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길은 디자인으로 통한다
모든 길은 디자인으로 통한다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10.2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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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필요에 가치를 더하는 ‘글자와 기록사이’

[더피알=이윤주 기자] 디자인(Design)의 어원은 계획하다, 표현하다, 성취하다, 윤곽을 잡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 데시그나레(Designare)에서 유래한다. 현대식으로 해석하면 인간생활에 필요한 의·식·주 생산과 소비 등을 아름답고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이다.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하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글자와 기록사이’가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글자와 기록사이는 최혜진 디자이너와 이신재 경영컨설턴트가 공동으로 설립한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미리 밝혀두자면 이 둘은 부부다. 서울 상암동에 있는 DMC첨단산업센터 내 사무실을 마련해 두 명의 직원과 함께 비전을 현실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최혜진·이신재 글자와 기록사이 공동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출입카드를 찍고 들어간 사무실에는 같은 천장 아래 여러 회사들이 모여 있었다. 칸막이 문을 열자 통유리로 된 공간이 펼쳐졌다. 디자인 기업답게 아기자기한 소품이 놓여 있다. 그 중 스타워즈 다스베이더가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았다. 주기적으로 이상한 소리가 났다. “백색소음기에요. 이 공간이 너무 조용해서 그거라도 틀어 놓지 않으면 안돼요.” 소음 공간을 뒤로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공용 회의실로 향했다.

최 대표는 10년 넘게 출판사, 잡지사, 디자인 에이전시 등을 거치며 디자이너로서 활동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회적 기업 관련 프로젝트를 맡은 것을 계기로 ‘공익적 디자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이 길로 들어서게 됐다.

“만약 누군가 착한 일을 시작하려고 해요. 디자인 작업이 필요한데 외주는 비싸요. 이럴 때 (사회적기업에 종사하는) 같은 동료로서 ‘지인쿠폰’이 있다면 어떨까란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이들은 2015년 2월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지원해 선정됐고, 같은 해 12월 회사를 설립했다.

“전 경영컨설팅 업무를 하다가 끌어들임을 당했어요. 초기 창업부터 같이한 동반자에요.” 이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서울시 브랜드 아시죠. 아이서울유요. 이 사람(최 대표) 디자인이에요.” 내심 아내의 디자인 실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듯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당시 서울시는 서울브랜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슬로건과 디자인에 대한 시민공모전을 개최했다. 본상 3개 작품에서 사전투표와 현장투표, 그리고 전문가 심사를 통해 최종작을 가렸다. 이때 선정된 BI(Brand Identity) 원작자가 최 대표이다. 그는 “제가 서울 관련 상품도 많이 만들어봤기 때문에, ‘이건 내가 해야지’하고 참여해본 것”이라며 수줍어하면서도 자부심을 내비쳤다.

전문 디자이너와 경영 컨설턴트가 협력해 꾸려가는 글자와 기록사이. 이들의 설명을 빌리면 디자인을 기반으로 사명대로 ‘글자’와 ‘기록’ 사이 어디쯤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

글자와 기록사이 사무실 전경. 사진=이윤주 기자

브랜딩은 기본, 카드뉴스·굿즈 제작까지

디자인은 어디에나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디자인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이들은 손이 닿지 않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들을 찾아가는 여정 중”이라고 비유했다.

비즈니스 영역은 크게 공익사업, 디자인서비스, 출판 및 상품 등 3가지로 나뉜다. 먼저 ‘소셜.d.상담소’는 사회적기업, 소셜벤처, 자활기업은 물론 소상공인들도 홍보, 브랜딩, 디자인에 대한 것들을 쉽게 질문할 수 있는 자리다. 어떤 사업을 시작해도 대부분의 영역에 디자인은 필수로 포함된다. 하지만 막상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기업이 허다하다. 이럴 때 글자와 기록사이는 일반 단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도움의 손길을 준다.

“보통은 경영자금, 멘토링 형식으로 투자하잖아요. 저희 사업철학 중 하나가 디자인을 투자한다는 개념이에요. 그렇다보니 종종 일로 연결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디자인을 수주 받으면 한번 결제하고 끝나는데, 우리는 팔리는 제품의 일정 퍼센트를 받기도 해요.”

또 올해부터는 양천구 내의 사회적 경제단체들을 위한 서비스로 카드뉴스를 제작해주고 있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금껏 만든 카드뉴스를 보여줬다. “큰 틀에서 디자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사회적 공헌을 해보자는 마인드”라고 설명했다.

‘나눔 굿즈’ 사업도 초반엔 취약계층에게 디자인을 기반으로 제작한 노트 시리즈를 기부하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기부는 한계가 있었기에 정서를 치유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교육프로그램 자료집으로 제작한 <읽다, 쓰다>라는 필사 책이 탄생했다.

책은 한 장마다 시나 소설의 구절이 적혀있다. 그리고 예쁘게 디자인 된 필사공간이 있다. 뒷장에는 필사하면서 느꼈던 감정을 적고, 점선을 따라 뜯어 다른 누군가에게 보낼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뜯고 남은 부분은 하나의 작은 소책자로 변신한다. 지난 5월에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다.

'글자와 기록사이'가 펴낸 <읽다, 쓰다> 필사 책. 사진=이윤주 기자

최 대표는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해 기록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상역사를 우리 나름대로 기록하는 시각은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면서 ‘기록형 독립출판’에 대해 연이어 소개했다. 말 그대로 잊혀져가는, 지나치기 쉬운 지역을 낯설고 새롭게 보기 위한 이야기들을 담는 책을 제작하는 일이다. 현재는 서울 백년의 모습을 문화재 중심으로 설명하는 책을 펴내고 있다.

“비등록 문화재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고 있어요. 실제 땅 주인이나 시가 헐라고 하면 쉽게 헐려버리는 터 같은 것들도 많아요. 이들을 지키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문화유산을 탐방하는 서울여행을 콘셉트로 진행 중이에요.” 이 책을 통해 서울의 근대문화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양천 지역 주민들의 삶이 담겨져 있는 <양천이야기>라는 집필을 위해 직접 취재 중이기도 하다. 이는 <일곱 개의 키워드로 보는 마포 이야기>에 이은 ‘마을 이야기 프로젝트’ 일환이다.

이쯤 되니 궁금해졌다. 4명의 직원으로 이 모든 활동이 가능할까. 이 대표는 “책을 내도 본격적으로 홍보는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 책을 출판하면 영업자가 서점에 ‘이거 넣어주세요’라고 전화도 하고 관리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비용이 더 필요해요. 저희가 다 할 순 없거든요. (웃음) 연락주시는 분들만 해서 알음알음 팔리는 거죠.”

지속성 그리고 전문성의 과제

“결국 마이너스 되는 사업이 아닌가요?” 기자의 질문에 최 대표 “디자인 일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며 “외주 작업으로 수익을 벌고 있다. 이 수익이 나머지 사업들의 기반을 깔아준다”고 답했다. 글자와 기록사이의 주 수익원은 아트디렉팅&디자인 서비스이다. 아울러 굿즈, 출판물, 지원금 등에서 나오는 수익도 이들의 운영을 돕고 있다.

그래도 글자와 기록사이는 상당히 빨리 자리를 잡은 케이스라고 했다. 몇 년 동안 마이너스만 기록하는 예비 사회적기업도 많다고. 이 대표가 걱정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희가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5기인데, 한 기수에 400팀이 넘어요. 그런데 5년 이상 생존하는 곳이 많지 않아요. 지원금을 탈 수 있는 기간이 5년이 맥시멈인데, 그 후로는 버티기 힘들기 때문이죠.”

이 대표는 실질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없는 곳에 지원금을 쏟아 붓는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 번 지원금을 타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남을 수 있도록 좋은 무대를 만드는 고민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저희는 디자인이라는 전문성을 가지고 뛰어들어서 그나마 나아요. 다른 팀 중에는 허비하는 시간도 많고 기업체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업무들만 하다가 사라지는 경우도 많아요.”

글자와 기록사이 사무실 한 가운데 요다인형. 사진=이윤주 기자

서류 작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지원금을 악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다 보니 규제도 심하고 상당히 까다로워졌다. 이 대표는 “경영학을 전공한 저한테도 답답하고 어려운 작업”이라며 “더군다나 저희는 둘이서 하는데 ‘다른 (기업) 대표님들은 어떻게 하지?’란 생각을 자주 한다”고 했다.

지원금 없이 예비 사회적기업이 지속해나가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사회적기업에 뛰어드는 이들의 아이템이 처음에만 반짝 하고 단기간에 끝나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지속가능한 사업모델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글자와 기록사이는 현재 다음 스텝을 준비 중이다. 사물인터넷협동조합융합디자인 (최 대표는 이름이 길다며 웃었다) 이사로 있는 이 대표가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고독예방 디자인’이 그것이다. 이 대표는 “IoT 관련 제품을 꼭 대기업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라며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했다.

디자인에 관련된 A부터 Z까지를 하는 것을 보며 “‘글자와 기록사이’라는 회사명이 무색할 정도로 분야가 확대 되는 것 같다”고 하자 이 대표는 “10년차 된 사회적기업은 그 기간에 여러 가지를 시도했을 것”이라고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무언가에 더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우리에게 적합한 일을 찾는 과정에 있는 거죠.”

글자와 기록사이가 품고 있는 사회적 미션은 이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었다.

디자인, 공익을 디자인하다
디자인, 세상을 기록하다
디자인, 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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