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탁월한 선택? 헛발질?
회장님의 탁월한 선택? 헛발질?
  • 온라인뉴스팀 (thepr@the-pr.co.kr)
  • 승인 2011.04.1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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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은행 인수 둘러싼 4인4색 빅뱅 드라마

정혁준

한겨레 경제부 기자
‘아이폰형인간 VS 렉서스형인간’ 저자

# ‘발목 잡힌’ 하나금융그룹

“회장님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발표하고 난 뒤 하나금융 홍보맨이 한 말이다.

지난해 11월 25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이 영국 런던에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과 외환은행 주식(51.02%)을 인수하는 주식 매매 계약(SPA)을 맺었다. 주당 인수 가격은 1만4250원으로, 인수 금액은 4조6888억원이었다. 처음에는 ‘회장님의 탁월한 선택’ 처럼 보였다. 애초 하나금융의 인수 대상 후보는 우리금융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로 방향을 튼 것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총자산이 316조원으로 크게 늘어, 만년 4위의 금융회사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다. 우리금융과 KB금융에 이어 국내 3위 금융그룹으로도 도약하게 된다. 기업금융이 강한 외환은행 인수를 통해 뒤쳐져 있는 기업금융 경쟁력을 끌어 올릴 수도 있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하나SK카드에 외환카드가 더해지면 카드사업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발목이 잡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3월 16일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자격에 대해 법리 검토가 추가적으로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인수 승인이 지연된 것이다. 다음날 주식시장에선 하나금융 주가는 1450원(3.30%) 추락한 반면, 외환은행 주가는 360원(3.98%) 올랐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회장님의 탁월한 선택’이 될지, ‘회장님의 헛발질’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 ‘진로 고민하는’ 우리금융그룹

“치와와(하나금융)가 셰퍼드(우리금융)와 연애하겠다는데, 말이 되냐.”

지난해 하나금융이 우리금융 인수를 추진할 당시 우리금융 홍보맨이 한 말이다. 규모와 역사에서 밀리는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하려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이제 우리금융은 인수전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민영화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우리금융의 2011년은 독자생존과 민영화에 사활을 걸어야 할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찮다. 사실 우리금융은 국내 금융회사 가운데 자산 순위 1위다. 국내 최대 금융회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간판만큼 탄탄한 내실을 가지진 못하고 있다. 특히 11조4000억원에 이르는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우리은행의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 비율은 무려 3.85%에 이른다. 고정이하여신이 1%대인 하나은행, 2%대인 KB국민은행 보다 매우 높은 상황이다. 이제 셰퍼드는 경쟁이 치열해진 밀림에서 혼자 살아가야 한다. 셰퍼드가 동료를 제압할지 아니면 치와와 보다 못한 처지에 놓일지도 지켜봐야 한다.

# ‘뒤통수 맞은’ 외환은행

“야구장에서 재밌게 야구구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야구공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발표 뒤 외환은행 홍보맨이 한 말이다. 지난해 내내 외환은행은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인수전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인수 대상자가 자신들이라는 소식을 듣자 외환은행 직원들은 패닉상태에 빠졌다.

곧바로 외환은행 노조는 인수반대를 위한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지난 겨울 연일 이어지는 강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외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노조뿐만이 아니다. 외환은행 직원들도 신규영업을 전면 중단하며 투쟁모드로 전환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하나금융의 인수 능력에 불신이 크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은행은 외환은행보다 자산과 인력의 규모가 훨씬 크지만 지난해 순익은 외환은행의 3분의 1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유는 하나금융에 인수되면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은행 직원은 9400여명, 외환은행 직원은 7300여명이다. 두 은행의 점포수를 합치면 1000여개로, 규모 면에서는 다른 ‘빅3’ 은행과 비슷하다. 하지만 점포 숫자가 비슷한 신한은행 보다 인력이 3500여명 가량 많아진다. 임금 삭감 우려도 있다. 금융감독원 보고서를 보면, 외환은행 직원의 평균연봉은 4970만원으로, 하나은행의 3600만원보다 크게 앞선다. 외환은행 직원들이 다시 느긋하게 야구장에서 야구 응원을 하게 될지, 아니면 길거리에서 투쟁구호를 외치게 될지도 좀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 ‘뒷짐지고 미소 짓는’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건, 현재 외환은행의 대주주인 사모펀드 론스타다.

론스타는 2003년 2조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론스타는 이미 배당금과 일부 지분을 팔아 세금을 제하고도 1조7000억원의 순수익을 올렸다. 외환은행 지분 인수에 들어간 돈의 82%에 이르는 액수다.

여기까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4조6888억원에 팔 예정이다. 여기에 주당 850원의 추가 배당도 보장받았다. 매각이 확정되면 하나금융에서 4조9685억원을 받게 된다. 세금(원천 징수액 5465억원)을 빼고도 론스타가 챙겨가는 돈은 4조4220억원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되팔기까지 7년6개월 만에 모두 6조1964억원(세후)을 거둬들인 셈이다. 차익은 4조415억원, 수익률은 188%다.

론스타가 이렇게 큰돈을 벌었지만, 정작 실체는 가려져 있다. 론스타는 일종의 부자들 계모임인 사모펀드다.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존 그레이켄이 투자자를 모았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투자자를 밝히지 않았고 정부도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론스타는 웃고 있는데, 그 웃음 짓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thepr@the-p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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