기업 정보를 전달하기에 편리하다는 평가다.

메리츠종금증권, 유안타증권, 하나금융투자 등 다수의 증권사들은 자체 채널을 통해 리서치 보고서나 요약본, 시황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다. 증권가 ‘찌라시’와는 다른 공식 의견인데다 실시간 알림을 통해 종목관련 정보, 뉴스를 손쉽게 공유할 수 있어 반응이 좋다. 증권사 입장에서도 애널리스트와 고객의 면대면 접촉에서 벗어나 불특정 다수에게 홍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백인재 하나금융투자 과장은 “텔레그램 이용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고객 접점을 늘리는 차원에서 ‘하나금투마케팅&리서치’라는 채널을 개설했다”면서 “증권사를 찾는 고객에 국한된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잠재고객을 찾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 사이에 공유된 ‘텔레그램 망명’ 권유 글.

카톡 단체방이나 네이버 밴드에서 정치 글을 공유하는 사람들도 대거 텔레그램으로 갈아탔다.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을 중심으로 ‘텔레그램 망명’이 확산됐다.

지난 5월 SNS에서는 텔레그램 사용을 권유하는 글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정치적인 카톡 지워주시기 바랍니다’로 시작하는 해당 글에는 “앞으로 정부가 네이버와 카톡에 간섭할 예정이니 중요한 내용은 텔레그램을 이용해달라”고 적혀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과정에서 이른바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 처벌받을까 우려해 망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텔레그램의 폐쇄성은 범죄에도 악용되고 있다. 마약 판매 광고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필로폰을 팔아온 일당이 지난달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 메신저를 이용해 거래해왔다.

이처럼 텔레그램이 다시 조명받고 있지만 최근의 열풍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용자 관점에서 보면 이미 대중적으로 쓰고 있는 메신저들이 있기 때문에 유의미한 시장점유율로 성장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다만 카톡과 병행해 사용하는 사람들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신문 차장)는 “메신저 사용 빈도를 살펴보면 텔레그램의 경우 시기적으로 기복이 큰 앱”이라며 “정치·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특정 메신저가 주목받고 화제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고 숨겨야할 것이 많다는 의미”라고 씁쓸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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