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疏通)의 비법, 역지사지(易地思之)
소통(疏通)의 비법, 역지사지(易地思之)
  • 함기수 (myqwan@the-pr.co.kr)
  • 승인 2011.04.15 18: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함기수의 中國 이야기

일전에 모 일간지에서 주최하는 중국 관련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후진타오 체제를 이어갈 차세대 중국 정치 지도자에 대해서, 미국에서 중국 정치학 연구의 대표적 인물로 활약하는 중국계 미국학자가 주제 강연을 하고 우리나라 각 대학의 중국 전문가들이 패널로 참석했다. 주최한 일간지의 권위와 강연자의 명성에 걸맞게 500여 좌석은 중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빈 자리가 없었다. 마지막 순서는 청중의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이 때 60대로 보이는 초로의 신사가 일어나더니 강연을 한 중국계 학자에게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장황했지만 결론은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은 후안무치하게 북한 편만 드는 것이냐?’ 였다.

천안함 사태 이 후, 우리의 중국을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었다. 언론은 연일, 북한 입장을 고려한 듯한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에 대국답지 못한 행동이라고 울분을 토해냈다. 한 저명한 보수 논객은 중국이 5,000년의 역사를 우리와 함께 하면서 언제나 우리를 핍박만 해 왔다고 흥분했다. 기세 등등해 상대방을 몰아친다는 돌돌핍인이라는 낯 선 사자성어도 한 동안 신문 지상의 단골 메뉴로 올랐다.

Communication 어원은 ‘함께 나눈다’

어느 유명한 프로 바둑 기사는 다음 수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기록계에게 기보를 받아 거꾸로 들고 본다고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둑판을 들여다 본다는 것이다. 입장의 전환,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는 역지사지(易地思之)는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하는 말이다. 맹자가,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夏禹)와 후직(后稷), 그리고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를 칭송하면서 “이들은 입장이나 처지가 바뀌어도 그렇게 할 사람들(禹稷顔子易地則皆然 : 우직안자역지즉개연)” 이라고 했다. 자신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청빈한 도(道)를 즐긴 이들의 생활 방식을 통해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말했던 것이다.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함께 나눈다’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 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소통의 장(場)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가족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과 우리는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살아야 한다. 최근 주변의 일상사에서 뿐만 아니라 조직의 경영에서도 이 ‘소통(疏通)’ 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조직과 구성원, 구성원과 구성원 사이의 원활한 소통이야말로 성공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기업 홍보의 큰 틀을 사내(社內)와 사외(社外) 커뮤니케이션으로 나누고 기업의 전력을 여기에 경주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물며 세계화의 큰 틀 안에서 점점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국가간 관계에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원활한 소통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싫든 좋든 가장 가까이 해야 할 세계적 대국

우리는 해답을 두고 해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상사를 어떻게 모실까?’ 라는 해답은 아랫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나와 있다. 어떤 직원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어떻게 느꼈느냐가, 내가 상사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의 해답이다. 가령 술자리에서 계속 중언부언 바른 소리를 하는 부하 직원이 못마땅했다면, 나 역시 상사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아랫사람들에게 대할 행동의 정답은, 상사가 나에게 어떻게 행동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이 그것이다. 윗사람에게 질책을 들은 상사가 나에게 짜증을 부렸다면 나는 부하 직원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본다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둑 수를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할 때의 기본이다.

향 후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갖고 해결해 나가야 할 것 중 ‘고령화’ ‘양극화’ 와 함께 ‘중국화’ 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중화문명의 가공할 흡입력과 파괴력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싫든 좋든 중국은 우리가 5,000년을 부대끼며 같이 살아 온 우리의 이웃이고, 앞으로도 가장 가까이 해야 할 세계적 대국이다. 여기에 우리가 반드시 중국을 이해하고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를 돌아 봐야 할 이유가 있다. 중국을 편드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천안함 사건 때문에 중국은 미국 항공모함이 서해로 들어 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항공모함의 작전 반경이 1,000km에 달하고, 서해에서 발진한 폭격기가 20분이면 베이징에 도달한다는 기사가 사실이라면 이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중국이 미국을 보는 눈, 북한에 대한 입장도 중국의 입장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았다면, 국제 세미나 장에서 중국의 미래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하던 학자에게 삿대질하는 일은 없었지 않을까 한다.

좋은 말을 너무 흔하게 자주 쓰면 그 뜻이 퇴색된다. 우리에게 ‘역지사지’ 란 이미 진부할 정도로 자주 쓰여지는 말이지만, 실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원활한 소통은 역지사지(易地思之)에서 출발한다. ‘내가 저 사람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떠오른다면 그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5,000년에 걸쳐 우리를 핍박하기만한 상대라는 상식으로는, 적어도 ‘소통(疎通)’ 이라는 데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함 기 수
現 세계화전략연구소 객원교수(중국전문가)
前 SK네트웍스 홍보팀장 / 중국 본부장(상무)
저서 ‘중국, 주는 만큼 주는 나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