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의 불안’ 파고드는 영악한 마케팅
‘늙음의 불안’ 파고드는 영악한 마케팅
  • 서영길 기자 (newsworth@the-pr.co.kr)
  • 승인 2017.11.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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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소비자 겨냥한 TV 속 물량공세, 실질적 피해 양산

▷할아버지 할머니는 ‘봉’?에 이어

[더피알=서영길 기자] 건강한 백세시대를 이야기하지만 한쪽에선 노인들의 약점인 건강과 외로움을 파고드는 상술이 활개를 치고 있다. 정보 수집과 소비에 있어 젊은층 대비 상대적으로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노인들을 그럴싸한 말로 현혹해 제품 구매나 서비스 가입을 유도한다.

노인층 대상 꼼수 마케팅이 넘쳐난다.

이런 꼼수에 노인들이 놀아나는 일이 잦아지자 서울시는 민관합동토론회를 열고 고령 소비자의 피해 특성을 몇 가지로 요약해 내놓기도 했다. 자각을 통해 피해를 막자는 취지다. 수년 전 자료이긴 하지만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다.

이를 옮겨보면 ⧍재택률이 높아 가정방문이나 전화 권유를 받을 기회가 많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악덕상술의 타깃이 되기 쉽다 ⧍퇴직 등으로 일선에서 물러난 경우가 많아 정보 부족 혹은 새로운 상품·서비스에 어두워 감언이설에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 ⧍서체 크기가 작고 표현이 어렵다는 이유로 계약서를 잘 읽지 않는다 ⧍현재 보유한 자산만으론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에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쉽게 넘어간다 ⧍건강에 대한 불안 때문에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등이다.

특히 노인들의 정보가 부족하다는 점은 지속적인 피해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문제이기에 시급히 해결해야 사안이다.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똑똑한 시대에 정보접근성이 떨어지면 그만큼 세상물정에 어두워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날로그 환경에서 인생의 청·장년기를 보냈던 노년층이 스마트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기는 쉽지 않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지난 2015년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간 정보격차 실태를 조사한 결과 노년층의 스마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의 56.3% 수준에 불과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대학내일 20대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대는 ‘온라인 정보 확인 시 팩트체크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무려 83.7%가 그렇다고 답했고, 이미 밝혀진 팩트도 스스로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는 응답도 50.8%에 이르렀다.

두 자료를 절대 비교해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세대차 못지않게 정보 수용도가 크다는 점은 알 수 있다. 젊은 세대는 대체로 주어지는 정보에 대해 비교·분석 등의 확인 절차를 꼼꼼히 거치는 반면, 노인 세대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혜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년층은 정보가 부족한 상황인데다 기업들이 이들의 습성을 잘 알고 마케팅을 펼치기 때문에 쉽게 현혹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TV를 통한 무분별한 과대·과장광고 노출도 노인 피해에 한 몫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차의과대 장정헌 교수(의료홍보미디어학과)와 한세미 교수(고령친화산업학과) 등이 내놓은 ‘시니어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매체 이용과 구매력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 따르면, 고령 소비자들은 TV광고에 대한 선호도가 뉴미디어 광고에 대한 선호도보다 매우 높게 나타났다.

특히 60대 이상에선 ‘TV광고에 호감이 있는가’라는 물음엔 77%가 ‘있다’(없다는 응답은 23%)고 답할 정도로 TV는 노년층을 타깃으로 한 광고를 집행하기에 최적의 매체로 조사됐다.

이를 감안했을 때 앞서 언급한 꼼수마케팅의 대표 사례인 상조서비스나 보험회사, 건강기능식품 등은 케이블 등을 중심으로 엄청난 물량공세를 펼치고 있어 고령 소비자들이 언제든 피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 광고를 법적으로 제재하기는 쉽지 않다. 꼼수가 편법이 될 수는 있어도 위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 많은데 대책은 없어

일련의 문제와 관련해 소비자원도 다각도로 관리·감독을 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아무래도 사회 자체가 고령화 되다 보니 제품 뿐 아니라 서비스, 또 이에 대한 광고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주지하고 있다”면서도 “소비자원 차원에서의 (노인 피해에 대한) 대처 방안 등은 아직 마련된 게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체 소비자를 대표하는 정부기관이다 보니, 고령 소비자층만 타깃해서 사업을 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고 전했다.

결과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선 중앙 정부 차원에서 정책을 만들고 시민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노년층이 기업의 꼼수화법에 혹하거나, 그들의 메시지에 공포를 느끼는 것은 결국 사회 안전망이 부실하다는 생각이 기저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한혜경 교수는 “정부에서 꼼수마케팅이나 허위·과장광고에 대한 규제를 노인 소비자 기준으로 검토해 보는 것도 바람직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 교수는 또한 “베이비붐 세대의 지금 노인들도 자신들의 교육 수준이 높다고 기업의 상술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강조하며 “나이가 들며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을 노린 마케팅은 지적 능력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임춘식 회장(한남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은 “사회적 정의가 무너진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말로 씁쓸함을 드러내면서도 “시민사회가 나서 노인들이 우리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타파나 인식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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