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사랑스러운 폐지라니
이토록 사랑스러운 폐지라니
  • 이윤주 기자 (skyavenue@the-pr.co.kr)
  • 승인 2017.11.16 16: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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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을 찾아서] 폐지에 아트를 입히는 ‘러블리페이퍼’

[더피알=이윤주 기자] 쌩쌩 달리는 차도 옆, 리어카 가득 폐지를 담아 끌고 가는 어르신들을 보면 여러 생각이 든다. ‘위험하다’ ‘힘드시겠다’ ‘지나가는데 방해 되네’ ‘하루에 얼마나 받으시려나’… 한 대안학교 선생님이 그분들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고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폐지에 아트를 입혀 판매하는 것이다.

러블리페이퍼에서 판매하는 작품들. 러블리페이퍼 제공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줍는 어르신에게 10배 가격으로 박스를 사들인다. 폐박스에 캔버스를 씌운 뒤 작가들이 그림을 그리면 판매해 다시 빈곤노인을 돕는다.

인천 부평역 부근에 위치한 사무실에 들어서자 기우진 대표의 뒷모습이 보였다. 창을 활짝 열어놓고 분주하게 쌓인 박스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기우진 러블리페이퍼 대표. 사진=이윤주 기자

대안학교 선생님이시라고요. 오늘은 수업이 없으신가 봐요.

지금 시간은 공강이에요.

다시 가봐야 하시는 거예요? 학교가 가깝나 보네요.

바로 30초 거리에 있어요. 옆옆 건물에…. 일부러 가까운 곳으로 얻었어요. 쉬는 시간, 점심시간에도 짬 내서 오려고요.

아, 그렇군요. 근데 사무실에 쌓인 저 많은 박스들은 누가 캔버스로 만들어요?

자원봉사자들이 와서 도와줍니다. 수작업이 많아서 인력을 많이 필요로 해요. 저희 학생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하고….

자원봉사가 아니라 방과 후에 오도록 해서 일 시키시는 거 아니에요? (웃음)

아니에요. 진짜 봉사죠. (웃음) 밥은 못 사줘도 아이스크림 정도는….

러블리페이퍼가 돌아가는 프로세스 설명을 해주세요.

폐지 줍는 노인을 돕기 위해서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사회봉사로, 경제 안에서, 정책 안에서. 이게 다각도로 진행됐을 때 대상에 대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제가 할 수 있는 건 경제도, 정책도 아니었어요. 전 대안학교 교사였고 청소년들하고 같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단체를 만들었죠.

폐지 10kg 분량을 모으면 자원재활용업체가 사들이는 돈은 1000원이에요. 저희는 10배의 가격을 주고 매입하죠. 일주일에 한 번은 받으려고 해요. 한 명당 한 달 5만 원 이상의 지원비를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폐지를 들고 오면 누구든지 다 받아주나요?

아뇨. 지금은 고정적으로 7명의 노인에게만 받고 있어요. 스토리가 있는데요. 처음엔 공공기관에 협조를 구하러 갔었어요. 저희가 정보가 없으니까 어느 분을 지원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잖아요. 폐지 줍는 어르신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사회복지과에 전화했는데 퉁명스럽게 대할 뿐더러 정보도 잘 안 주더라고요. 청년들이 모여서 으쌰으쌰하니까 ‘쟤네는 뭐지?’ 이런 눈초리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4년 처음 관(官)하고 어려운 어르신 12명을 추려서 한 명당 10만원 상당의 생필품을 드리는 활동을 했는데 그분들은 관에서 지원하는 줄 아시더라고요. 그 뒤 저희가 연락드리고 싶어도 무조건 관을 통해야 하고 임의로 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발품을 팔더라도 찾아 나서자’고 했죠.

러블리 페이퍼 사무실에 쌓여있는 폐지들. 사진=이윤주 기자

그렇게 해서 몇몇 분들을 길에서 만났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사정도 듣고 집에도 방문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 7명을 중심으로 도와드리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저희가 동네에서 노인 분들을 마주치다보니까 안 줍던 분도 갑자기 폐지를 줍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분들도 나름대로 정보를 나누는 커뮤니티가 있거든요. 거기서 소문이 난거죠.

“나도 이제 줍기 시작하니까 사달라”면서 연락을 해오는 건가요?

아뇨. 오며가며 마주치니까 “할머니…. 하시려고요? 모아두시면 알아서 제가 눈치껏 팔아드릴게요”라고 해요. 되게 애매해요. 러블리페이퍼가 언론에 많이 소개되면서 우리 폐지도 비싸게 사가라고 전화하는 분도 있어요. 저희가 지원하는 게 한계가 있어서 막 확산하지는 못해요. 역설적이게도 많이 알려지면서부터 어르신들을 더 찾아뵙지 못하고 있어요. 바빠서 하루 빼는 게 어려워요. 직원이 한 명인데 일손이 부족하죠. 그래서 다시 관하고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진행 중이에요.

이제는 협조를 잘 해주나요?

네. 저희가 방송도 나오고 언론에도 계속 나오니까 모양새가 갖춰졌잖아요. 국장이 와서 직접 반기더라고요. 어서 오시라며. (웃음)

사실 전국에 폐지 줍는 어르신만 175만 명이에요. 우리가 언제 다 만나면서 접근하겠어요. 누가 돕는 건지 모르셔도 파급력 있으려면 관에서 도와줘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럼 지금은 인천 남부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겠네요. 다른 지역에도 체인점처럼 생기면 좋을 텐데요.

사실 이건 지역기반으로 해야 하는 형태기 때문에 저도 체인으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서울, 경기, 제주 등 하나씩은 있어야죠. 캔버스를 만드는 작업이 수작업으로 진행돼서 자원봉사자들이 많이 필요한데 여기까지 오기가 어렵거든요. 2시간 걸려서 오시는 분도 있지만 한계가 있죠. 박스를 자르고 3겹을 겹쳐서 붙이고 캔버스로 싸는 과정들이 손이 많이 가요.

한 박스에 캔버스 몇 개가 나와요?

일반 유화 캔버스 사이즈(230*160)로 만드는데, 숙련가들이 하면 4개 반 정도 만들어요. 대신 오염물이 묻어있거나 구겨져 있거나 비 맞으면 안 되고 튼튼해야 해요.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아트작가들은 수익이 있나요?

일단 아트작가들은 재능기부로 하기 때문에 수익은 없어요. 다행히도 재능작가 모집 글을 올리자마자 4시간 만에 150명이 신청해주시더라고요. 문제는 그분들 각각에게 캔버스를 보내고 다시 받는 배송비만 해도 너무 많이 든다는 점이에요. 또 작가의 수준을 모르고 필터 없이 받다 보니까 차마 팔 수 없는 작품들도 나오고요. 지금은 저희랑 케미가 잘 맞는 12명만을 골라 주기적으로 받고 있어요.

가격적인 부분도 고민인데요. 작가 입장에선 손수 작업했기 때문에 3만원도 싸다는 입장이고, 소비자 입장에선 저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래서 가격을 좀 낮추고 인쇄물로 대량생산해서 9500원정도로 팔면 어떨까 고민 중이에요.

자체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작품을 구매하려는 이유가 예뻐서라기 보단 어르신을 돕기 위한 이유가 크더라고요.

박스에 제소를 바른 후 캔버스를 말리고 있다. 러블리페이퍼 제공

수익적인 면에서 한 명의 직원 월급 줄 정도는 나오는 건지….

사실 직원을 뽑을 생각이 없었는데 올해 4월에 면접보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왔어요. 이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제가 줄 수 있는 돈이 없잖아요. 저도 여기서 가져가는 돈이 0이니까…. 그런데도 하겠다는 거예요. 지금 그 친구는 쓰리잡을 뛰고 있어요. 이걸로 월급이 얼마 안 되니까 제가 학생 수학과외도 연결해주고, 지인이 하는 일도 소개해줬거든요. (웃음)

언론에 소개될 때마다 페이지뷰는 월 3000명까지 트래픽이 올라가는 등 잘 나와요. 그런데 막상 작품은 많이 안 팔려요.

대신 기업에 강의를 나가서 벌어들이는 게 큰 수입이 돼요. 그걸 잘해서 매출액이 늘었고요. 이번에 대기업이랑 하는데 연매출만큼을 한 번에 벌어요. (웃음) 열심히 해야죠. 엄청 좋아요. (웃음)

지금 정부가 사회적기업을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요. 좋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돼요. 정부에서 주도하겠다는 건 예산을 많이 주겠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가져갈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아요. 페이퍼작업을 잘하고, 관련 지식이 잘 갖춰져 있고, PPT를 잘 만들고, 발표 잘하고…. 저희같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은 그런 업무가 탁월하지 않거든요.

예산은 있어야 하는데 거기에 집중하면 다른 일을 못하고요. 그 업무만 담당으로 하는 한 명을 고용해야 할 정도에요. 특히 사회적기업의 PT를 5분 안에 해야 한다는 게 어렵죠.

그렇겠네요. 인원이 두 명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페이스북에서 열심히 홍보하시더라고요. ‘폐지 줍는 어르신 영역’ 시험지도 독특한 아이디어인 것 같아요.

제가 교사니까 교육적인 콘텐츠로 접근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강의를 나가면 마지막엔 “시험지 푸세요”라면서 나눠줘요. 100점 맞은 사람은 거의 없어요. 시간당 노동 금액, 폐지 줍는 사람 수, 평균 연령 등이 고난이도 문제에요. 이렇게 사람 수가 많을 거라, 고령일거라, (평균 임금이) 적을 거라고 생각 못하더라고요.

러블리페이퍼가 제작한 '폐지 줍는 어르신 영역'. 러블리페이퍼 제공

(정답은 드래그로 확인) 3,3,1,4,2,3,2,4,4,3

그런데 이분들이 돈을 더 많이 벌면 더 많이 주우러 돌아다니시지 않을까요?

제가 중어중문학과를 나왔는데 중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그분들의 시간을 ‘장악’해야 해요. 그래서 고용이 필요해요. 우리가 그분들을 4시간 노동시키고 4시간 여가를 주는 거죠. 4시간은 노동법으로 최소 일하는 시간으로 4대 보험을 보장해줘요.

사실 언제까지 그분들에게 폐지를 사오기는 어려워요. 사업을 하면 지출증빙을 확실하게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세금계산서를 끊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재무재표에 구멍이 날 수밖에 없죠. 사업하면서 고민할 게 많아지는 건 감수해야겠지만, 생각도 못한 부분이 계속 나오고 있어요. (웃음)

어르신들 반응도 궁금해요.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하시나요?

일단 생활적인 측면에서는 많이 도움이 된다고 하세요. 의료비, 공과금, 생활비 등을 내시려면 현금이 필요하거든요. 한 번 찾아갈 때 5만원어치 폐지를 사온다고 하면, 쌀 10kg도 같이 사가는 식이에요.

어떤 어르신은 저에게 소소한 부탁을 많이 해요. 뭐 고쳐 달라, 찬양테이프 구해달라는 식으로요. 라디오방송에 출연할 기회가 있어서 어르신 얘기를 했더니 한 청취자가 (양 팔을 벌리며) 이~만큼 보내주셨어요. 가져가니까 “아, 바로 이거라고.” (웃음) 근데 며칠 뒤 찾아가니까 작동방법 까먹으셨다고. (웃음) 빨간색 칠해주고 왔어요. “할아버지! 이것만 누르세요!”라면서. 추석 전에 가면 길에서 주은 넥타이핀 같은 것을 주세요. 장인어른 만나러 갈 때 하고 가라고. “네...”하고 받아오죠. (웃음)

폐지 줍는 어르신 중 한 할머니는 남편분이 치매였어요. 근데 한 동안 안 보이셔서 여쭤보니까 남편이 돌아가시고 딸네 집으로 들어갔다는 거예요. 남편을 돌봐야하니까 고정적인 직업은 못 갖고 폐지를 주우셨는데 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분들이 폐지를 줍는 게 자기가 줍고 싶어서 줍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폐지줍는 어르신들이 작품을 들고 있다. 러블리페이퍼 제공

폐지를 통해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나름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점이 정말 인상적이에요. 앞으로 러블리페이퍼의 역할에 어떤 계획이나 비전을 품고 계시나요.

소셜아트 플랫폼을 생각하고 있어요. 예술을 수단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플랫폼을 만들려고 해요. 가령 어떤 작가가 시각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술작품을 그리고, 그걸 판매하면 수익의 일부가 그들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거죠. 문제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거예요.

사실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문제를 좋지 않게 보는 사람들도 많아요. 아직 우리 사회가 노인 빈곤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성적이지 않거든요. 댓글을 보면 “그들이 자식을 잘못 키워서, 잘 키웠으면 효를 행했을 텐데”라는 식으로 말해요. “쓰레기 헤집고 다니고 냄새나고 주변에 피해주는 거 아니냐”라는 건 대단히 감정적인 거거든요. 노인 빈곤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닌 사회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에요.

유럽이나 미국, 하다못해 가까운 일본만 봐도 기초노령연금, 국민연금에 대한 비율이 높아요. 지금 우리나라 70세 이상은 국민연금 가입률도 낮고 최대 지원금도 20만 원 선이죠. 이조차도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자로 지정 못 받기도 하고요. OECD 노인빈곤율도 1위잖아요.

저희는 앞으로도 계속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폐지 줍는 노인’하면 러블리페이퍼가 생각나도록 만들고 싶어요. 처음엔 저희만의 원심력으로 시작했다면 이제는 구심력으로 이들의 어려움을 알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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